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선돌, 서선돌, 남모남돌, 북왕돌, 중황석, 108계단

4월 두 번째 일요일인 지난 10일 묘제를 끝내고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오방석을 찾아간다.

새별오름 인근에서 유수암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찾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유수암리는 제주시 애월읍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로 큰노꼬메오름 등 여러 개의 오름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유수암의 옛 이름은 ‘흐리믈’과 ‘검은데기’인데, ‘흐리물’은 우물, ‘검은데기’는 바위언덕을 뜻한다.

▲ 인낭굴 동산. 자가 있어 어느 정도 마을 전망을 볼 수 있다. 모남돌 가기 전에 있다.

즉 생수가 용출하여 사계절 끊이지 않고 물이 흐르는 언덕이란 뜻으로 ‘흐리물’이란 지명이 생겨 오랫동안 불리다가 지금은 ‘유수암’이라 부르고 있다.

유수암 주유소 앞에서 왼쪽으로 유수암리를 알리는 표지판을 따라 유수암 입구에 도착했다.

유수암리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마을 상징석으로 마을을 지키는 다섯 개의 바위인 ‘오방석’이 있다.

오방석은 마을에 잡귀와 잡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 건강을 위해 세운 바위이다.

오방석은 (동)선돌, (서)선돌, (남)모남돌, (북)왕돌, 중황석(솔동산 돌)을 말한다. 본격적으로 오방석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오방석을 찾아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알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필자와 같이 오방석을 처음 찾아가는 사람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 중황석. 마을의 균형 있는 발전과 번영을 기원했다.

유수암리 오방석 탐방은 리사무소에서부터 시작한다. 리사무소를 지나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서 오래된 팽나무를 만난다. 솔동산이다.

유수암리 사람들은 팽나무와 생사고락을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팽나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솔동산에 들어서면 지금은 마을이 개발되면서 팽나무 양쪽으로 길이 생겼지만, 이곳은 예부터 마을의 중심지로써 마을의 무사안녕과 주민화합을 위한 공간이었다.

중황석이라고 하는 오방신석중의 하나인 ‘솔동산 돌’은 옛날에 솔대(활을 쏠 때 과녁판을 달고 버티게 하는 기둥)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설은 선인들은 이 바위들을 저울 또는 저울추에 비교했다. 마을의 중심에 있으면서 마을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황석은 나지막한 평범한 돌이지만, 팽나무와 더불어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중황석에서 유수암천으로 향한다.

▲ 유수암천. 생수가 용출하여 사계절 끊이지 않는다.

예부터 물맛이 좋고 감로수로 유명한 유수암천은 가뭄이 들어 물이 말라도 이곳은 마르지 않고, 여름철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수인성 역질이나 노인병 예방 등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수암천을 갓 지나면 눈앞에 108계단이 나타난다. 108계단이라 이름붙인 이유는 옛날에 이곳이 절동산터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예전에 태산사라는 절터였기 때문에 정비를 하면서 불교 이미지에 걸맞게 108개로 만들었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세워보니 정확히 108개였다.

▲ 108계단.

계단을 오르는 입구에 바윗돌을 보니 절과 관련 됐음직한 바위돌이나 표석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단을 오르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108계단 주변에 팽나무 9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무환자 나무.

절동산에 있는 팽나무는 높이 13m, 둘레 2~4m로 나무 밑에는 제주어로 ‘수리대’가 자라고 있다.

팽나무 군락 사이에 무환자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다.

무환자나무 열매로는 염주를 만드는데 쓰인다.

무환자나무는 예부터 절 주변에 심었던 나무다.

따라서 절동산이라고 부르는 이곳 지명과도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 무환자나무는 원래의 나무에서 잘려 나간이후 새로 돋아 나온 싹이 자란 것이다.

원래는 밑둥 부분의 둘레가 3m되는 큰 나무였으나 잘려나간 이후 싹이 자라 높이 12m, 둘레 1~2m에 달하는 나무로 자라고 있다.

108계단을 올라가면 넓은 잔디 구장이 나타난다. 운동장 한 편 대나무 숲속에는 ‘유수암당’이 있다.

대나무숲을 헤치고 들어가 보니 제단석 앞쪽으로는 누군가 기도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유수암운동장에서 108계단을 내려와 길 건너 팽나무를 끼고 돌아 가면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시멘트길이 시작되는 부분 오른쪽에 왕돌이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다.

▲ 북왕돌.

이 바위는 원래 괴인돌로 길 가운데 있었는데 도로 확장공사로 현 위치에 옮기게 되었다.

일어난 돌이란 ‘왕석(旺石)’이란 뜻과 돌이 크다는 뜻의 ‘왕석(王石)’ 또는 ‘왕돌’이라 한다. 커다란 바위가 100톤 쯤 되는 것 같다.

왕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지 않은 그냥 암석이다. 선인들은 이 바위를 수문장형(守門將形)이라 하였다.

왕돌에서 발걸음을 돌려 ‘하르방당’을 찾아간다.

▲ 하르방당.

하르방당은 거문덕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오솔길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오른쪽에 소나무 사이에 있다.

