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감성이 돋보이는 안톤 슈낙(1892~1973)의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우리 주변의 소소한 삶의 편린들을 엮었다.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죽은 새와 따사로운 초가을 햇빛, 새벽 한 시를 치는 둔탁한 시계소리, 대문의 녹슨 돌쩌귀, 울고 있는 아이, 출세한 옛 친구의 거만한 태도, 공동묘지, 술 취한 여인의 모습, 만월 밤 개짓는 소리, 지붕위의 빗소리, 우울한 병실의 환자 등등 슬픔의 서정성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다양했다.

일상의 사소한 대상에 대한 예리하고 섬세한 시선과 자연에 대한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각박한 세상, 정신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우리의 삶을 잠시 쉬고 다시 돌아보라는 조언으로 읽혀진다.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다.

그것으로 잃어버렸던 감성을 불러내고 빛바랜 세월의 흔적들을 되새김할 수 있다면 그렇다.

물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작가의 생각이다.

제한적인 과거에 대한 회상과 추억일 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떠올리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감성적 서정이 아닌 현실적으로 분노의 감정에 불을 지퍄는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 곳곳에서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갑질 세상의 불평등과 소득 격차로 인한 양극화 갈등과 분열이 제어능력을 상실해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권력과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갑질, 갖가지 모순과 부조리, 부도덕, 파렴치, 부정부패, 오만, 독선, 폭력 등 세상의 온갖 해악과 불의가 뭉텅이로 얽히고설키어 온전한 사회 정화 기능을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지난해 한 국책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는 OECD 회원 34 나라 중 5위라고 했다.

사회갈등 관리 지수는 27위로 최하위권, 이로 인한 사회갈등 비용은 국내 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갈등 유발 정도는 세계최고 수준인데 반해 통제 시스템은 최악이다.

한국 사회가 갈등 관리 능력이 실종된 심각한 갈등 사회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치·사회적 현안마다 격렬하게 충돌하는 정치권의 갈등, 양극화의 계층 갈등, 집 안팎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 일터에서는 노(勞)와 사(使) 또는 노-노 갈등으로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모든 현상이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갈등 구조로 국민적 자존감은 상실되고 절망의 늪 속에서 분노와 증오만 용솟음치고 있다.

최근 온 나라를 들끓게 하는 ‘살충제 계란 파동’ 등 먹거리 공포증도 우리를 화나게 하는 현상 중 하나다.

친환경으로 둔갑한 반환경적 살충제 계란은 국민적 분노에 불을 질렀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대응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공공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법을 다루는 국가 기구에 대한 신뢰도에서 한국이 27%였다.

42개 대상국 중 39위였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절망적 상황은 간디의 이른 바 ‘망국론’을 그대로 담아냈다.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되는 비폭력 저항 운동의 선구자였던 간디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회악으로 일곱 가지를 들었다.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인격 없는 교육, 인성 없는 과학,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종교’가 그것이다.

한국의 현실에 그대로 대입해도 어긋나지 않는다.

80여 년 전의 간디의 경고가 이처럼 한국의 현실을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원칙 무책임 막말정치, 일반 노동자의 1백 수 십 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 골목 상권까지 말아먹는 대기업 주도의 경제구조, 사람보다 돈을 먼저 생각하는 교육, 인간의 행복이나 편리보다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과학, 투기 탈세 등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쌓아 올리는 부(富)의 편증, 성폭력 성추행 등 발정난 발가벗은 쾌락 등은 간디의 ‘망국론’을 그대로 빼내다 박은 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망국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답을 찾기도 힘들다.

국민의식 개혁을 통한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이야기 하는 쪽도 있지만 피부에 닿지 않는다.

누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들’을 불살라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엮어 낼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정부 기능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거나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밖에 없다.

법적 제도적 뒷받침아래 정부와 종교계, 건전한 시민사회단체, 언론계, 경제 사회 문화계 등이 총망라된 국가개조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위해서도 국민정신 개혁 운동과 국가개조를 위한 공론화 작업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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