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양재 (李亮載) / 20세 때부터 고서화를 수집한 민족주의 경향의 ‘애서운동가’로서, 서지학과 회화사 분야에서 100여 편의 논문과 저서 2책, 공저 1책, 편저 1책 있음. 현재 ‘포럼 그림과 책’ 공동대표, ‘고려미술연구소’ 대표.

현재 제주에는 괄목할 만한 몇 분의 서예가가 있다. 필자가 현재 제주 서단(書壇)의 규모라든가 인물들에 대해서 세세히는 모르지만, 틈틈이 열리는 단체 및 개인의 서예전을 보면서 제주 서단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에는 서예 단체가 제각각이라서, 이들 괄목할 만한 몇몇 서예가들에 대해 지금 이 글에서 논한다는 것은 적절치가 않다. 다만 필자는 제주 서예가들의 활동과 발전에 대한 의견을 내고자 한다.

제주에는 서예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몇 곳 있다. 단체전이나 개인전 전시공간으로는 제주시에 있는 제주문예회관이나 제주학생회관, 서귀포시 서귀동의 ‘소암현중화기념관’ 등이 그곳이다. 또한 창작 공간으로는 서예학원이나 서예가의 개인서실 등의 공간이 있다. 이 가운데 서귀포의 소암(素菴) 현중화(玄中和; 1907~1997)의 기념관은 서귀포 법환동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근⦁현대의 유명 서예가 소암 현중화 서가(書家)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서예전문 미술관이다.

소암 현중화가 근⦁현대의 서예가라면,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 9년여 간(1840.12~1848.12.06.)이나 적거(謫居, 귀양살이)하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서화가였다. 따라서 필자는 제주의 서예가들과 문인화가들, 그리고 정통적인 한국화 화가들의 발전을 위하여 대정읍 보성리의 ‘추사적거지’에 있는 ‘추사기념관’의 확장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 추사 기념관은 세 곳이 있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는 생가(生家)로서의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이 있고, 경기도 과천시에는 ‘추사박물관’이 있으며, 제주 보성리에는 ‘추사적거지’와 ‘추사기념관’이 있다.

제주의 ‘추사기념관’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관심으로 결실을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시물 거의 대부분을 유홍준 선배의 지인 주변인들이 기증한 추사관련 자료로 꾸려져 있으며, 내가 알기에는 제주의 ‘추사기념관’은 개관 후에도 기증만을 요구할 뿐 정상적 절차에 걸쳐 유물을 구입하지 않았다. 반면에 과천의 ‘추사박물관’은 일본의 후지스카 지카시(1897∼1948) 유족으로부터 추사관련 유물을 대거 기증 받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관련 유물을 수집하고 있고, 예산의 ‘추사기념관’도 유물 수집에 들어가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의 수집 문제에서 생각해 보자.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수집⦁연구⦁전시⦁교육을 추구하여야 한다. 수집과 연구가 선행되지 않고 전시와 교육에 치중하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절반의 역할만 하는 셈이다. 말이 절반이지 수집과 연구가 없이는 박물관⦁미술관은 창의적 확장성이 없다.

추사 김정희는 어떤 분인가? 추사는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한 서예가이자 문인화가의 한분이 아닌가! 그런 김정희 선생이 9년여라는 세월을 머물렀던 창작의 산실은 예산이나 과천이 아니라 바로 대정읍 보성리 일대이며, 여기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를 창작한 창작의 산실(고향)인 것이다. 그런 추사기념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시와 미적지근한 교육이 아니라 작품의 수집과 서예의 연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제주의 ‘추사기념관’이 우리나라 역대 서법가들의 유묵을 수집 소장하고, 현대 작가들의 작품 발표실과 서예를 포함한 미술 도서실을 구비한다면, 그리하여 전국적인 서예⦁문인화 공모전을 실행하고 국제교류를 추진한다면, 제주의 ‘추사기념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예박물관이자 문인화박물관 될 것이다.

필자는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 초기(1990년대 초)의 여러 기획전에 소장 중인 옛 선인들의 유묵을 다수 출품한 바 있다. 당시 필자는 김양동 서가(書家)와 송영방 화백, ‘예술의 전당 서예관’의 노상동 과장과 이동국 학예관, 화상 우상헌의 이건환 사장, 그리고 수년전에 고인이 된 정충락(서예평론가), 정탁영 화백(한국화가) 등등과 자주 어울렸는데, 당시 필자는 “서예관을 서예박물관으로 만들자”고 자주 강조한 바 있다.

이제 필자는 공개적으로 제주 사회에 제안한다. 제주도와 도의회는 연간 10억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여 향후 10년간 추사 김정희의 작품은 물론이고, 우리 역대의 서가(書家)와 문인화가는 물론이고 유명인들의 묵적(墨跡)을 매입하자. 그렇게 하여 소장품 1.000점을 2~3년 내에 확보하고, 10년간 1만점을 목표로 수집한다면, 이곳의 ‘추사기념관’은 서예를 연구하고자 하는 학구파들이 꼭 찾아와야 하는 우리나라 서예의 메카(성지; 聖地)가 될 것이다. 그러한 수집을 시작하면, 현대의 서예가와 문인화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유⦁무상 기증을 통하여 소장시키려 할 것이며, 소장품 확보에 탄력을 받을 것이다.

제주도에서 1년 예산 10억이면 여러 소모성 공사를 좀 줄이고서라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돈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권이 4대강에 흘려버린 돈이면 우리나라는 강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다고 믿는다. 제주도 역시 소모성 예산을 좀 줄이고 문화 개발 및 보존성 예산을 늘렸으면 희망한다. 도지방정부와 도의회가 ‘추사기념관’에 적어도 10년 동안만은 매년 10억 정도의 예산을 편성하여 유물을 공개 수집하도록 한다면, 그리하여 제주의 서예가들과 문인화가⦁한국화가들에게 연구와 작품 발표의 기회를 준다면, 그들 가운데 탁월함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위치는 변방(邊方) 작가에서 한국의 중앙무대를 뛰어넘어 동북아의 중요작가로 상당히 격상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제주도가 나서서 제주 작가들이 격상할 수 있는 큰 멍석을 깔아 주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을 보여주는 제주 작가들……, 제주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면 어디 누가 어디서 알아줄 것인가? 이 일에는 도백뿐 만 아니라 도의원들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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