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이유근/ 한국병원과 한마음병원 원장을 역임하시고 지역사회 각종 봉사단체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아라요양병원 원장으로 도내 노인들의 의료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한글은 세계인이 인정한 인류 문명의 10대 발명품이다.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실 때의 글자로 하면 28자로 1만 개의 글자를 만들 수 있고, 두 개의 글자로만 단어를 만든다고 하여도 1억 개의 단어를 만들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동안은 활자 인쇄를 할 경우 이 많은 글자를 만들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글자를 식자(植字)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여 그 우수성이 드러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발명 되면서 한글의 유용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처럼 많은 글자를 만들 수 있으니 우리말로 다양한 표현을 할 수가 있다. 영어로 red나 reddish로 표현되는 ‘빨강’을 보면, 붉다, 빨갛다, 새빨갛다, 벌겋다, 시뻘겋다, 불그데데하다, 불그뎅뎅하다, 불그레하다, 불긋불긋, 발긋발긋, 붉디붉다 등의 표현이 있다. 또 어미(語尾)가 발달하여 여러 형태로 쓰일 수 있다. “얼굴도 곱다” 하면 칭찬이 되지만, “얼굴만 곱다” 하면 욕이 된다.

또 영어가 그리스어나 로마어에서 유래된 것이 많은 것처럼, 우리나라 단어 중 한자에서 유래된 것은 더 많다. 한자의 조어능력(助語能力) 덕택에 우리나라 말은 아주 다양하게 단어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단어 만들기가 쉽다 보니, 한자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철자법을 틀리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심지어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가지신 분들조차도 틀리는 경우를 본다. 젊은 기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에도 언론사에서 논설을 쓰시는 분이 ‘교육은 백년지대개’라고 쓰신 것을 보았다. 이 말이 百年之大計(백년을 내다봐야 하는 큰 계획)라는 한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타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면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퇴고(推敲)를 소홀히 한 것이 된다.

우리나라 글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띄어쓰기라고 여겨진다. 독일어에서도 여러 단어를 묶어서 한 단어를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예를 들면 물망초; Fergussen-mein-nicht) 우리나라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두 개의 뜻이 하나로 합쳐진 경우, 특히 한자로 만든 단어인 경우 붙여 써야 하는지 띄어 써야 하는지 헷갈리게 된다.

모 방송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리말 겨루기에서도 가장 많이 틀리는 부분이 바로 띄어쓰기다. 이 문장에서도 ‘붙여 써야 하는지 띄어 써야 하는지’와 ‘띄어쓰기’처럼 하나는 붙여 쓰고 다른 하나는 띄어 써야 한다. 오래 써서 한 단어로 굳어진 것은 붙여 쓴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올바로 쓰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요즈음 범람하고 있는 외래어 남용과 속어, 비어의 상용화다. 우리말 올바로 쓰기에 앞장서야 할 언론매체 특히 방송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쉽게 따라할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를 고쳐나가야 한다.

소설가 한강(한이 성이고, 이름이 강)은 유능한 번역가를 만나 <채식주의자>란 작품으로 맨부커 국제문학상을 탈 수 있었다. 그러나 소월의 시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다른 나라 언어가 과연 있을까는 의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말은 세밀하며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다. 문화란 섬세함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말을 아끼고 올바로 쓰는 것은 우리 문화를 한걸음 더 성숙하게 하는 길이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