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컵 축구대회는 일본·중국 간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한국의 매스컴들은 일·중 축구전쟁이라는 타이틀 속에 축구를 중심으로 많은 기사가 나왔지만 본질적인 문제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또 연합기사에서는 일·중 결승전이 예상외로 질서 정연한 분의기 속에서 무사히 마쳤다는 오보 기사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당사국인 일본의 시점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매일 대서특필로 일·중간의 아시아컵을 다루고 있었다. 일·중 결승전에서 3:1로 일본이 이겼을 때 경기장은 삼엄한 경비망이 깔려 있었다. 1만명을 넘는 기동대(천안문 사건 후 만든 부대)가 경계하는 가운데 일부 중국 응원단은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시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일본 선수들이 탄 버스가 다시 경기장 안으로 되돌아 와서 한 시간 동안 대기 했었다. 또 1000여명의 일본 응원단은 경기를 마치고 두 시간 이상으나 경기장에서 대기하다가 20여대의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이런 상황 속에 일본 공사가 탄 공용차가 경기장을 빠져 나가다가 중국 응원단에 의해 뒷 부분 유리창이 깨어지는 일이 발생했으며, 일시적이지만 일본 대사관 부근이 봉쇄되기까지 했다.

이러한 소란은 유럽의 홀리건이나 중남미와 남미의 열광적인 축구 팬들처럼 축구가 좋아서 일어난 불상사들이 아니었다. 축구 시합이 도화선이 돼 축적됐던 반일 감정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터졌던 것이다.

중국 당국은 삼엄한 경비 속에 자국민의 소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위압적인 자세로 대응했다. 이같은 경비 태세는 일당 독재인 공산주의 국가 중국으로서는 국민에 대한 경고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경고성이 간단히 무시 당한채 소동이 일어났다.

이 사태를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9일자 석간 1면 4단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1990년대의 강택민(江澤民) 정권 시대부터 철저한 애국교육을 받고 있다. ‘반일은 애국, 친일은 매국’이라는 굴절된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언론 통제로 인해 이러한 감정과 주장은 당국의 감시가 소홀한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젊은 세대가 공유하고 있다. 자유 경제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공산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민족정의’ 앞에서는 공산당도 매국노 취급 당한다” (중국 관계자의 말)

이러한 시대에 들어온 지금 중국 당국이 힘으로 ‘반일’을 억누르려고 한다면 정권과 민중이 충돌할지 모를 상황에 있다. 공산당 자신이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겨왔기 때문에 “제일 먼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반일’”(중국 매스컴 관계자의 말)이라는 사정도 있어서 공산당 정권에 있어서 반일 감정은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설득력이 있는 기사였다. 그러나 이 분석 기사에서 일본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역사 인식의 결여를 엿볼 수 있다. 지금 일·중간에 상호 수뇌 방문은 3년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고이즈미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로 인한 중국의 비판에 대해 수상 자신의 안이한 대응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에 대한 추도의 마음과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참배인데 외국에서 이러쿵 저러쿵 비난하는 것은 이해 못할 일이라는 발언을 매년 되풀이 하고 있다. 전범의 유해가 안치된 점에 대한 질문에는 설득력있는 답변은 고사하고 언제나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위해 희생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간다는 것이다. 수상의 역사 문제 의식에 대한 인식의 가벼움은 일본 국민들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갈등이 이번 축구 대회를 통해 중국의 젊은 세대들이 일으킨 소동의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도오카이대학 교수 요오세에이 중국인 교수는 스포츠에 정치 문제를 개입시킨 사태에 대해 같은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위이며 일본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 한다면서도 중·일 정부간에 하루 빨리 이 역사 인식에 대해 재정리 하지 않을 때에 걷잡을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축구 대회로 빚어진 일·중간의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필자는 중국의 애국교육의 연장선에 고구려 역사의 왜곡 문제가 있음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 수상의 역사 인식에 대한 외국과 국민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이동풍이다. 혐오스럽다.

지난 10일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고이즈미 수상은 “금년에는 1월 달에 참배 했으니까 안 가지만 내년에는 참배 하겠다”고 표명했다. 중국이 반대하고 있다는 질문에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일축했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한·일·중의 실타래처럼 얽혀진 역사 인식에 더욱 불쾌한 수은주가 상승하고 있다.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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