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단장이 4.3연구에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여년 동안 제주4.3 연구에 매달린 학자가 있다.

서슬이 시퍼런 공안정국 시절인 지난 1992년. 다랑쉬굴에서 4.3 유해 12구를 찾아내기도 했다. 당시 정부가 유해 안장을 용납하지 않자 화장해 바다에 뿌리며 속을 태우기도 했다.

2년 반동안 매달려 4.3진상조사보고서 전문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제주대학교에선 인터넷 이러닝 수업으로 4.3과목을 개설해 1000명 수강생을 단숨에 채우기도 했다.

박찬식(51) 4.3추가진상조사단장 이야기다. 박 단장을 지난 14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만났다.

그는 "4·3의 전국화는 그래도 많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보수로 바뀌면서 과거사 문제는 소극적으로 가는 것 같다"며 "예전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섰던 단체, 연구자 그룹과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단장은 "앞으로 일본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도 연대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며 "전세계 유명도서관에 4.3사건에 대한 자료를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단장은 이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4.3조사단을 구성 하는 것"이라며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꾸리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그는 "4.3을 경험하셨던 분들이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며 "더 지체되기 전에 4.3자료 수집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4·3 진실규명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을 묻는 질문에 박 단장은 "행방불명된 분들 '행방'을 찾아주는게 가장 필요하고 시급하다"며 "피해 실상을 담은 자료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유가족과 직접 만나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고 있다"고 고충도 토로했다.

다음은 박찬식 단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박찬식 단장이 4.3연구에 관련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4·3 추가 진상조사의 당위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2003년 10월 정부진상보고서가 확정됐습니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도 이루어지고 명예회복사업도 이뤄졌습니다.

진상보고서는 2년반에 조사과정을 걸쳐 완성됐고 4.3 피해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잘 보여주는 보고서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굉장히 큽니다.

보고서를 만들고 난후 많은 부분이 해결되긴 했지만 10여년이 흐르고 나니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을 찾아주는 부분이 미진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인명피해, 물직적인 피해도 있지만 아무래도 정신적 트라우마가 가장 컸습니다.

조사 당시 정신적인 피해실태조사가 잘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연좌제 피해실태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는데요. 당시 구체적으로 수행되지 못했습니다.

세번째로는 진상보고서는 피해실태개요를 드러내는 보고서라서 당시 마을별로 들어갔을 떄 구체적인 피해실태조사까지는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1만5천명에 희생자 신고가 접수됐는데 신고서를 활용한 지금까지 조사도 이루어 지지 못했습니다.

10년 동안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추가로 발굴된 자료도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4.3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한번 다시 알아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4·3 추가 진상조사에 대한 방향이 설정됐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까 언급했던 보완할 점 3가지에 대한 조사를 해볼까 합니다.

진상조사 보고서를 개정, 수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2003년 보고서에 근간을 유지한 가운데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새롭게 밝혀내야할 사항에 대해 조사해볼까 합니다.

◆조사하게 되면 언제부터 조사하실 계획 이십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현재 저 혼자만 임명된 상태기 때문에 4.3에 대해 지금까지 현장조사 경험이나 이와 관련된 유사한 일을 해봤던 과거사 문제 다뤄본 경험 있는 적임자를 찾아볼 예정입니다.

우선 한달 정도 실행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짜보고 난후 이에 맞는 조사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전반적인 사업은 장기적으로 3년 정도 이뤄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4.3과 인연을 맺게 되셨습니까

▶아마 제 기억으로는 지난 1990년인 것 같습니다.

1989년부터 제대 강의를 시작했는데요.

이때부터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당시 4.3연구소장을 2대째 하고 계셨던 허창훈 교수의 권유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4.3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4·3연구소장도 역임했는데 4·3연구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고, 재임 당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떤 일이십니까

▶4.3연구소에 들어간 후 4.3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
4.3에 대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는 지난 2000년 서울에 진상보고서 작성하러 전문위원으로 갔었는데 그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4.3운동을 했다면 그 후로는 연구를 한 것 입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실무자로 일하면서 특별법을 쟁취하는 운동에 한 역할을 담당했었습니다.

