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마당극을 가르치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제주민예총 최 상돈 가수가 4.3마당극 <약속> 공연에 앞서 한 인사말이었다.
 
오사카에 있는 <달오름> 극단 김 민수 대표와 공동 제작을 맡은 그의 말처럼 재일동포와 일본인들로 구성된 출연진들에게 한국 전통적인 마당극을 무대에 올려놓는 것은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달오름 극단 창단 10주년을 맞이해서 고향 제주 사람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일이 꿈이었습니다.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최 상돈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달오름 극단 단원은 3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 민수 대표 역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관계로 감정 표현의 요구에 대한 갈등도 있었다는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마당극 <약속> 공연은 11월 21일부터 22일까지 3회에 걸쳐 오사카 아사히(旭)구에 있는 조총련 민족학교 쵸호쿠(城北)초급학교에서 있었다.
 
4.3때 십대로서 일본으로 피신한 아버지 양 석종이 사망 후, 그의 유품 속에서 딸 시윈은 많은 편지를 발견했다. 상대방의 주소가 없는 아버지의 편지였다.
 
이 편지로 아버지가 제주에 갔다 온 것을 알게되고,  딸 시원도 제주도를 갔다 와서 그 진상을 자세히알게 된다. 손녀 유미와 살고 있는 그녀는 이 사실을 연극 "억새와 해바라기" 속에서 밝혀 나간다.
 
즉 마당극 <약속>이라는 극에서는 실질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시원은 손녀 유미에게 단편적으로 편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극속의 또 하나의 극 <억새와 해바라기>에는 유미는 배우로 참가한다.
 
석정에게는 순이라는 누님이 있었는데 오누이는 통일해방과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벌이던 4.3 당시 제주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순이는 석정에게 피신하라면서 일본으로 밀항을 권유한다.
 
혼자 피신해야 하는 석정이는 자신과의 갈등 속에서도 결국 일본으로 밀항하지만, 누님과의 약속은 무사히 일본에 당도하면 그 증거로서 해바라기 씨를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순이는 4.3활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대전형무소에서 처형된다. 처형되기 전, 순이는 같이 활동하던 친구 동희에게 석정으로부터 틀림없이 해바라기 씨가 올테니까 나 대신 나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 달라고 한다.
 
불에 흔적도 없이 집이 다 타버리고  없어진 것을 전혀 모르는 순이에게 동희는 이러한 사실들을 말할 수가 없어서 그 부탁의 약속은 지킨다면서 편지를 보낸다.
 
순이와 석정이가 제주에서 활동하던 4.3의 생생한 모습들이 전개되고 석정이가 일본에 온 이후의 순이와 동희네들은 물론이고 광의적 의미(상급층의 회의 모습 등)의 4.3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4.3으로 인해 재일 제주인이 겪었던 그리고 겪고 있는 아픔과 갈등을 보편적 의미에서 그려진 또 하나의 4.3 이야기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한 연출성을 띄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실과 연극이 동시 진행 속에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이중적 전개는 관람객들에게는 가끔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현실에 대한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순이와 석정이의 해바라기 씨앗의 약속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이 약속은 한 사람의 단면적인 무사만을 확인하는 약속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야 한다는 생명의 약속이라고 김 민수 대표는 강조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4.3극에 해바라기라는 꽃이 등장한 것이다. 4.3의 상징적인 꽃이라면 만추에서 겨울 내내 피는 동백꽃이 그 상징처럼 나왔었다. 가령 피눈물 같은 동백꽃 지다 등의 표현이 그렇다.
 
일본에서 해바라기꽃은 부흥의 상징적인 꽃처럼 클로즈업되었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 때 집이 허물어져 희생된 카토 하루카(11) 여자 어린이가 살던 집터에서 해바라기꽃이 피었다.
 
그 해바라기꽃은 부흥의 심볼이 되어 그 씨는 인근에서 묻고 디시 핀 꽃의 씨는 일본 전국에 퍼지게 되었다. 지금은 일본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황폐해 버린 주택지나 토지에는 반드시 해바라기를 심어서 함박 웃음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자연재해의 물리적 부흥만이 아니라 어느 사이엔가 해바라기는 인간의 내면적 부흥에까지 일본에서는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억새와 해바라기"는 토쿄에 살고 있는 4.3피해자 김 동일 할머니가 쓴 시를 몇년 전에 제주 시인 김 경훈 씨가 다듬고 최 상돈 가수가 작곡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제목을 갖고 왔다고 김 민수 대표는 말하면서 해바라기꽃이 4.3에 대한 화해와 복귀의 상징으로서 해석해 준다면 더욱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단원 3명 밖에 없다면서 스스로가 딸 시원 역을 맡은 김 민수 대표를 비롯한 10명의 출연진들의 박력에 넘치는 대사와 연기는 장내를 압도했으며, 그 분위기를 돋군 무대 주변의 제주 풍경과 마을의 걸개 그림은 제주 양 천우 화가가 그렸다.  
 
깜짝 놀란 것은 순이 역과 유미 역을 맡은 두 사람이 김 대표 딸로서, 중학교 3학년과 초급학교 6학년생이라는데 마치 심방의 대물림 같은 사실이었다. 김 대표의 연극에 대한 정열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연극은 일본사립학교에 다니는 조선인 아이들을 모아 "조선인문화연구회"를 만들고 온갖 정열을 쏟은 실화를 토대로 한 <오조라센세이:大空先生>이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나 달오름 처음으로 11회 공연 중에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극입니다." 앞으로의 기획에 대해서 묻는 필자의 물음에 김 대표는 시원하게 제목까지 알려주었다.
 
11월 22일 오후 5시부터 개연된 마지막 공연에는 일본의 김 시종 시인 내외, 정 해옥 시인, 그리고 부산에서 열리는 한국작가대회 도중에 참가한 김 수열 제주작가 회장, 이 종형, 김 경훈 시인, 제주의 소리 김 봉현 편집부국장, 민예총여성회원들, 부산에서는 설 영성 <전문예술법인 남산놀이마당> 사무처장 외 7,8명이 동포, 일본인들과 같이 관람했는데 제주 문인들과의 재회와 뒤풀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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