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민족평화축전에는 북한 기자단 19명이 북측 참가단에 포함, 국내 언론과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조선신보와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등이 축전 관련 소식을 상세히 전하면서 이들 북한 언론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내 언론사가 27일 긴급 보도한 '김용순 北 노동당 비서 사망'에 대한 소식도 이들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전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선신보

조선신보사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로서 총련중앙상임위원회의 기관지인 '조선신보'(조선어판과 일본어판), 일문지'조선시보', 영문지'인민조선', 잡지'이어', 잡지'조국'을 비롯한 각종 출판물을 편집.발행하는 총련의 출판보도기관이자 종합인쇄센터다.

조선신보'는 조국광복직후인 1945년 10월 10일에 '민중신문'이란 제호로 창간됐다.

46년 9월부터는 제호를 '해방신문'으로 바꾸어 3일간(48. 8. 30부터), 격일간(49. 5. 25부터)으로 발행되었으며, 61년 1월에 제호를 '조선신보'로 바꾸어 61년 9월 9일부터 일간으로 발행됐다.

그러다가 96년 4월 2일호부터 주 3회(월, 수, 목)의 4페지(조선어판)와 주2회(화, 금) 8페지(조선어판 5페지와 일본어판 3페지), 99년 10월부터는 주 3회(월, 수, 금) 8페지(조선어판 4페지, 일본어판 4페지)로 발행되고 있다.

1997년 인터넷 홈페이지(www.korea-np.co.jp)를 개설했으며 2000.6.10일 인터넷 홈페이지 '통일사이트'를 개설해 국내 청와대, 국가정보원,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통일학연구소의 사이트를 연결시켰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조국소식' '총련활동' '동포생활' '민족교육' '평양 이모저모' 등으로 나눠 소식을 전한다.

또 '2003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와 '제주 민족평화축전'을 기획특집으로 묶어 정리하기도 했다.

동포네트워크로 '조선류학생동맹' '조선청년상공회'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조선중앙통신' 등의 사이트도 연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유일의 통신으로서 북한 정부 당국의 의사를 정식으로 대변하는 국영통신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에 통신 뉴스를 송신한다.

1946년에 설립됐으며 북한 평양에 본부가 있다.

1946년 소련군 강점하에서 북한의 행정을 담당하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직속으로 발족한 '북조선통신(北朝鮮通信)'이 그 전신이다.

1948년 10월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내각 직속기관이 되었으며, 1949년 9월 중국의 유일한 국영통신 '신화사(新華社)'와 보도 교환협정을 맺어, 취재와 보도 권역을 넓혔고 해외로 주재기자도 파송하기 시작했다.

본사는 평양시에 있으며 신의주·함흥·원산·청진·개성·사리원·해주·강계 등 주요 도시에 지사를 두어 취재활동을 벌인다.

세계 주요 국가들에 통신 뉴스를 송신하는 외에도 동유럽 국가의 통신사들과 제휴하여 뉴스를 교환하고 있으며, 일간 《로동중앙통신(勞動中央通信)》 《영문통신》《프랑스문통신》 《러시아문통신》 《에스파냐문통신》과 《사진통신》, 월 2회간인 《국제생활》, 부정기간행물인 《참고통신(參考通信)》도 간행한다.

대외방송으로는 지역 방향별 영문 텔레타이프 통신과 사진송신(6시간과 1시간)을 함과 아울러,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제3세계와 유럽 지역 방향 상대의 영어·에스파냐어 방송, 아시아·아프리카·유럽 지역 방향으로의 프랑스어 방송, 유럽 방향으로의 러시아어 방송 등을 하고 있다.

이 통신은 뉴스의 취재 전달이라는 통신 본연의 임무보다는 고위층의 공식 성명과 정부 당국의 발표 등 대내외적 국가 정보의 통제와 선전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의 방송·신문 등 모든 언론 매체들은 내외신을 막론하고 이 '조선중앙통신'이 제공하는 뉴스거리만을 싣고 방송하고 있다.

▲ 조선중앙방송

북한의 대표적인 국영 라디오 방송으로 1945년 10월 개국했다.

북한 내 모든지역이 방송 구역이며 평양·신의주·강계·함흥·원산·혜산·청진·개성·해주· 사리원·평성 등에 자회사 및 지국이 있다.

1945년 10월 일제가 설립, 운영하던 북한 지역 5개 방송의 하나인 평양방송국의 시설을 인수, '조선중앙방송'이라는 이름으로 개국했다.

10월 14일 김일성(金日成) 평양귀환 중계방송을 시작으로 하여 전파를 발송하기 시작, 그 이듬해 5월에 ‘평양방송’으로, 1948년 2월에는 '북조선중앙방송’으로 개칭하였다가 그해 11월에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확정됐다.

6·25전쟁으로 북한 내의 모든 방송 시설도 파괴되어 버렸으나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성립된 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55년 4월 300kW 출력으로 시설을 보강하고 중파 2개 채널, 단파 4개 채널로 북한 전지역은 물론, 남한 지역까지도 포괄하는 가청지역의 확대를 꾀했다.

1967년 12월부터는 주로 국내를 전담하는 조선제1중앙방송(300kW로 송출)과 대남(對南) 및 대외방송 위주인 조선제2중앙방송(500kW로 송출)으로 분리하여 운영하다가, 1972년 11월 10일에 '조선중앙 제1방송'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고, '조선중앙 제2방송'을 '평양방송'으로 개칭했다.

사장 아래 4명의 업무별 부사장이 있고, 사장 직속으로 중앙당과의 업무를 전담하는 정치국을 두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 방송이 처음 방송된 날을 기념해 '방송절(放送節)'로 지정, 경축일로 삼고 있다.

현재는 조선중앙통신에서 제공되는 주요 뉴스를 비롯한 자체 제작 교양 프로그램과 여러 가지 사상 계도 프로그램들을 평양·신의주·강계·함흥·원산·혜산·청진·개성·해주·사리원·평성 등 10개가 넘는 지방 방송국을 비롯한 10여 개의 지방 유선방송국과 제휴하여 북한 전역에 중계방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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