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소설가 기쿠치 간의 '투표'는 '어떤 사랑이야기'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일본의 어느 산적(무뢰배)이 부하들과 함께 도망을 간다. 8명의 부하와 함께 도망을 가던 그는, 자신과 부하를 쫓는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 부하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리고 단 한명의 부하만을 데리고 도주를 계속하기로 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럼 누구를 데리고 갈것인가. 이제까지 그 험한 도주를 같이 한 부하들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부하들은 모두 자신들의 오야붕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함께 움직이는 것은 결국 적들의 추격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이때 두목은 이런 제안을 한다. 그래 투표로 하자. 부하들은 두목의 제안에 동의하고 무기명 투표를 실시한다.

소설은 무기명 투표의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자신만이 오로지 오야붕을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부하는 자신의 이름을 써내지만, 결과는 의외로 나타난다.

두목이 마음 속으로 함께 하기를 원하던 부하가 선택된 것이다.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했지만 그 결과는 두목, 즉 권력자의 의중과 부합되고 만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기쿠치 간의 '투표'가 대의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평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국민들의 의사결정이 반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 '투표'에서 보듯, 그 결과는 대부분 권력자의 의도에 부합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한 투표라는 행위는 결국 우리의 선택이 민주적 의사였다고 믿게 만드는 교묘한 권력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재신임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재신임 발표가 있은 직후 국민투표를 조기에 실시하자고 요구했던 야당은 돌연 국민투표의 위법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건국 이래 초유의 사건 앞에 국민들은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정략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 보자. 유신에 대한 찬반을 물었던 국민투표의 결과는, 당시 일반적 국민 감정과는 달리, 유신에 대한 찬성표가 월등히 많았다. 투표의 불공정에 대한 시비는 있었겠지만 투표 결과는 국민의 뜻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권력자의 의도에 부합된 결과. 그것은 어찌보면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선택이 민주적이었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무기명 투표.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는 권력의 호명 앞에 무기력해지고 마는 수많은 민중들.

아마 재신임 투표 역시, 그 실시 여부에 상관없이, 권력자의 의도와 부합될 것이다 .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권력의 중심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의 중심인가. 실상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대통령은 이미 권력의 중심에 벗어나 있다.

과거 대통령이 가졌던 권력은 이미 보수 언론과 야당에게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정치적 권력의 중심이 현 대통령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끊임없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격은, 이미 권력의 견제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의 중심을 노리는 교묘한 칼날이다.

예정대로라면 12월 15일 재신임을 묻는 국민 투표가 실시될 것이다. 기쿠치 간이 간파했듯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란 결국 정치권력에 대한 암묵적 동의의 과정에 불과하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사회 정치적 권력의 중심을 노리는 언론과 야당의 칼날 앞에 국민들은 스스로 목을 내놓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승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투표'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은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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