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고 영특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천하 인재들과 교유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 만리(萬里)밖 사물까지도 꿰뚫어 본다는 큰 스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만리안(萬里眼)을 가진 큰 스님의 혜안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 할 요량에서였다.

스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좌중은 아랑곳없이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큰 스님의 격과는 거리가 먼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젊은 주인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대사님 무엇이 그렇게 우습게 합니까?”.

스님의 대답은 놀라웠고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 이곳에 앉으니 5만 리 밖에 산이 보이는 데 그 산에는 사찰이 있고 사찰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네.

그런데 방금 전 강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재주를 뽐내며 까불던 원숭이 한 마리가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을 봤네. 어찌 웃음이 안 나오겠나“.

주인은 놀란 채 하며 시종에게 점심상을 차리도록 주문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스님 밥그릇 바닥에는 갖가지 나물을 넣어 밥으로 덮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물을 밥 위에 얹도록 했다.

밥상이 나왔다. 스님은 다른 상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질렀다.

“어찌 나한테만 나물이 없는 밥상을 내놓는 거요?”.

젊은 주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조곤조곤 대꾸했다.

“대사님께서는 5만 리 밖 원숭이는 보면서 왜 바로 눈앞 밥그릇 밑의 나물은 보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큰 거짓말은 얕은꾀만도 못하다는 옛 중국의 우스갯소리다.

거짓말은 다리가 짧다는 말이 있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거짓말은 결국 진실에게 들키기 십상이다. 이것이 거짓말의 운명이며 속성이다.

“거짓말은 잠시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이 남긴 명언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짓말이 나라를 온통 휘 저으며 지배하고 있다.

대통령에서부터 청와대 비서진, 장관과 차관에 이르기까지 ‘누가 누가 잘하나’식 거짓말 경연에 사로잡혀 있는 꼴이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과 관련해서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국회청문회, 검찰 수사, 특검 수사, 헌재 심리 과정 등에서 보여주고 있는 권력 실세들의 ‘거짓말 게임’은 ‘거짓말 공화국’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놀랍고 희한한 ‘정권의 거짓말 페스티벌’은 결국 대통령 탄핵을 불렀다.

참고인, 증인, 피의자 신분의 소위 권력실세들의 입은 ‘아니다’, ‘모른다’ 등 책임회피로 입을 맞추었다.

끝내는 거짓말 외줄 타기나 롤러코스터를 즐기던 청와대 권력 2인자라 불리던 전 비서실장이나 장관 등 폼 나던 권력 실세들이 줄줄이 감방행이다. 거짓말 공화국의 말로를 보는듯하다.

거짓말은 불신의 씨앗이다. 개인 간, 사회구성원 간 신뢰의 바탕을 허물고 미움과 증오를 키우는 악성 바이러스다.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위험한 종양인 것이다.

공상허언증(空想虛言症)이라는 말이 있다. 거짓말 병이다.

내가 한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병이다. 1891년 안톤 델브뤼크가 처음 사용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을 하고 또 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설명되고 있다.

거짓말은 인격 장애의 정신 질환이면서 남을 속이는 사기(詐欺)범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인격 장애나 사기범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고 농락되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황당하고 부끄럽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거짓말이 권력 중심부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출렁거리고 있는 데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사회, 소위 SNS로 확산되는 유언비어는 단순한 소문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거짓말 편 가르기’로 진화하면서 가늠하기 힘든 증오심에 불을 지피고 사회곳곳에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촛불’을 절대적 선이나 정의로 포장하여 법치를 능멸하고 겁박하는 빗나간 군중심리에 의한 선동주의는 거짓말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기본적 사실 확인도 없이 거짓말을 퍼 날라 유포시키는 선동적 네트워크가 거짓말을 눈덩이처럼 굴리며 확대 재생산하는 형국이다.

‘거짓말 정권’은 심판받아 마땅하지만 군중심리를 등에 업고 폭력적 방법으로 심판해서는 곤란하다.

증거를 근거로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법치가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내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은 재판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법치를 유린하는 폭력이다.

검사가 공소장(증거)로 말하듯 판사는 이를 근거로 하여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로 말해야 한다.

최근 재벌기업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판사에 대한 신상 털기와 각종 유언비어의 공격은 악랄한 사법파괴 행위나 다름없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다. 법 적용에 오류도 있을 수 있다. 법에도 눈은 있다고도 한다.

그러기에 법의 판단에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유감을 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까지 만들어 유언비어로 인격 살해까지 저지른다면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거짓말로 법체계를 부정하고 압살하는 행위다.

법률적 분쟁에 있어 사법부의 판단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헌법정신이다.

‘거짓말 공화국‘의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심판은 이러한 사법적 판단에 근거해야 한다.

그것이 촛불민신이 명령하는 헌법정신이자 법치주의다.

따라서 지금은 법의 판단을 조용히 기다리고 평상심을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

더 이상의 혼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거짓말 공화국’의 오명을 쓰고 있는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수명이 다 됐다.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데도 더 이상의 매 타작이 필요한가.

재판 결과에 따라 파면을 시키든 감옥에 보내든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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