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가 넘은 무더위에 제주귤나무 가지를 무참하게 부수는 파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제주도에 따르면 작년 말 도내 귤 재배 면적은 24,560헥타르인데, 올해 안에 2,500헥타르의 과수원을 폐원할 계획이라 한다.

폐원에 따른 보상이 일부 이뤄진다고는 하나 그 동안 이 나무들을 심고, 정성 들여 가꿔온 농가들로서는 애간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 탐라순력도의 감귤봉진과 귤림풍악 부분.
행정 당국은 그것 하나 조정도 못하고 무엇을 했는지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예로부터 제주에는 귤을 재배하는 풍습이 전래돼왔다.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영주십경(瀛洲十景)'이 정해진 것인지는 모르나 그 중에 '귤림추색(橘林秋色)'이 들어있는 걸 보면 제주의 귤 재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조선조 중종 21년(1526)에 이수동(李壽童)이 제주목사로 와서 관(官)의 과수원을 설치하고, 그곳을 수비하는 군인에게 관리하게 했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이런 과수원을 과자(果)로 표시해놨는데, 이원진(李元鎭) 목사의 <탐라지>에 따르면 제주목에 22개소, 정의현에 8개소, 대정현에 6개소나 됐다.

 심지어 선흘과 저지, 덕천, 광령 같은 곳에도 그때 이미 과수원이 있었다. 과실들도 종류가 다양해서 유자 당유자 청귤 동정귤 석금귤 당금귤 산귤 감자 유감 지각 등자 칠나무 닥나무 치자 신재과(新裁果) 등 15종류나 됐다.

 김정(金淨)의 <충암록>에는 이밖에 왜귤(倭橘)도 적혀 있으니 그때 이미 일본 귤이 들어온 것을 알 수 있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해(1455)에 제주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유시했다. "귤은 종묘에 천신(薦新)하고 손님 대접하기에 매우 적절하다"고. 헌의자(獻議者)가 대답하기를 "금귤, 유감, 동정귤은 상품이고, 감자, 청귤 등은 그 다음, 유자와 산귤은 하품입니다. …관의 과원은 배게 심어서 빽빽하고 무성하여 해충이 쉽게 생기므로 공은 많이 드나 결실은 민가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관에서는 바치는 귤을 채우기 위하여 민가에 달린 열매를 여름에 헤아려 뒀다가 가을에 그 수대로 관가에 바치게 합니다.

 만일 기일 내에 채우지 못하면 엄하게 벌을 주니 민가에서는 귤나무를 심으려하지 않고, 심은 것을 뽑아 버리기도 합니다.

다음부터는 잘 재배하는 자에게는 부역을 면제하여 구휼하고, 관에서 직접 운반하여 나무 임자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3읍의 수령들은 적당히 조치하여 위로는 나라에서 쓰기에 모자라지 않게 하고, 아래로는 민폐가 없도록 힘쓰라"고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민폐는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중종 때에 이르러 이수동 목사가 관의 과원을 확장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귤은 재배도 문제였지만 진상을 보내는 일이 더 큰 문제였다.

귤의 진상은 막 익기 시작하는 9월부터 귤이 거의 없어지는 이듬해 2월까지 20회에 나눠 10일 간격으로 올라갔다.

진상하는 귤은 그 많은 귤들 중에 금귤 감자 유감 동정귤 산귤 등 5종류였는데, 처음 금귤 880개와 감자 1,550개를 보내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금귤 300개, 감자 3,500개씩을 7차까지 보냈다.

그러나 8차 때는 금귤은 그만 두고, 감자와 유감, 동정귤을 보냈다.

그러나 제20회에 가서 이것들과 함께 산귤 760개를 보냈다고 이원진 목사의 <탐라
지>에는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0년 1월에 필자는 제주항에서 화물선에 귤을 싣고 대동강을 거슬러 북한의 남포항까지 제주도민들의 북한에 '사랑의 감귤 보내기'에 동승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귤들을 배에 실은 다음 100시간 정도가 지나서 남포항에 도착했으나 그날 밤 기중기를 대어 내리면서 확인하니까 대단히 많은 량이 부패해 있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 이유는 귤을 실을 때 컨테이너를 사용하지 않은 데도 있었지만 27,500여 상자 중 1,900여 상자가 부패하여 먹을 수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 제주에서 서울까지 빨라야 8일, 풍랑이나 만나면 15일쯤 걸리던 그 시절에 귤 진상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이었던가를 충분히 알아볼 만하다.

거기다 가렴주구를 일삼는 관리라도 걸리면 제주의 백성들은 두 배로 힘들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