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말했다. “북한 덕분에 총선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일본에는 공산당도 있는데, 공산당을 포함 사회당과 제1야당이 된 입헌민주당 등 야당 모두 총 20%의 의석 확보에 그친 선거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아베 정부는 ‘북한도발=국난’으로 등식화한 안보 위기 조성으로 크게 덕 보았음을 시인하고 있다.

한 때 우리도 선거 때가 되면 이른바 ‘북풍’이 작용하였다. 북한의 무모한 안보 위협적 발언이나 행태를 이용하여 보수 정당들이 투표 몰이에서 안보 장사를 통해 재미를 많이 보곤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선거에서 북풍은 이제 흘러간 노래가 되어 버렸는데, 일본에서는 아직도 북풍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남한 보다 일본 국민들이 더 북한의 위협에 민감해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본은 왜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것일까. 혹 여기에는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의 안보 위협을 이용하여 무언가 실리를 꾀하려는 일본 특유의 속셈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그렇게 일본도 우리에게는 북한 못지않게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언제면 극동 지역의 남-북-일이 사이좋게 지내는 날이 올까.

이렇다 보니 새삼 남한을 포함하여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 국가들에게 ‘북한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어느 나라하고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서로 공동번영을 구가해 가는 시절은 거의 없는 듯싶다. 지난 세월 북한은 그야말로 국제사회에서 왕따이고 외톨이이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북한처럼 폐쇄적이고 고립된 나라도 없다. 그 결과 북한은 나름의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가난하고 억압받는 나라의 표본이 되고 있다. 북한 지배층의 정권안보 강박증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북한이 대외개방을 시도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고립과 폐쇄로 인한 불편함과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님에도 북한에게는 그냥 버티는 방법 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일까?

보통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고들 한다. 남한과 북한이야 한반도의 땅에서 수천년 같이 지내온 한민족이 어쩌다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기에, 남한과 북한은 모든 문제에서 원초적 당사자이다. 다만 핵개발 문제든 대외개방의 문제든, 북한 문제가 북미관계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 미중관계를 조정해 나가는 데 유용한 지렛대로 북한이 활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북한이 깊숙이 내재하여 있다. 이 점에서 북한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 미국의 변화에 따르게 되는 종속성을 보이게 된다. 북한이 중소관계에서든 북미관계에서든 주체를 고집하고 틈만 나면 반미를 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래 향배가 미국에 달려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이다. 미국의 변화 없이 북한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분단 상황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현 위기 국면을 즐기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편승하여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많은 학자들이 합의하는 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서는 미일동맹이 한미동맹보다는 더 강하고 핵심적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일동맹의 중요성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적 지위를 강하게 펼치려 할수록 더욱 커지게 되며, 그 가운데에 한반도, 특히 북한이 정책 수단으로 존재한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 일본 모두에게 동아시아에서 각국의 외교안보정책을 펴나갈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정책 도구로 화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상당한 정도로는 북한이 이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북한이 고립되고 폐쇄적일수록, 북한은 언론 플레이하기가 좋은 대상이 되고 그만큼 활용도가 높아진다. 북풍도 그 하나이다. 이렇게 북한을 사냥 먹이감으로 삼기가 유용한 만큼이나, 동북아 강대국들이 북한의 개방을 얼마나 진지하게 원할까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일 때가 많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그게 미국 퍼스트든 중화주의든 일본의 보통국가화든, 본질에 있어서는 모든 나라가 자국 우선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더욱 더 북한의 개방은 멀어져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개방보다는 폐쇄가 각 나라에게는 더 유용하기에.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북한의 개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는 남한밖에 없다. 우선, 남한에는 북풍이 선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만큼이나 북한을 부정적으로 활용할 정치적 필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마침 동북아시아 6개국 중에서 그래도 남한의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진보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게다가 남한에게 북한은 고립이나 폐쇄가 아니라 개방일 때 유용성이 더 크다. 그래서 북한 개방과 대북 투자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 활로를 뚫고 나가자는 의지 표명은, 충분히 대국민 호소이자 정책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와 아베는 북한을 무시함으로써 북한을 축으로 하는 동북아의 현 대치구도를 그대로 자국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해 나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미국과 일본이 자국에게 유리하게 북풍을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만큼이나, 북한에 대한 이해 증진이라든가 현실타파 차원의 활로 모색은 거의 무망해 보인다. 이 점에서는 김정은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미국과 일본의 압박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게 보수적인(어쩌면 수구에 더 가까운) 트럼프, 아베, 김정은, 그리고 시진핑이 판치는 동북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외교 권한 없이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쉽지 않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개한 <자치분권 로드맵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제주특별자치도는 자치분권 시범도시로 추진된다.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로 출범할 때도 시범도시였는데, 이번에도 그대로 시범도시이다. 그러나 마냥 반복적인 시범도시가 아니라, 자율 영역의 확대가 수반되는 시범도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10여전과는 다른 시범도시여야 한다는 얘기이다.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제주에 ‘관광·환경·산업·재정 등 핵심 정책결정권을 이양’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10여 년간은 핵심 정책결정권을 이양해 주지 못했다는 반성인지, 아니면 새로 시작하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핵심 결정권이 무언지는 좀 더 자세한 계획을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또 제주특별자치가 말만 번지르한 시범도시일 뿐, 결국은 17개 지방정부의 하나로만 남아있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가 없지 않다.

그래서 다시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주목된다. 제주가 차별화된 시범도시로 자리하려면, 관광-환경-산업 분야만이 아니라 외교통일 분야에서도 이른바 ‘지방외교’의 이름으로 제주특별자치의 시범성을 확대-허용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앙정부와의 조정을 통해 과세자주권을 인정해 주는 것처럼, 중앙정부와의 조정을 통해 지방외교를 추동해 나가는 제주특별자치가 되어야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가 열린다고 본다.

제주에는 이미 일본과 중국의 총영사관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도청에는 외교부 대사가 파견되어 있다. 향후 통일부 직원도 제주도청에서 근무하도록 하고, 제주도청에도 지사의 런닝 메이트로 선출되는 4년 임기의 평화환경 부지사를 두고 그 휘하에 대외협력국을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렇게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외교-통일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 나가는 자치분권 실험을 하는 데서 제주특별자치의 남다른 시범성이 열리게 되리라 본다. 연방제 수준으로 외교-통일-안보 분야에서의 지방외교적 접근과 평화번영 정책을 찾아나서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시범자치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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