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누가
기다리는 사람 없어도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픈 가을엔

혼불처럼 타오르는
억새꽃의 춤이고 싶다

내 외로운 영혼의
흰살을 찢으며
고요히
파문짓는 옛 생각들

-고병용 시집  ‘억새꽃의 춤' 중


<지은이> 고병용(1955~   ) 제주시 출생. 1997년 <동양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 「홀로우는 새」 외. 현재, 제주문인협회 회원

누가 그랬나, 억세게 자라나서 억새풀이라고.
질긴 생명의 원천적 뿌리를 억새풀에 비긴다면, 화산섬 불모의 땅에 지천으로 피어올린 저 풀꽃들은 바로 억세게 살아왔던 원주민의 애환이라고 말하고 싶다.
흰살을 찢는 아픈 영혼들, <혼불처럼 타오르는> 저 비극적인 삶의 혼령들, 4·3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바람의 꽃― 이제는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춤이라도 추면서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글=김용길 시인, 그림= 문행섭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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