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오사카 한일 시낭송 문학교류회>에 참석했던 전명숙·김이듬 시인으로부터 시집을 받았다.
 
등단 순으로 전명숙 시인은 보산 출생으로 1999년 계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염소좌 아래 잠들다>와 <전갈 :2012년 도서출판 해성>이 있다.
 
<전갈>에 게재된 시 2편을 소개한다.
 
             화장
 
장작을 넣듯
오동나무 관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 수 없도록
문고리에 놋숟가락을 꽂고 지금
조석점 여사는 화장 중
젋어 이별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
길고 긴 시간을 화장 중이다
칠순날 아침 한복을 차려입고
꽃분홍 미소를 짓던 조석점 여사
얼마나 고운 화장을 하길래 이리 시간이 걸리나
방문 밖에서 그녀의 단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늙은 아들과 화장기 없는 딸들이
뜨건 고기국물을 들이키다 졸고 있을 때
이윽고
그녀의 마지막 단장이 끝났음을 알리는 모니터가 깜빡인다  
칠십 칠년 동안
덕지덕지 눌러 붙었던 것들 깨끗이 닦아내고
일생 가장 정성 들여 끝낸 마지막 화장
 끝까지 붙들고 있던 근심까지 다 지워버린
저리도 가볍고 맑은 뼈들
 
서쪽 하늘이
오래 지핀 장작불에 벌겋게 달아오른다.
 
본문의 화장이라는 단어를 읽어 보면 화장<火葬> 아니면 화장<化粧>인지 헷갈린다.

그러다 보면 제목의 화장 의미까지 무엇을 뜻하는지 애매모호해 진다.

이 애매모호한 진수를 독자들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생사의 마지막 세레머니에서 궁정적 개념 속의 "끝"과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허무의 기대 속에 일상은 맑은 뼈를 안고 평상으로 돌아온다
  
               고유의 방식

 왼손은
오른손에게 당한다
사랑한다며
칼을 들이대는 오른 손에
베이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왼손, 못을 잡고 있다
오른손이
망치를 들고 힘껏 내리치는데도
흑자주색 손톱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데도
사랑한다는 말을 피하지 않는
왼손
죽을 때도 함께하자는
오른쪽의 횡포
오른손의 배반을
끝까지 받아들이는
왼손의 고집
왼손의 방식.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존재할 수 없다.  

오른손과 왼손은 철저한 주종 관계이다.

이 숙명을 수학 공식처럼 추종하고 왼손은 그 속에서 희열까지 느끼는지 모르겠다.
 
김이듬 시인은 진주 출생으로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람>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2013년 서정시학>과 장편 <블러드 시스터> 발표.
 
제1회 <시와 세계> 작품상, 제7회 <김달진 창원문학상> 수상.
 
다음은 시집 <명랑하라 팜 파람>의 두편이다.
 
                      사우나 잡념
 
최대한 나는 침묵한다 이런다고
뭐가 다른가
지나치게 풍만한 육질에 흑설탕과 소금 따윌 바르며
숨이 넘어가도록 수다를 떨고 있는 이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하우스에 다른 자세로 앉아 있다
두 명의 여자가 고스톱 치는 하우스
몇몇은 참견을 하며 오이를 분질러 먹고
막 냉탕에서 건너온 듯 아직 태연한 소녀가 내게 말을 건다
어디선가 뵌 것 같아요
내가 머리를 굴리느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벗겨놓으면 그년이 그년이라고
불 앞에서 한 여인이 박장대소 넘어갈 때
제각각 사소함을 대단하게 견딘다.
 
일본어로 "하타카노스키아이:裸の付き合い"라는 말이 있다.
 
특히 동성인끼리 서로 벌거 벗은 채 사귄다는 의미인데 모든 것을 툭 털어 놓고 흉허물 없이 사귀는 관계를 말한다.
 
"그년이 그년이 아니고" "그 분이 그 분" 이라는 긍정적 의미이지만, 그렇다 목욕탕은 자화상만이 아니고 타화상까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곳이다.
   
                 달리는 집
 
차 탔다 출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타고 있는 한
어떤 버스는 이미 돌아왔다
난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얼떨결에 팔목에 고무줄을 감는다
학교 동료들 모두 참전병처럼 비참하게 쓰러졌기 때문에
언어교육원이 폭격을 맡고 교정은 화염에 휩싸인다
나는 바벨탑 아래 불시착해서 비틀거린다
핏물을 뒤집어쓰고 광장을 마구 달린다
수혈과 동시에 영혼에 감염될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낄낄거린다
일어나세요 여기가 안방인줄 아나봐
부상당한 병사는 어느새 출혈이 멈췄나 보다
왜 나한텐 영화 티켓 안 주는 겁니까?
 
주사기를 대자마자 나는 잠잠해졌고
헤모글리빈이 부족하대나 뭐래나
순간적인 기절과 참전과
누굴 위해 피 바치겠다는 갸륵한 착각을 지나
나는 버스에서 내려온다
 
차에 가재도구를 싣고 세상을 누비고 싶었던 때
그런게 없었고 지금은 뭐가 없는 거야?
헌혈 버스와 이동 도서관과 이동식 카메라 말고
아무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것들과 함께
하드를 먹고 싶은 약골의 한여름이 간다.
 
무조건 제공하는 헌혈이지만 다른 어느 봉사보다 가장 긴장감으로 설레이는 곳이다.
 
헌혈 거부라도 당하는 날에는 충격적이다. 필자는 세번이나 거절 당했다.

혈관 안 나온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나 채혈 담당자 앞에까지 가서 그냥 돌아설 때 의식하는 주위의 시선은 나를 더없이 움츠리게 한다.
 
나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일본에서 다섯번이나 헌혈을 했다.

피가 다르다지만 필자의 피는 우리 동포 아니면 재일 외국인보다 일본인에게 거의 수혈될 것이다.
 
끝으로 <베를린, 달림의 노래>에서 한편을 소개한다.
 
이 시집은 김이듬 시인이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한 학기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갔을 때 쓴 시의 모음이다.  
  
                  옻그릇
 
옻그릇을 선물 받았다
검붉은 피가 잔뜩 묻은, 파헤쳐진 심장 같다
한국에서도 써보지 않은 건데
프랑크프르트에 오신 할아버지가 선물해 주셨다
파독 광부로 오셔서 여기서 청춘을 다 보냈고 귀국할 곳이 없으시다
나를 자기 딸처럼 안고 우셨다
라면을 끓여 옻그릇에 붓는데 넘쳐 버렸다
눅눅해진다 눈이
이런 상태가 말라 가는 중이란다
옻칠은 습한 곳에서 건조된다고 하셨다
나는 미끄러운 습지가 되어 타지에 있다
헤어드라이기를 산 일요일 오후
한국학 연구소 마당 작은 연못에 앉아 있다
노르웨이 벤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만 계속 듣지만
옻칠한 미운 국내산으로 서럽게 꾸덕꾸덕 마르고 있다.
 
골동품 옻그릇을 자신 스스로가 골동품이 되버린 독일에서 가보 아니, 역사의 상징처럼 갖고 보냈던 세월의 앙금을 시인에게 털어놓은 사연이다.
가슴 찡하다. <제주투데이>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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