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홍철.제주보훈청장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어릴적 누구나 3월이 오면 불렀던 노래이다. 봄의 왈츠 그 3월이 다시 왔다. 그러나 올해의 봄은 왠지 우울한 느낌이다.

온 세계가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실물경제니 유동성 위기니 하여 국내 경기도 말이 아니게 그 어려움을 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의 삶이 늘 편안하고 행복했으면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만은 않아 항상 위기가 닥치고 어려움이 따라 다닌다.

지금부터 104년 전인 1895년 8월에 우리는 조선왕조의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본의 한 낭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서도 그 책임을 단죄치 못하고 울분만을 삭일 수 밖에 없었던 힘없는 민족으로서 끝내 나라까지 송두리째 빼앗기는 낭패를 겪었다.

그 후 광복이 있기 까지 50년 이라는 긴 긴 세월을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고 수백만의 애국지사가 국내에서 해외에서 풍찬노숙으로 연명하며 국권회복을 위하여 피를 뿌리고 목숨을 바쳤다.

일제의 갖은 수탈과 탄압에 이기지 못해 1919년 3월에는 만세운동이 전국방방곡곡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며 맨주먹과 맨몸으로 민족자존을 위한 절규와 함성을 질렀다. 대한독립만세!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만들어 우리의 자존권을 세계만방에 알렸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만세운동의 물결은 먼 외딴섬 이곳 제주에도 찾아 왔다. 기미년 3월 21일 조천만세운동이 그것이다. 제주조천만세운동은 조천읍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김시범, 김시은, 김장환 등 14명의 애국청년과 주민 600여명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만세운동의 불씨를 지폈으며 24일 까지 4일간 약 8천여명이 참가하여 제주인의 기상과 애국의지를 보여주었다.

조천만세운동이 일어나기전인 1918년 무오년 10월 6일에는 서귀포 법정사 스님과 400여명의 주민이 모여 중문주재소를 습격하는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어났으며 1931년 6월에는 해녀들이 앞장선 제주해녀항일운동이 일어났다.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에게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있는가? 이 땅에 그토록 바라던 광복이 찾아오고 9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날을 되새기는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갖는다.

3.1만세운동재현행사는 1999년 3.1절 80주년을 계기로 점차 퇴색되어가는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선열의 나라사랑정신을 이어가기 위하여 전국 15개 지역에 국가보훈처에서 예산지원을 시작함으로써 본격화 되었으며 올해는 천안 아우내 장터,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 재현행사와 더불어 57개 지역에서 재현행사를 실시한다.

매년 3월이 오면 저 멀리 민족의 함성이 들린다. 높은 하늘가에 맴돌던 봄바람이 희망을 몰고 오고 따사로운 햇살과 푸른 보리 밭 사이로 태극기의 깃발이 바람에 세게 흔들린다.

비바람 맞으며 오롯이 조국의 광복을 위해 살다간 선열의 애국충혼이 오늘도 조천 만세동산에서 다시 피어오른다. 어려운 나라살림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나라 없이 떠돌던 그 선열들의 기상과 서릿발 같은 충혼을 되돌아보며 우리 모두 미밋동산에서 만세를 불러보자.

그 날의 만세함성으로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이 어려운 경제현실을 잘 견디어 보자. <윤홍철.제주특별자치도보훈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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