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사,
가을만한 계절이 또 있으랴.
뜨거운 한여름을 뜨겁게 살다가
어느날 문득 뒤돌아본 산야엔 울긋불긋 겨울맞을 채비들.

추석을 하루 앞둔 연휴의 하루를
꾸역꾸역 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길 잘했지.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뜨거운 땀줄기
그래, 난 이렇게 살아 있는거야.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



릴케의 기도를 들은 신은 포도주의 단맛만을 숙성시키는 건 아닌가 보다.
가을을 맞은 산엔 온갖 가을꽃들이 자그맣고 낮은 키로 시선을 머물게 하고 있다.

'눈개쑥부쟁이'이다.
여러가지 꽃들중에서도 우선 눈에 띄는 건
무리지어 모여 피어 있어 화사함이 도드라지는 탓도 있겠지만
가을하늘과 닮은 가을빛을 머금고 있기 때문 아닐까?



오늘처럼 하늘이 청량한 가을날엔
쑥부쟁이처럼 가을과 어울리는 꽃이 또 다시 없을 듯하다.
으례히 가을이면 산야에 피고지어서
들국화려니 하던 게 불과 삼사년전이다.

계곡을 타고 뭉실뭉실 피어오르던 안개가
병풍바위를 타고 넘지 못하고 휘~~돌아
서귀포 앞바다까지 흘러흘러 내린다.

뒤돌아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깊은 골짜기 틈틈마다
이젠 완연한 가을빛이 짙어간다.
그렇구나, 10월이구나.

들고있던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 만다.
한 컷의 사진에 가을을 다 담아낼 능력이 나에겐 없다.

눈으로만 보는 영상
그래, 그냥 마음에 그려넣는 풍경화로 만족하자.
오늘은 쑥부쟁이 네만 담고 가자.



가을엔 들국화와 쑥부쟁이를 두고 가을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가을은 가을을 노래한 시를 두고 가을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입에서 뱅뱅 맴도는 건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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