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푄현상>이라는 이상 기온의 의미를 안 것은 일본에 와서 10여년의 지난 1980년대 이후였다. 지난 5월 <여름 언덕>에서 발행한 이즈미 세이치<泉 晴一. 1915-1970>가 1966년에 발행한 "제주도:濟州島"에 그 단어가 게재되었었다.

제5장 제주도의 종교. 제1절 섬의 성소:聖所. <가> 보편적 성소. ① 성소로서의 산, 210쪽에서였다. 약간 길지만 본문을 소개하겠다.

제주도 산악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것은 한라산으로 섬사람은 모든 길흉을 이 산과 결부해 생각한다.
1936년 1월 3일, 필자의 아끼는 벗 마에카와<前川智春> 군이 이 산의 눈보라 속에 조난했는데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섬사람은 그의 사인은 그 전해 가을 한라산 정상 바로 밑 탐라계곡 상류에 산막을 지어 산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풀이 했다.

또 그 당시 시신 발견이 지체되고 있을 때 제주의 한 심방은 모씨의 의뢰로 굿을 하여 "마에카와 씨는 산막을 피해서 탐라계곡 끝에 지금도 안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가 한라산을 신성시하여 그곳에 속된 산막을 지었기 때문에 마에카와 군의 불행이 일어났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마를 찾든가 식물을 캐기 위해 한라산에서 밤을 새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확실히 1935년까지는 한라산 높은 지대에 건축 등 인공적인 시설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 산에 사는 신은 반드시 하나만은 아닌 듯하다. 한라산 여장군은 뒤에 말하는 오백나한과 함께 섬을 외적으로부터 구한다고 하여 외국선이 접근하면 삽시에 운무를 불러일으켜 섬을 덮어버린다고 믿어지고 있다. 이에 관해 서귀본향당풀이에 나오는 "일문관" 풍신도 산바람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라산 남면에서는 섬의 탁월풍인 북북서 또는 북풍이 한라산에 부딪혀 여기서 단열 팽창, 남쪽 산악지대에 눈을 내리면서 평야로 흘러드는 소위 푄현상이 현저한데 이 바람은 겨울에 산에서 내리부는 뜻박의 온풍이다.그것은 계절적인 주기율을 가지고 있으나 이상풍<異常風>이기 때문이다.

이즈미 세이치는 제1부, 제3절 기상에서 이 "푄현상"을 기술하지 않고 제5장 제주도의 종교 ① 성소로서의 산에서 자신의 비극적인 경험담을 인용하면서 당시 섬사람의 종교관을 객관적 관점에서 직시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1915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이즈미 세이치는 아버지가 경성제국대학 교수직을 맡게 되면서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1935년 경성제국대학에 진학했고 그해 여름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동년 12월과 이듬해 1월에 걸친 경성제대 산악부의 한라산 등산 도중 친구 마에카와의 조난사로 인해 그는 일문학 전공을 문화인류학으로 바꾸었다. <마에카와 유해는 1936년 5월에 찾았고 당시의 조난비가 정상 북벽 가까운 왕관암 아래쪽에 세워져 있다. 역자 주>

그후 그는 제1부, 1966년 3월 저자의 "머리말"에도 스스로 썼지만 1936년부터 1937년 사이에 신들린 사람처럼 제주를 드나들어서 제주도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 책의 제1부 자료를 정리했다.

필자는 제주 출신으로서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고서야 산촌, 해촌이라는 마을 단위 명칭 이외에 양촌이라는 양반 마을의 명칭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한라산 기상조건에 1965년 이전부터 푄현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해방 후에도 그의 제주도 관심도는 여전해서 1950년 토쿄에서 동료 네 사람과 토쿄에 거주하는 재일 제주인 연구에 착수했는데 한국전쟁으로 많은 어려움 속에 제2부를 펴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1935년부터 1937년 현재까지 제1장 자연환경. 제2장 촌락 연구. 제3장 가족 연구. 제4장 초가족집단 연구. 제5장 제주도와 종교. 제6장 제주도 인구이며, 제2부는 1950년 현재 토쿄에 있어서의 제주도인. 제3부는 1965년 현재 제주도에 있어서의 30년이다.

최근에 들어서서 완전히 시민권을 얻은 "제주학" "제주인" "제주어"의 단어와 정의들이지만 이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사회에서는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주학은 더욱 늦은 감이 있었다. 제주학이라는 언어에 대한 생소함이, 이 책을 대하고 나서 필자의 인식은 달라졌다. 지금까지 제주에 대해 쓴 책들을 그런대로 읽고 들어왔지만 총괄적이 아니고 부분적인 경향과 그 부분적에 대한 세밀함은 많았다.