그쯤서울에서 진상조사보고서 기획단을 꾸렸었는데요.

그떄 제가 전문위원으로 선발됐었습니다.

거의 2년반 동안 전문 초안을 작성 했는데요. 그떄가 가장 보람 있었습니다.

◆1992년 다랑쉬굴 4·3유해 발굴 현장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당시 4.3을 앞두고 있었는데요.

4.3연구소에서 유해를 공개하기 전에 1991년도 겨울쯤 유해 발굴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확인 후 조사 작업을 거쳐 1992년 4월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연구소 멤버들끼리 3월에 그 당시 상당히 끔찍한 현장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1992년 당시는 공안정국이었기 때문에 유해들을 잘 안장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유가족들이 유해 12골을 화장해서 바다에 뿌렸습니다.

◆제주항일독립운동사를 출판하셨는데 제주지역 항일독립운동과 4·3의 연관성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4.3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살되고 죽어갔습니다.

또한 4.3사건은 사회주의적인 항일운동 성향이 강합니다.

항일운동의 영향도 많이 미친것도 사실이구요.

4.3과 항일운동이 가장 연관성이 깊다고 볼수 있습니다.

4.3 저항에 앞장섰던 분들중에는 항일운동을 했던 분들도 꽤 많습니다.

◆4·3의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 하십니까

▶행방불명된 분들의 행방을 찾아 주는게 가장 필요하고 시급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4.3사건이 발발한 이후 6.25전쟁이 터졌기 때문에 상당수가 제주도 현지에서 수장되거나 암매장 됐습니다.

유해발굴을 통해 암매장 된 분들은 많이 찾긴 찾았지만 정확한 시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전쟁과정에서 피해실상에 대해선 관련 서류들이 멸실 되버렸습니다.

일부 남아있는 교도소가 있긴 한데 관련 자료들이 확인이 안돼서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정말 밝혀내기 어려운 부분인데 1만5천건의 접수받은 내용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을 일일이 대면 접촉을 해서 확인해보면 어떤 과정에서 행방불명 됐는지 조금이나마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주대학교를 비롯해 제주도내 대학에서 4·3강좌가 실시되는 곳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제주대학교에서 이러닝 수업으로 4.3과목이 개설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폐강 됐습니다.

그때 기억으론 1000명이 수강제한 인원이었는데 1000명 모두 수강 신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국 교사들 대상으로 4.3과 관련된 강의가 있고 상당히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말 4.3사건은 가장 수많은 제주사람들이 죽어나갔던 최고의 사건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현재 초등학교 사회과목 향토 교제에선 4.3사건은 실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대학생들도 공부를 안 하고 있습니다.

전남대학교는 5.18 연구소도 있고 5.18강좌도 있는데 말입니다.

◆4·3의 전국화, 세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보는데 이를 위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국화는 그래도 많이 이뤄졌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정부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과거사 문제는 소극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민주화를 진척시켜왔기 때문에 예전 과거사를 해결해 나갔던 재단, 단체, 연구자 등 그룹이 있습니다.

이분들하고 네트워크를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동아시아로 넓히면 일본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연대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전세계유명도서관에도 관련 영역으로 4.3사건에 대해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것부터 추진하고 추가진상조사도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는 조사 과제를 발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조사단을 구성 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모를 해서 조사단을 뽑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조사단에서 일할 사람들은 현장에 밝은 사람, 과거사 조사에 경험이 있는 사람 등 입니다.
특히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진영이 갖춰지지 않았지만 갖춰지면 반드시 이렇게 할 것입니다.

4.3을 경험하셨던 분들이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지체되기 전에 4.3자료 수집에 나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국적으로 우리 내부에 조사인력을 가지고 소화가 안 되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의뢰한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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