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구좌문학회> 동인지 "동녘에 이는 바람"은 금년 11월에 제10호를 냈는데 따뜻한 훈풍이 되어 필자를 찾아왔다.
 
회원 16명 중 11명이 구좌읍에 살면서 2002년 동회를 발족 시켜 2006년 창간호부터 해마다 동인지를 내고 있는데, 지역 문화의 한 틀이 되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제10호에 게재된 초대시와 동아리 초대 작품들을 제외해서 순수한 회원 작품 몇 편을 소개한다.
 
홍 기표 회원의 "시장 골목의 밤"이다.
 
시장 골목의 밤
 
검은 천으로 하루를 덮으면
청산하는 장부에 촘촘히 박힌 가시들이
하나둘 골목에 주저앉는다.
 
앙금의 파편들이 선술집에 모여
조각조각 핏대를 세우고
막걸리, 소주, 맥주는 도수를 높이며 몸을 털어낸다
말의 불씨가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고
알코올 도수가 가슴을 부풀릴 쯤
취기 얼근한 마귀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덫을 놓는다.
 
밤이 이슥한 시장 골목
비틀거리던 사람들도 다 빠져나가는데
씨름하는 말들은 끈질기게 좌판 위에 남아
새벽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왁작지글한 시장의 하루 일을 마치고 또 다른 왁작지글한 단골집으로 모여든다. 시계추처럼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정제되지 못한 모든 행위들이 난무한다. 이 행위를 의인화 시키면서 시장 골목의 삶의 애환을 파헤치고 있다.
 
김 용덕 회원의 "모래 바다"이다.
 
모래 바다
 
붉은 노을 파도
살아 숨을 쉬는
물결 모래 위
살포시 내려 놓는다
 
고동은 물살 어울러 뒹굴다
어둠이 내려앉아
물결이 들려주는
자장가에 잠이 든다
 
갈매기 날개짓
수평선 넘어
불 밝혀주는 만선 깃발
등대는 노래한다

 
일상적인 바다 이야기가 아닌 고동은 물살 어울려 뒹굴다 어둠이 내려앉아 물결이 들려주는 자장가에 잠이 든다.  물결 소리는 낮과 밤이 따로 없다. 같은 물결 소리라도 어둠이 오니까 그 물결은 어느새 자장가로 변한다.
 
갈매기 날개짓, 불 밝혀주는 만선 깃발의 연결성에 등대도 좋아서 노래한다 등의 이어짐들이 신선한 인상을 준다.
 
다음은 "해녀 축제 시화전"의 작품 3편을 소개한다. 조 선희 회원의 "푸른 기억"이다.
 
푸른 기억
 
단발머리에 교복이 눈부시던 날
평대 모래밭을 거닐고 왔더니
갯바위에 가지런히 벗어 둔 신발
저만치로 떠밀려 가 버렸네
집으로 돌아 와 어머니에게
등짝 몇 대 맞은 기억
지금도 아릿아릿한데
그날 맨발에 파도소리 묻어 와
바닷가에 가기만 하면
잃어버린 신발도
푸르른 기억도 밀려 올 것 같은데

 
눈부신 교복이라면 신발도 그에 걸맞는 새 신발일 것이다. 십대의 소녀는 평대 모래밭에 아기자기한 꿈을 맨발로 그리면서 썰.밀물의 때도 잊은 사이, 신발은 갯바위에서 작은 조난선이 되어버렸다.
 
해녀 축제시에 전시된 이 시. 어쩌면 소녀의 어머니가 해녀였다면 그 당시 갯바위 주변을 몇번쯤은 맴돌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소녀가 지금은 상군 해녀가 아니일까.
 
다음은 좌 여순 회원의 ""톳 캐는 날"이다.
 
톳 캐는 날
 
삼삼오오 바쁜 손길에 고된 허리
아낙네 19금 농담
한바탕 웃음으로 자지러지는데
토끼섬은 안 듣는 척
귀를 쫑굿 세우고
얼굴 붉힌 문주란 고개 숙이네
 

이 시는 수필 "톳 캐는 날"에서 작자 자신이 언어를 함축 시켜서 시로 다시 표현했다. 비약적인 발상이 결코 과장스럽지 않고 의외성이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은 6행 안에 번쩍이는 응축성이 있다.
 
다음은 김 형주 회원의 "갯마을 해녀"이다.
 
갯마을 해녀
 
산 너머 살던
곱디곱던 숫처녀
갯마을 시집가서
해녀 됐지요
테왁 줄에 매달린
차가운 세월
깊게 패인 주름살
늙고 병든
가냘픈 숨비소리
가슴에 품어 살던
파랑새 날아가고
꿈꾸던 푸른 깃발
그림자만 펄럭펄럭 

 
다음은 김 은숙 회원의 "성게국"이다
 
성게국
 
테왁망사리 가득 담아 온 어머니 바다
냄비 속에서 한소끔 끓어 오르면
밥상 위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담백한 그 향기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갯마을 해녀"와 "성게국"은 읽는 독자들의 느낌이 거의 같기 때문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시이다.
그런데 "갯마을 해녀"가 해녀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성게국"은 해녀 가족의 단란한 식사 풍경으로서 긍정적이다.
 
해녀를 상반된 시각에서 보는 두 작품인데 필자는 해녀에 대한 자학적인 작품은 내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다. 왜냐하면 "해녀"도 떳떳한 직업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김 원정 회원의 "바다"이다.
 
바다
 
처얼썩 처얼썩
눈을 뜨면 파도소리가 귀 밑까지 달려와 있었다
그런 날은 신발 신는 소리조차 아까워 살며시 문 열어 놓고
바다쪽으로 돌아선다
어머니의 분주한 아침이 소란스럽게 들어오고 파도소리가
달아나던 시절
 
그 파도소리를 이제 어머니가 달고 다닌다
 
평생 바다가 쉬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이리 살면
벌 받는다고 관절염으로 물질 놓으신 어머니는 갯바위에서
톳을 캐고, 보말을 잡고...
 
어머니는 평생 쉬지 않는 바다가 되려나 보다

 
그 파도소리를 이제 어머니가 달고 다닌다. 문 열고 귀 기울이지 않아도 파도소리는 마치 손목에 차고 다니는 시계처럼 몸의 일부가 되어 언제나 들려오고 있다.
 
평생 일을 생계 수단의 하나로서 숙명처럼 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일도 하나의 낙으로서 생명이 있는 한 공존을 해야 하는가 "어머니는 평생 쉬지 않는 바다가 되려나 보다"라고 묻고 있다.
 
이 책에는 회윈 시 35편, 수필 21편, 소설 1편과 고 훈식, 김 윤숙 시인의 초대시와 <성산포문학회>
<애월문학회> <한라산문학회> <한림문학회> <한수풀문학회> 회원들의 초대 작품들이 실려 있다. 회원 작품들을 더 소개하고 싶었으나 지면 관계로 상기 7편만을 전문 게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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