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한 조선시대 여자 거상

지난 여름내 가뭄이 들고, 뒤이어 태풍이 두어 차례 지나가더니 도내 당근 밭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고 재배 농민들이 울상이다. 이렇게 되면 재 파종도 어렵다고 한다.이렇듯 제주는 예로부터 해마다 지리적, 지형적 여건 때문에 한재(旱災) 수재(水災) 풍재(風災)가 겹쳐서 흉년을 불렀다. 필자의 어린 시절, 1950년대까지만 해도 흉년이 들어서 들나물을 캐다가 범벅을 해먹고, 톳밥과, 무릇을 다려 먹던 생각이 난다. 자급자족이 이뤄진 것은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안된다.

흉년이 들면 뒤따라오는 것이 굶주림이며, 뒤이어 역병이 따랐다.

역사의 기록을 더듬어 보면 1년 흉년에 1~2000명이 죽어 나간 예가 허다하다. 현종 11년(1670) 흉년에 아사자가 2260명이나 되었으며, 또 숙종 40년(1714년) 봄에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5000명이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정조 18년(1794) 8월 태풍이 불어닥쳤는데, 당시 제주를 돌아본 심낙수(沈樂洙) 어사가 조정에 보고한 내용은 "온 섬을 비로 쓸어버린 것 같아서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이듬해, 1795년 봄에 기근이 들자 같은 해 2월 제주 목사는 조정에 알리고 구호곡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호곡을 싣고 오던 배 다섯 척이 풍랑을 만나 침몰했으므로 그야말로 제주 사람들은 앉아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목에서는 다시 1만1천 석의 구호곡을 급하게 요청했다.

"나라가 어려운 때 충신이 난다"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때 제주 여인 김만덕(金萬德)이 천금(千金)을 내어 육지로부터 쌀을 사들였다. '천금'이 얼마나 큰 돈이냐?

사전에는 그저 '많은 돈이나 비싼 값'이라고만 돼 있다. 그녀는 사들인 곡식의 열에 하나는 친족과 친지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모두 관청에 보내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게 했다.

전해오는 말로는 관덕정 앞에 가마를 걸고 죽을 쒀서 나눠줬다고 한다. 지금도 서울에는 '밥 퍼주는 목사'가 있고, 제주시 탑동에서도 굶주리는 유랑인들에게 식사 제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그 어려운 시절의 미풍이 은연중에 전해 내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굶주림은 당하는 사람은 바로 죽을 것 같지만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을 역사와 현실은 증명해주고 있다.

구휼이 끝나자 제주목사는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으며, 정조임금은 회유(回諭) 하기를 "만덕의 소원을 들어주되 쉽거나 어렵거나 들어 주라"고 했다. 목사가 만덕을 불러 소원을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다른 소원은 없고, 서울에 가서 임금님 계신 궁궐을 우러러보고, 금강산을 한번 구경한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고 했다. 이 무렵 제주 여자는 국법으로 육지에 나가는 것을 금하고 있었으나 임금은 관에서 편이를 봐주고,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라고 했다.

김만덕이 소원대로 상경한 것은 구휼을 한 이듬해 1796년 가을이었다. 좌의정 채재공(蔡濟恭)을 만나고, 조선시대 대동미(大同米)와 포(布), 전(錢)의 출납을 맡아보던 선혜청(宣惠廳)에서 숙식을 돌봐주도록 했다.

며칠 후에 내의원의녀(內醫院醫女) 반수(班首)가 된 것은 임금을 배알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임금이 그녀를 만나보고 "너는 여자의 몸으로 기아자 1100여 명을 구했으니 기특한 일이다"고 치하하고 후한 상을 내렸다.

만덕은 그해 겨울을 서울에서 보내고, 이듬해 3월 금강산에 들어가 명승지를 두루 탐방했다. 그 당시 58세, 원숙한 나이였다.

그녀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임금은 채제공으로 하여 <만덕전(萬德傳) >을 쓰게 했다.

그의 문집에 '만덕전'이 실려있는 것은 그녀뿐 아니라 제주 사람들에게 긍지를 심어준다.

만덕은 순조 12년(1812) 10월12일 74세에 죽었다. 그녀의 무덤과 비는 사라봉 앞 '고우니마루'에 있었으나 길을 확장하면서 옮겨, 1977년 1월 사라봉 모충사에 모셔졌다.
이 공원 동남 편에는 또 추사 김정희가 그녀의 사후에 귀양와서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써준 것이 새겨져 있으며, 자그마한 만덕관 건물이 세워져 있다.
김만덕추모사업회가 결성되어 사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해마다 공적이 있는 제주 여인에게 만덕봉사상이 수여되고 있는데, 올해로 25회 째 후보자를 찾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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