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공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자는 깜짝 놀랐다.
윤동주 시인을 어떻게 형상화 시켜서 오페라화 하는지 그것도 궁금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서시"의 가곡도 있지만 곡을 붙여서 노래로 부르기는 어렵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못잊어"나 정지용의 "향수" 양중해의 "떠나가는 배" 등의 가곡은 물론 대중가요처럼 부르는 김소월의 "부모"와 "개여울" 등은 시를 모르고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애절함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러한 궁금 중에서 지난 5월 1일과 2일 <오사카국제교류센터>에서 열린 첫날 공연을 관람한 필자에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페라 윤동주> 작곡 지휘를 맡은 음악박사 황성곤 중앙대학교 강의 전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곡은 '현대성악앙상블' 자문위원인 작곡가 진규영 영남대학교 교수의 의뢰로 2013년 여름 2개월에 걸쳐 작곡했다.

시인 윤동주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의 삶의 궤적을 그의 시와 함께 창작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 별 하나의 사랑과 동경 그리고 어머니'를 노래한 그의 시는 지금 우리에게 점점 멀어져 가는 깊고 순수한 내면의 가치들을 일깨우는 감성의 시발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윤동주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며 왜곡된 역사적 이미지들을
바로 잡기 위해 공연을 마련했다.<중략>

<오페라 윤동주>는 '서곡'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14곡의 성악곡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시 '쉽게 쓰여진 시' '서시' '어머니' '별 헤는 밤' '길' 등을 주된 모티브로 삼았다.

오페라에 삽입된 시와 음악들은 각각의 스토리와 흐름을 갖고 있어서 있어서 주제는 약간 무거우면서도 대중적인 가요나 뮤지컬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김소월 등의 시처럼 시적 리듬이 없어서 곡을 붙인 노래로는 어렵다는 윤동주의 시들을 이렇게 오페라로 승화 시킨 점은 필자만이 기우가 아니라 관람객 모두의 기우마저 불식 시켰다.

본래 갖고 있는 순수한 시의 내용과 한 편의 시의 어느 한 줄을 후렴처럼 되뇌이면서 오페라로 승화 시킨 상승 작용으로, 공연장은 하나가 되어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감동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황성곤 작곡가는 주제는 약간 무거우면서도 대중적인 요소도 있다고 했지만 윤동주 시인이 사상범으로 복역하다 옥사한 일본에서의 공연은, 주제의 무거움을 떠나 재일동포만이 아니고 일본인들에게도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공연이 연 이틀이나 계속되는 예는 극히 드물었다. 한국의 유명한 전통음악이나 극들도 단 일회의 공연으로 마치는 예가 일반적이다.

장내가 가득 찰만큼의 관객 수는 아니었지만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 개최된 <오페라 윤동주>를 관람한 동포와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한시간 십분의 공연을 보고 난 관람객들은 길지 않은 시간의 공연 속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응축된 삶과 작품 세계를 알 수 있어서 감동했다는 소감이 지배적이었다.

<오페라 윤동주> 연출은 변혁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교수가 담당했고 "현대성악앙상블"이 출연을 했다.

"현대성악앙상블"은 전문적인 현대음악 작품연주를 위해 결성된 성악가들의 모임이다. 1977년 <대구현대음악제'에서 펜데레츠키의 작품 'TE DEUM' 연주를 처음으로 시작했다.

매년 정기연주회와 다수의 초청연주 및 특별연주 등을 통하여 국내외 저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과 작곡가들의 성악 작품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오페라 윤동주>는 지난 3월 26일 한국 <백석아트홀>에서도 개최되었다.
오사카공연에서 아쉬움 점이 있다면 입장하는 관람객들에게 배부한 팜플렛에 윤동주 시, 한두편만이라도 한.일 양국어로 게재했었으면 더욱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필자가 <제주투데이>에 쓴 것을 이곳에 참고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697


끝으로 일본에 대해서 쓴 윤동주 시 한편을 소개한다.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줄 시를 적어 볼가.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씨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이 시는 1942년 6월 3일에 쓴 시인데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와서 두달이 지난 후, 립교대학 때의 작품이다.

윤동주 시인을 저항시인라고도 하는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난 윤동주 작품은 저항의 차원을 넘어 인간본질의 깊은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쉽게 쓰여진 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육첩방은 일본식 다다미방인데 다다미 하나를 일첩이라 부르며 이첩이 약 한평이니 삼평짜리 방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첫째로 3연의 2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라고 썼다.

어린이, 젊은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어떠한 저항감 없이 사용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늙은이라는 표현은 노인에 대해 비하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물며 자기 스승인 대학 교수에게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늙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늙은 교수"라는 표현은 용납할 수 없다. 윤동주 시인은 그것을 알면서도 썼다는 점이다.

여기서 시인은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늙은 교수는 교수의 의미가 아니고 "일본"이고 "늙은 일본"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늙은 의미는 일본의 황혼을 뜻한다. 즉 제국주의 일본의 몰락이고 종말이다. 조국의 독립이 가까움을 암시하고 탄압을 받은 측의 증오심이 아니고 연민의 정을 갖고 일본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번역한 일본인 이부키 고<伊吹 鄕>는 "늙은 교수"를 "노교수" 번역했는데 윤동주 시인은 일부러 사용하지 않고 회피했던 단어인데 그 의중을 모르고 번역한 오역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9연에서는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확고한 아이엔티티와 신념 속에 암흑시대를 향하여 "등불을 밝혀" 필연적으로 찾아 올 독립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무력이나 폭력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둠을 조금 내몰고"라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마지막 연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이 마지막 연에 가서 '사랑'의 본질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는 나는 나의 양손을 모우고 기원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기도와 기원으로 시작되고 그 기원의 본질은 깊은 사랑이다. 성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윤동주의 시의 원점은 바로 이 '사랑'이다.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