그러나 제주도를 조감도처럼 볼 수 있는 입체적인 제주론은 드물었는데 이 책은 달랐다. 1930년대부터 제주도를 도표와 참고 자료를 제시하면서 제주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이 책은 그야말로 "제주학"의 원점이었다.

특히 6.25동란으로 인해 제주 본토의 연구가 어렵고 혼란한 시기에 제주인을 또 다른 시각으로 조명한 제2부 "토쿄에 있어서의 제주인"의 상세한 조사는 재일 거주력 40년이 지나는 필자에게도 신선한 내용들이었다.

이렇게 다방면에 걸친 제주론이 처음으로 외국인의 조사에의하여 쓰여진 획기적인 일인데 그 원인의 우연성이 우리를 놀라게 하며 그것은 우리말 번역에까지 파급된다.

이 책 <제주도>의 "역자의 말을 대신하여"에서 제주문인협회 회장인 김순이 시인은 "이 글의 번역자인 김종철은 세상을 떠나고 없습니다. 아내인 제가 대신 쓰게 됨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라는 서두와 함께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먼저 그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동기를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1980년대, 저는 오성찬, 문무병, 한림화 등의 작가들과 제주도의 마을을 조사하러 다녔습니다. 그런 제게 남편은 1930년대에 이미 제주의 마을을 조사한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라는 책이 있다며 그 중에서 제가 흥미 있어하는 부분을 발췌해 번역해주곤 했습니다.

시작은 그랬으나 어느 날, 제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본격적으로 전체를 번역하게 된 것입니다. 김종철은 한라산을 미친 듯이 사랑한 사람입니다. 특히 겨울 한라산을 좋아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면 산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을까 조바심쳤습니다.

이즈미 세이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경셩제대 산악부의 <적설기 한라산 등산기>를 구해 읽고 부터였습니다. 이 책에는 1935년 이즈미 세이치가 산악부원들을 이끌고 실행한 한라산 등정의 준비와
장비, 등반 코스와 일정, 날씨는 물론 성공과 조난에 이르는 상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당시 백록담 안에 마련한 통나무 산막<山幕>이 소용들이치는 폭풍설에 와해되면서 한밤중에 탈출하던 중 산악부원의 한 명인 마에카와 씨가 실종되고, 그 시신은 이듬해 5월 눈이 다 녹은 후 탐라계곡에서 발견됩니다.

이 일로 이즈미 세이치는 전공을 문화인류학으로 바꾸고 제주도를 연구 대상으로 삼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제주도>입니다.<중략>

2013년 출간된 유홍준 선생의 "나의 제주문화유산답사기7" 제주도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
이즈미 세이치의 이 책이 소개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고 아울러 <제주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습니다. 그 열기는 제게 남편의 원고를 출판하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유홍준의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서 그는 "이즈미 세이치가 30년에 걸쳐 써낸 <제주도>는 내게 큰 감동이었다. 그의 학자적 자세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인류학적 사고와 총체적 시각이 갖는 인식의 힘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이 책은 제주도에 관한 연구서를 넘어서 인류학적 조사 방법과 분석, 서술의 한 전범을 제시한 명저로 평가되고 있다.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야말로 진실로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저서다."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우연의 연쇄적인 반응 속에서 발간된 <제주도>는 앞으로 "제주학"의 온고지신의 요람으로써 "제주학 입문교과서"가 될 것이다.

이즈미 세이치는 메이지대학 교수, 토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및 연구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잉카제국> <안데스의 예술> <아득한 굴뚝> 등이 있고 <잉카의 조상들.1962>로 마이니치출판상을 수상. 국가와 공공에 대한 업적을 기리는 일본 훈장인 욱일중수상과 페루의 최고 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자 김종철은 1927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신보를 시작으로 제주신문, 제남신문, 제주KBS, 제주MBC에서 편성부장, 편집국장 등을 두루 거쳤다. 1천회 이상 한라산을 등반하는 등 한라산을 미치도록 사랑하여 산과 더불어 살았다. 제주산악회를 창립했고 산악안전대장으로 많은 인명을 구했다. 제주의 오름에 대한 답사기이며 최초의 종합보고서인 <오름나그네> 전3권을 1997년에 펴내고
암으로 타계했다.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일,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료(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 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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