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자격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취업 전쟁’을 가장 많이 실감하고 있는 도내 대학가에도 자격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이미 제주대학교는 2개 이상의 자격증을 요구하는 졸업자격 인정제도를 99년도 입학생부터 적용하고 있다. 영어·일어 등 6개 외국어의 능력시험 성적과 전산관련 자격증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인기직종으로 자리잡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겸해 ‘워드 자격증’을 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도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이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도내 시민단체가 열고 있는 자격증 강좌에도 주부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년전 제주산업정보대학을 졸업한 유모씨(27)는 요즘 공들여 취득한 자격증들이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유씨가 갖고 있는 자격증은 모두 4개. 대학 학과 공부를 하는 짬짬이 자격증에 시간을 투자한 결과 ‘필수 자격증’인 운전면허를 시작으로 사무자동화, 주산부기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취업전선’에서 중무장한 셈이다. 이후 증권회사에 취업한 유씨는 실무능력 향상을 위해 자신의 자격증 리스트에 투자상담사를 더 올렸다.

“처음 자격증을 따던 날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유씨는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공부한 내용이 실무에서도 요긴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물론 유씨와 같은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자격증에 쏠리자 과잉 과장 광고로 구직자를 속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들 광고들은 저마다 ‘100% 취업보장’ ‘1회 시험에 합격하세요’ ‘합격자에겐 병역특례 혜택’ 등 구직자가 솔깃해 할 문구를 내세워 교재를 팔아넘기는 등 돈벌이에 급급해한다.

많게는 수십만원대의 교재를 구입해 어렵게 자격증을 따더라도 취업현장에서는 쓸모가 없다. “이런 자격증도 있었느냐”는 냉담한 면접관의 한마디에 구직자는 다시 한번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묻지마 취업’이란 말이 유행할 만큼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적지않은 자격증은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채우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일요일인 지난 12일 오후 3시 제주시 우당도서관. 이곳에서도 자격증을 준비하는 시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한자능력급수시험을 준비한다는 초등학생서부터 공인중개사 교재를 펴놓고 삼매에 빠져든 중년의 신사까지 그 연령대도 다양하다.

정보처리기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강모씨(32)는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자격증 하나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밖에 시간투자를 못하지만 꾸준히 준비하는 만큼 단번에 붙을 것”이라며 환히 웃었다.

최근 몇년새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의 인기는 올해 역시 사그라들지 않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위탁관리하고 있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은 올해도 도내에서만 1654명이 응시, 최근의 인기를 증명했다. 공단 제주지방사무소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는 회사원과 자영업자, 공무원 등 직업에 상관없이 작년에 이어 응시자가 많은 실정”이라며 “이 밖에도 대학 전공을 살린 각종 기사자격증은 물론 조리사, 미용사 자격증에 응시하기 위한 도민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졸업후 2년동안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상경한 김모씨(31). 지금은 전국 IT관련 업체를 상대로 컨설팅을 하고 있는 중견 벤처인이다. 그러나 소위 잘나간다는 IT 전문가인 그도 자격증 취득에는 관심이 없다. “이쪽 업계에서는 경력이나 실력이 자격증에 우선한다”고 말하는 김씨는 “주위에서 관련 자격증을 따라고 권유하긴 하지만 아직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말처럼 전문가들은 “일선 기업의 취업담당자는 물론 실제 산업현장에서도 자격증이 실무능력을 증명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최근 인플레 현상을 보이는 자격증이나 이름마저 생경한 민간자격증 중 상당수는 취업보증서가 되기 보다는 돈과 시간만 낭비하게 하는 계륵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IT자격증만도 그 수가 300여개에 이를 것이라 업계는 추산한다. 그 수가 많다보니 정부와 단체, 기업 등이 주관하는 각종 자격증의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장롱면허증’ 격의 자격증과 두고두고 요긴하게 사용될 자격증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