"16살때 어머니와 저만 집에 있었는데 순경 한 명이 집에 들어왔어요. 어머니가 저만 남겨두고는 못나가겠다고 마당에서 버텼어요. 얼마 후 그 순경은 어머니를 총으로 쐈어요. 100일도 안된 막내 동생은 어머니가 죽고 나서 젖을 못 먹어 그 해 겨울 죽었어요"

해방 이후 전남 순천지역에서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400여명이 국군과 경찰의 총칼에 무참히 희생당한 안타까운 사실이 반세기만에 확인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8일 '여수.순천사건'(여순사건)으로 순천 권역에서만 민간인 439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사살됐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은 여수 제14연대 소속 군인 2000여명이 1948년 10월 육군본부가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에 내린 데 반발해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정부는 이들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인근 지역 민간인들을 대거 사살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1948년 10월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 일대에서 국군 5개 연대와 순천서 경찰관들은 주민을 불법적으로 집단 사살했으며, 희생된 민간인은 439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전체 희생자는 2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보안기록조회서'와 '사실조사서'등의 정부 기록과 생존자 및 정부군 장교 진술 등을 토대로 조사를 벌인 결과, 당시 군.경은 반군에 숙식을 제공했거나 '작전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민간인을 집단 사살했으며, 관련자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차별적인 연행과 불법 고문이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여순사건 진압 이후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의 귀와 손가락, 목을 잘라 허위로 전과를 보고하거나, 반군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민간인의 일가족을 사살하는 등 법적기준이나 근거도 없이 민간인 살해를 일삼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세동마을 박모씨(75)는 "예전에 밥해 준 은혜를 갚는다며 이들이 누군지 알려달라는 군.경의 요청에 한 주민이 당사자들을 알려 줬는데 밥을 해준 주민들은 이후 여자와 아이를 포함, 가족까지 전부 인근 앵기산으로 끌려가 몰살당했다"고 말했다.

승주읍 유흥리에서는 경찰이 반군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을 겁탈하려다 이를 가로막던 어머니를 사살하는 바람에 태어난 지 100일도 안된 막내가 젖을 먹지 못해 4개월 뒤 숨지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민간인 희생은 현지 토벌작전 지휘관의 명령으로 이뤄졌지만 최종 감독책임은 국방부와 이승만 대통령, 국가에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대한민국 60년은 여순사건을 기점으로 형성된 '여순체제 60년'이나 다름 없다"며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바로 알려면 반드시 여순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민간인 희생사실을 공식간행물에 반영하고, 각종 위령사업을 지원할 것을 권고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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