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오라관광단지 사업자인 JCC 박영조 전 회장이 4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회장은 환경영향평가 동의안 심의 전에 투자 자본 검증을 하겠다는 제주도의 방침을 정면 비판했다. 박 전 회장 비판의 핵심은 제주도가 법적 절차에도 없는 자본검증을 앞세워 오라관광단지 인허가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 전 회장은 이날 제주도의 이런 조치를 ‘비법적, 편법적 행위’로 규정하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은 제주 개발 역사상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5조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을 실시하면서 사업 추진의 타당성과 사업자의 사업 추진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이번 자본 검증의 핵심이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허가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모두 부적절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박영조 전 회장은 도내 일간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었다. 이 때만 하더라도 사업 승인 절차 지연으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형식이었다. 전면 광고를 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자회견을 자청해 제주도정을 정면 비판했다. 기자회견이 열린 4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 자체가 뜨거운 제주 현안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기자회견문을 대독하게 했다. 회견문을 읽은 후에는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곧바로 제주도지사실로 향했다. 제주도지사에게 건의문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제주도와 사전 협의도 없는 일방적인 행동이었다. 20여명이 기자들이 박 전 회장과 함께 도청으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은 JCC 지분 100%를 이미 중국계 기업에게 넘겼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제주도민이 아니다’라며 신경질을 냈다. 막무가내도 이런 막무가내가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날의 기자회견을 전하는 제주 언론의 보도 태도였다. 한라일보와 제민일보, 제주신보 등 제주도내 주요 언론들은 5일자 기사에서 사업자의 입장을 대변했다. 먼저 제민일보 5일자 1면 머리기사부터 보자. 제민일보는 “오라단지 초법적 절차로 지연..원 도정 자본검증 논란 재점화”라는 제목으로 자본검증 논란으로 보도했다. 제민일보는 이 기사에서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을 추진해온 박영조 전 JCC 그룹 회장이 자본검증을 추진하는 제주도정을 공개적으로 비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면서 “도정의 자본검증을 초법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어 다른 개발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주도의 자본검증이 개발사업과 관련한 행정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면서 “이처럼 도내 대규모 개발사업자가 이례적으로 도정의 인허가 절차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제주가 추진하는 국제자유도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박영조 전 회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서 오라관광단지 개발 사업 자본 검증을 절차를 추진 중인 제주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제민일보 7월 5일자 1면

한라일보 역시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한라일보는 박영조 전 회장의 기자회견을 5일자 1면 머릿기사와 2면 해설기사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라일보 5일자 1면 머릿기사는 발언 중 하나인 "제주는 투자 기피처'라는 말을 1면 제목으로 뽑았다. 부제는 ‘도지사가 심의위 무력화, 국내외 신뢰 잃어, 자본검증 법적 그거도 없어 줄타기 정치 전형’이라고 뽑았다. 2면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투자유치 및 개발정책이 휘청거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개발 사업 무산의 책임을 제주도정에게 묻는 비판적 논조를 보였다.

한라일보 7월 5일자 1면

하지만 이런 비판기사의 근거는 박영조 전 회장의 일방적 기자회견 내용만을 담고 있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은 찬반 논란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박영조 전 회장은 이 사업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다. 이해당사자가 사업 승인 절차 지연의 책임을 제주도정에게 묻고 이 발언만을 근거로 삼아 파장이 예상된다거나,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고 보도하는 것은 공정보도라는 언론의 태도와 거리가 멀다.

언론은 사실 전달이 우선이다. 박 전 회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전달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개발사업 이해당사자의 일방적 주장을 근거로 파장이 ‘예상된다’, ‘우려되고 있다’는 식의 기사는 사실을 전달하는 언론사의 태도가 아니다. 파장과 예상이라는 단어는 사실의 언어가 아니다. 기자회견 내용이 파장이 되거나 우려가 됐으면 한다는 이해관계가 반영된 발언이다. 최소한 파장과 우려의 입장을 전하고자 했다면 사업허가권을 지니고 있는 제주도의 입장이나, 개발사업과 관련한 전문가집단의 코멘트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신문의 기사는 일방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한라일보 7월 5일자 2면

물론 언론이 객관적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언론의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공공의 이익, 즉 공익 우선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사실과 양심을 바탕으로 판단해 보도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을 전달하는 보도들은 과연 무엇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지에 대한 기본적 성찰이 부족하다.

제민일보 7월 5일자 사설
제민일보 7일자 사설

두 신문은 사설을 통해서도 박영조 전 회장의 발언을 두둔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제민일보 5일자 사설의 제목은 ‘“편법 무법 도정” 비판받을만 했다’였다. 사설은 “박 전 회장의 폭탄발언이 먹튀 비판을 막기 위한 선제공격일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면서 “법이나 조례 등 제도보다 자체 지침, 또는 도지사 의중에 따라 각종 개발사업의 운명을 쥐락펴락 해온 제주도가 명분을 제공한 것은 일정부분 사실”이라면 제주도의 책임을 추궁했다.

한라일보 7월 6일자 사설

7일자 사설에서도 “기약도 없고 조례에도 없는 자본 검증”이라며 제주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설은 “사업승인 뒤 사업추진이 중단되거나 속칭 ‘먹튀’를 막겠다는 의도를 굳이 나무랄 생각은 없다”면서 “환경영향 평가 등 각종 절차를 밟는데 소요되는 2-3년도 모자라 자본검증에 부지하세월 등 이런 수모 아닌 수모까지 받아가며 제주에 투자하려는 사업자가 나타다 다시 자본검증을 할 기회나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제주도를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양비론을 취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한라일보도 6일자 7일자 사설을 통해 연일 사업자의 편을 들고 있다. 6일자 사설의 제목은 “사업자가 오죽하면 도정 비판하겠나”였다

한라일보 7월 7일자 사설

개발은 불가역적이다. 오라관광단지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자본검증은 개발사업의 불가역성 때문에 사업 추진의 능력, 타당성 등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개발 사업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부산으로 가는 도로인지, 목포로 가는 도로인지 차를 세우고 자동차와 내비게이션을 점검하는 사람에게 왜 빨리 출발하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

이번 논란과 이를 전하는 도내 언론의 태도를 보면서 지난 2000년 송악산 개발 사업 논란이 떠올랐다. 지난 2000년 송악산 분화구 안에 리조트 단지 개발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당시 이사업은 행정 승인 절차까지 마친 상태였다. 환경단체에서는 송악산의 환경적가치가 크다고 반발했다. 제주도,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는 송악산의 환경적 가치가 없다면서 이에 맞섰다. 결국은 소송까지 갔고 소송에서 개발사업 승인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이 나왔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제주의 중산간의 환경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하자 일부에서는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지역이라며 스스로 평가 절하하고 있다. 개발사업자의 사업 편의를 위해서 제주 자연 가치를 천시하는 논리이다. 1960년대 백록담에 호텔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당시 정부와 제주도는 경제 개발과 관광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그럴듯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때도 나왔던 논리 중 하나가 한라산, 제주의 자연이 그렇게 경쟁력이 있지 않다라는 지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제주만한 경관을 지닌 나라들이 널려 있다.' '제주 관광이 살 길은 대규모 리조트 단지를 건설하는 특화 전략이 필요하다.' 이것이 당시의 논리였다.

개발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오로지 사업자의 편만 드는 도내 언론의 태도도 한심하지만 우리 스스로 제주의 가치를 낮춰 보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