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옥자 어머니 아니꽈? 나, 옥자 친구우다"
"아이구, 몰라 보키여. 게난 서귀포 살암시냐? 어머닌 살아 있주이"
"예, 거기 아직도 살암수다"
"그 초가집에 지금도 살암서?"
"예, 그 옆에 미술관 생기고 우리 집도 내 놔수게"
"무사?"
"옛날에 우리 집에 화가가 살아나신디예 이젠 기념관 되언마씸"
목욕탕 한켠에서 들려오는 그녀들이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 가족을 데리고 피난 왔던 시절 그린 '섶 섬이 보이는 풍경'
이중섭!
잠시지만 이렇게 그는 우리의 이웃이었다.
이중섭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을 서귀포에 살았었다. 집주인 김순복 할머니가 내준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며 바다에서 잡은 게와 배급식량으로 끼니를 이어갔지만, 아내 마사코와 태현, 태성 두 아들과 더불어 행복한 순간을 보냈던 곳이다.
「섶 섬이 보이는 풍경」, 「파란 게와 어린이」, 「서귀포의 환상」, 「게와 물고기와 아이들」 그리고 은지화 등 수많은 그림은 서귀포에 살면서, 훗날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려진 것이다.

▲ '파란 게와 어린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치르며 궁핍했던 생활고로 그의 가족은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1956년 예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인 좌절로 거식(拒食), 거언증(拒言症) 등 정신분열증을 나타내다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혼자였다. 술 한잔에도 줘 버렸던 그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그의 그림은 뿔뿔히 흩어졌다.

서귀포시가 이중섭의 피난시절을 기념해서 이중섭 미술관을 건립하였다.
개관 후'이중섭과 친구들', '이중섭과 아이들'등의 전시회가 열렸었다.
이중섭 미술관이라지만 커다랗게 복제해 놓은 「소」그림,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지만 대부분 습작 수준의 그림들이라 그 유명세에 못 미치는 작품들을 보며 아쉬운 마음만 안고 돌아 왔었는데...

갤러리 현대가 작품 54점을 기증했다. 이번 기증으로 소장품이 부족해서 1급 미술관으로 등록하지 못했던 이중섭 미술관이 거듭 태어났다. 이를 기념하며 이중섭의 서귀포 시절을 그린 그림과 동양화의 대가 허백련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에 이르는 작가 38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이중섭에서 백남준까지'특별전이 열린 것이다.

▲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초가집
이번엔 학생들하고 같이 걸음 하였다. 지난 전시회에서 실망했던 터라 그런지 부자가 된 기분이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 , 박수근,박래현 등의 판화, 허백련, 이상범, 변관식 등의 전통 산수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중섭의 그림 몇 점을 더 만날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은가.

한 학생이 쪼르르 따라와서는
"선생님, 저 있잖아요. 저번 수업시간에 백남준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하셨는데 저기 있는 작품을 보니 이상해요. 어린애가 낙서한 것 같은 그림이랑"
"............."
"저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음~ 너 정말 예리하구나, 백남준의 작품이라고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 예를 들어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전부 최고가 아닌 것처럼"
"아, 아!"
"그리고 서귀포시의 예산으로는 그런 작품들을 사들일 엄두를 못내. 그나마 이 작품들도 기증해준 거란다. 이렇게 조금씩 모으다 보면..........알지?"

▲ 담배갑 속 은지에 그린 은지화
유명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굵직한 미술관들을 다녀 본 사람들에겐 아직 미흡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한점 한점 모아가다 보면 정말 서귀포가 자랑할만한 미술관이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도 1급 미술관이라 학예사가 있다. 이중섭 이야기를 들려주는 학예사에게 학생들을 잠시 맡겨 놓고 미술관 옥상으로 향했다.

그 곳엔 이중섭의 보았던 그 섬이 예전 그 모습 그대로 푸른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섶 섬이 보이는 풍경」처럼.....

`이중섭에서 백남준까지' 특별전
전시기간 : 2004. 7. 15 ~12. 31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동절기는 오후 5시)
휴관일 : 월요일
관람료 :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
서귀포시립 이중섭미술관 (Tel 064-733-3555)


▲ 이중섭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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