당 주변에는 소나무와 삼나무,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당 주변에 둥글게 울타리를 둘렀고, 제장의 서쪽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매끈한 자연석을 좌우에 놓인 고임돌 위에 얹은 형태이다. 다른 당과는 달리 지전이나 오색천은 걸려 있지 않다.

이 제단의 왼쪽 울타리에는 잡석을 쌓은 뒤에 다시 윗면이 평평한 돌을 덮어 제물 바구니 등을 올려놓기 좋게 해놓았다.

이 당은 흔히 ‘큰당’이라 하여 ‘불도지신’을 모시는 당이다. 남당 부부신으로 하르방당이 부정한 음식을 즐긴다하여 따로 좌정하게 되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장마가 지거나 가물어도 하르방당에 와서 기도를 드렸고, 집안에 우환이 생기거나 홍역 등 전염병이 번져도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음력 정월에 좋은 날을 택해 제물을 정성껏 마련하고, 무당을 초청하여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빌었다.

▲ 할망당. 대나무 건너편 밭 중간에 있다.

하르방당 앞 직선거리로 160m 쯤에 거문덕이 할망당이 있다. 이 당은 찾기가 쉽지 않다. 필자도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이 할망당은 대나무 소롯길을 지나 왼쪽으로 밭담을 넘으면 팽나무 한그루가 유독 보인다.

이곳이 할망당이다. 제장 주위를 밭담과 같은 형태의 담으로 빙 둘렀다. 제단 안에는 팽나무가 세 그루 있는데 이 팽나무가 신목이다.

신목 앞에는 시멘트로 길게 제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신목 가지에 지전과 오색천이 놓여 있다. 이 당은 송씨할망을 모신다.

하르방당과 할망당을 보고, 나머지 오방석인 동선돌과 서선돌, 남모남돌을 찾아 나선다. 리사무소 인근에 살고 있는 어르신의 그려준 약도를 들고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다.

▲ 동선돌. 봉우리가 필봉같이 생겼다.

동선돌은 유수암 동쪽으로 가다보면 해밀리조트가 보이고 여기를 막 지나면 ‘동문’이라 새긴 표석이 나오고, 동문 표석을 돌아 소롯길을 내려가면 있다.

선돌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동산위에 우뚝 서서 마을의 동쪽을 책임지는 수호신이다.

이 지역의 속명을 ‘선돌선’이라고 하는데, 이름에 ‘선’이라고 붙인 것은 다른 뜻이 있지 않은가 궁금증을 갖게 되는 부분이다.

한자어로는 동입석(東立石)이라고 하며, 완여필봉형(完如筆鋒形)이라고 한 것은 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바위를 보면 바위 봉우리가 필봉 같이 생겼다. 그래서 유수암리에 인재가 많이 나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동선돌에서 왔던 길을 돌아 서선돌을 찾아간다.

▲ 서선돌.

서선돌은 충혼비와 순국자명단비의 대석으로 되어있으나 원래는 입석되었던 것을 이댁(李宅)의 귀복이라는 힘센 종이 분풀이로 이 돌을 쓰러뜨렸다는 전설이 있다.

픙수학적으로 금퇴형(金堆形)으로 부르는데 돈이 쌓인 형국으로 2010년 원래대로 복원해 놓았다.

이 바위를 동산 위에서 바라보면 얼굴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다.

▲ 남모남돌. 학자들은 고인돌로 추정하고 있다.

동선돌에서 이제 모남돌을 찾아간다. 다시 마을 중심에 있는 중황석을 돌아 처음 유수암에 들어섰던 길을 간다.

모남돌 가기 전 인낭굴 동산이 있다. 이곳에는 ᄆᆞᆯ방아를 재현시켜 놓았고, 인근에 곰솔나무와 정자가 있어 어느 정도 마을 전망을 볼 수 있는 아담한 휴식처이다.

인낭굴 동산에서 남쪽 유수암 주유소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진주강씨 묘비가 보이고, 동산을 조금 가다보면 눈앞에 모남돌이 보인다.

이 모남돌은 소나무 사이에 크고 작은 세 개의 바위가 접해있다. 학자들은 이 바위가 고인돌이라고 추축하고 있다.

모남돌을 자세히 보니 커다란 암석 밑에 작은 돌이 놓여 있어 고인돌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고인돌이라면 주변에 자기 깨진 것들이 보일 터인데 풀이 우거져 그러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또 커다란 바위를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옮겨 왔는지는 의문이다.

▲ 남모남돌. 너구리나 여우같이 생긴 바위이다.

모남돌 중 하나는 마치 너구리나 여우같이 생겼다. 이 바위를 뒤에서 커다란 바위가 받쳐 주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선인들은 ‘코끼리형’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무튼 이 바위는 보존가치가 크다고 생각된다.

옛 선인들은 동구 밖 커다란 바위에서부터 언덕의 바위까지 바위와 늘 함께 하며 삶의 위안을 삼았다.

오방석은 비록 하찮고 볼품없는 바위이지만, 바위를 통해 마을의 번성과 개인의 건강을 기원했다는 점에서 바위문화가 갖는 의미는 소중하다 하겠다.

 

<본 “제주의 기암괴석, 바위를 찾아” 쪽의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본 글과 사진의 무단전재 또는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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