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불쌍해 보이는 것은 역시 사십이 지난 후이다.

나 역시도 사십 전까지는 일에 열중해 있는 남자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에 열중해 있는 남자가 불쌍해 보인다.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여자는 남자의 불쌍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모를 때는 느낄 수가 없다. 즐겁게는 보이지만 불쌍하게는 보이지 않는다.

술을 곤죽이 되게 마신 다음 날이라도 제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남편이 불쌍해 보인다. 늦지 않으려고 허둥대며 노력할 때도 불쌍해 보이고, 부부싸움을 해도 출근할 때 다녀올게 하고 나가는 남편이 불쌍해 보인다.

여자는 마음 편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쌍하게 보여지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것이 모순이다.

남자들은 여자의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한다.

누구나 다 고독하다.

남자와 같이 살아도 고독하고 부부여도 고독은 있다.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사십이라는 문턱을 훨씬 넘고 있을 때 여자들은 고독과 만나게 된다. 고독해진다.

애들은 자신의 품을 떠나고 남편도 멀리 있다. 일만 하고 있는 남편한테서는 소외감마저 느낀다.

자기가 누구에게도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더 고독해진다. 그것이 사십대의 여자가 발견하는 자신의 외로움이다.

가족 모두에게 감사함을 받고 싶었다. 또 아내들은 그러길 꿈꿔왔다.

그런데 남편은 여전히 바쁘고 아이들은 이제 다 컸으니 참견하지 말라고 한다.

고독을 피하기 위해 여자는 충동구매도 해본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말을 건네주는 이성이라도 있었으면 할 때도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고독이라면 새로운 사랑이 생기면 고독은 어느 정도 지워진다.

친구 때문에 고독하다면 좋은 친구가 생기면 해결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죽어서 생기는 고독이라면 세월이 상처를 씻어준다.

어떤 고독도 정체를 잘 파악하면 원인이 있는 고독은 자연히 소멸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단지 죽는다는 것으로밖에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인간 모두에게 있어서 공평한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데도 아내들은 고독하다. 왠지 고독하다.

일을 열심히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불쌍해 보이고 피곤해서 코 골고 자는 남편의 모습도 불쌍해 보인다.

다 알고 이해하는데도 고독하다.

사십대 여자들 중 괜찮은 여자들이 많은 것은 거의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고독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그것을 모른다. 남편과 같이 있어도 아내는 고독하다. 남편의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사십 이후의 여자가 남자의 불쌍함을 이해하듯이 남자도 여자의 가련함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면 무리일까. 서로 따뜻한 눈길로 고독이라는 것이 씻겨 내려가 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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