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우 신부

그날, 한림읍 관내 성 이시돌 피정의 집에서는 가톨릭 사제 피정이 있었다.

6월26일부터 7월1일까지 6일간이었다. 여기에는 제주도내 모든 사제 49명이 참석했었다.

피정(避靜·retret)은 가톨릭교회에서 일정기간 조용한 곳을 찾아 묵상과 기도 등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신앙을 가다듬는 종교적 영성 수련 과정이다.

6월28일, 이러한 영성 수련 중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낭보(朗報)가 날아들었다.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문창우(신성여중 교장)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주교(主敎)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사제 피정현장은 감격과 감동의 도가니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주교 임명소식은 매스컴을 타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신자가 아닌 이들도 축하와 기쁨을 함께 했다.

특히 제주도내 가톨릭 신자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껑충 껑충 주체 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감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출신 주교 탄생은 문주교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1899년 제주에 본격적인 가톨릭 선교가 시작된 후 118년만의 쾌거였다.

제주출신 주교 탄생은 1977년 제주교구가 설립된 후 40년 만의 첫 경사다.

따라서 제주가톨릭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제주출신 첫 주교 탄생이 그만큼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가톨릭교회에서 주교 품계(品階)는 ‘사제의 꽃’으로 불려 지기도 한다.

(종교적 품계를 세속 계급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일지 모르지만 굳이 억지를 부린다면) 군(軍)계급의 스타 진급이나 다름없다.

종교적 품계의 장군반열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마 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주교를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부교구장 주교는 교구장 승계권을 갖는다.

주교는 종신직이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목에서 퇴임을 하게된다. 그래서 보통은 75세를 정년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구장 주교는 75세를 앞두고 미리 교황에게 사의를 표하는 것이 관례다.

45년생인 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도 이런 관례에 따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문주교는 강교구장 주교가 사임하면 자동적으로 교구장으로 착좌(着座)하게 된다.

문주교 나이가 54세임을 감안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향후 20여년간 교구의 모든 사목적·행정적 권한을 갖고 교구를 이끌 공산이 크다.

일단, 문주교는 교구장을 보좌하면서 도내 49명의 사제와 100여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7만7천여명의 신자와 도내 27개 본당, 8개 공소의 목자로서 사목활동을 하게 된다.

교구장 수습이나 트레이닝 과정일 수도 있다.

문주교는 주교 임명 소식을 접하고 “하느님이 제게 엄청난 사고를 치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전언이 그렇다.

본인은 전혀 생각 못했던 일로서 “너무 놀라운 일”이라는 뜻으로 읽혀진다.

주교 임명은 전통적으로 비밀유지가 생명이라고 한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확고한 신앙, 품행, 신심 등을 망라해 적정한 후보자를 두고 교황대사가 여론과 팩트 체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을 거친 후 3명 정도 복수 추천하면 교황이 모든 것을 판단해 주교로 임명한다는 정도다.

그러기에 제주에서 추천한 3명의 후보자가 누구인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알아도 순명의 조직이 사제 공동체다. 비밀유지가 생명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주교는 1963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오현고(29회)를 나와 1988년 제주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에서 1년 넘게 포콜라데 영성학교를 다녔다.

1990년 광주 가톨릭대학에 입학해 1996년 졸업, 신학석사학위 취득 과 함께사제서품을 받았다.

2007년 제주대 사회학 석사, 2014년 서강대 종교학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광주 가톨릭대 교수와 영성지도를 맡았었고 2016년 3월부터 제주신성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해 왔다.

문주교는 형제가 사제다. 동생 문창건 신부는 제주시 동문성당 보좌신부로 있다.

신심 깊은 신앙가정 출신임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도내 가톨릭 교계 내외에서는 비교적 젊은 문주교의 등장이 제주가톨릭 교회에 어떤 변화의 바람으로 작용할 지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

사실 그동안 일부 사제들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 개입에 대한 논란이 왕왕 있어왔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다가가 위로와 기도로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는 낮은 자세의 사목활동보다는 특정한 사회적 이슈에 깊게 개입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부채질 했었다는 일각의 비판도 없지 않았다.

‘4.3 문제’와 ‘강정 해군기지 문제’ 등 등의 이슈와 관련한 제주가톨릭교회의 대응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흘려버릴 일만은 아니다.

젊은 주교가 이러한 갈등 구조에 어떻게 대응하고 풀어갈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는 것이다.

종교적 영성활동과 관계없이 사회문제를 보는 문주교의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인 것이다.

문주교 말대로 ‘하느님이 문주교에게 엄청난 사고를 치신 것’이라면 문주교도 제주가톨릭교계 쇄신에 큰 사고를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문주교의 사목활동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부교구장 주교의  서임식(敍任式)은 오는 8월 15일 이시돌 삼위일체 성당에서 치어진다.

이때 교구 사제들의 순명서약을 받게 된다.

“그대는 나와 나의 후임자에게 존경과 순명을 서약합니까?”.

주교의 권위(?)가 이때부터 발동되는 것이다.

문주교 등 2명의 한국 가톨릭교회 주교 임명으로 한국의 현직 주교는 16개 교구에 모두 28명(추기경·대주교 포함)이다. 여기에 은퇴주교 15명을 포함하면 43명이다.

또 한 번, 제주출신 첫 주교 탄생을 축하하고자 한다. 많은 이들과 함께 기쁨과 감격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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