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짐승 슬피 울고 산하도 찡그렸다
무궁화 이 강산이 속절없이 망했구나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되새겨보니
글 아는 선비 구실 참으로 어렵구나


위의 시는 한일합방의 국치를 당했을 때
글 배운 선비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자결한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라는 선비의 절명시(絶命詩)다.

고려가 망했을 때 충신 정몽주가 선죽교(善竹橋)에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 한 우리 귀에 익숙한 시조 또한 죽음을 앞두고 읊은 시다.

뿐만 아니라 오현(五賢)의 한 사람인 충암(沖庵) 김정(金淨)의 절명사(絶命辭) 또한 장엄하여 심금을 울려주는 바가 있다.

외딴 섬에 귀양 와서 고혼이 되는 구나./ 어머니를 두고 가니 천륜을 어기었네./ 이 세상을 만나서 나의 목숨 끊으나/ 구름을 타고서 천재(天齋)의 궁궐에 들러서/ 굴원(屈原)을 따라 맑고 높게 소요나 하련다(하략)

젊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라 부제학을 거쳐 이조참판까지 지낸 그는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나라의 적폐를 고치려다 수구파에게 밀려 제주까지 귀양을 오고, 불과 36세에 사약을 받으면서 이런 시를 써서 남겼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의연하게 자기 속내를 이 정도로 읊었으니 그래서 그의 시가 오늘에 빛나는 것이며, 귀양지 제주에서까지 오현의 머리에 앉아있는 것이리라.

노래가 시에서 나오고, 시와 노래가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것이며, 더구나 이렇듯 절명시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기 생각을 읊었기에 그 속에 진한 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봄이 돼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고 하지만, 올해야말로 "가을이 돼도 가을 같지가 않다." 일년 중 가장 풍성한 추석이 낼 모래인데도 올해는 태풍으로 인한 물난리로 온 섬 안이 엉망진창이다.

게다가 오래 지속되는 경제 한파가 너나없이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이런 현상이 거의 매일 밤마다 범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다 늦더위에 왜 비는 구질구질 내리는지(?) 청명한 하늘 한번 우러러 봐도 가슴이 뻥 뚫리겠는데, 하늘조차 국민들과 마음이 같은지 며칠째 우울한 얼굴이다.

그런데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위기 의식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허긴 그들이야 어쨌든 집에 쌀 떨어질 걱정 없고, 돈 바닥 날 턱없으니 위기를 못 느낄 만도 하다. 그 사람들, 또 이 난리 통에 해외유람이나 가는 의원들을 이 피해지역 어느 집으로 초청해서 하루 이틀만이라도 봉사를 시켜봤으면 싶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유행가에도 "쨍하고 해뜰 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희망은 있다. 그러니 우울할 때는 시원한 시라도 읊자. 최근 들리는 소식 중에 고려대 농대 학장을 지낸 '나무 박사' 김장수씨가 자기의 유해를 사랑하는 나무 밑동에 묻었다는 기사는 압권이다.

이것이 미래에 희망을 심는 것이다. 이 가을, 시를 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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