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홍석표/ (사) 제주금융포럼 회장, 탄소배출권 및 기후변화 관련 전문 강의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봄에 피는 꽃향기가 아무리 멀리 가도 백리쯤 가고, 아무리 좋은 술 향기가 멀리 간다 해도 고작 천리밖에 못가지만, 주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림으로 인해 우러나는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갈 수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20~589)의 남사(南史)에 나오는 글의 일부입니다. 당시 송계아(宋季雅)란 고위 관리가 있었는데, 정년이 되어 퇴직을 앞두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오늘날의 퇴직자들과 다름없이 노후를 편안하게 보낼 만한 집을 고르다가,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친구의 이웃집이 마음에 쏙 들었는데, 주인이 팔 의사가 전혀 없었는가 봅니다. 원래는 백만금의 값어치가 있는 집인데 주인이 가격불문하고 절대로 안 판다고 하니, 송계아는 정상가격의 무려 열배가 넘는 천백만금을 제시했다 합니다. 주인이 안 넘어갈 수가 없죠.

이사를 마친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그렇게 무리해서 집을 산 연유를 물었습니다. 송계아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합니다. “좋은 친구네 옆집에 살 수 있다는데, 억만금을 준다한들 아깝겠는가?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일세.” 백만금은 집값이요, 천만금은 친구 집 이웃이 되기 위한 프리미엄이란 뜻이겠죠. 여승진이 친구의 우정에 감동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쉽게 그려집니다.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는 그 송계아가 한 말입니다. 두 집을 가로막던 담벼락도 허물어버린 두 친구가 매일매일 정자에 앉아 한 잔 술 두 잔 술을 나누며 세상을 논하고 풍류를 즐기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론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매일 술잔을 나누던 두 친구의 간과 장은 과연 괜찮았을까? 고위직 관료였으니 집에 하인들은 많았을 터, 안주야 푸짐하게 잘 먹었겠지만 매일 들이붓는 술이 어찌 오장육부를 헤치지 않았을까요. 술 덜 취하게 하고 건강 덜 해치게 하려는 그들만의 무슨 비법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 당시 그들의 비법을 알 수는 없지만 현대에 맞는 우리만의 비법을 개발해낼 수는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필자도 집안 내력상 술을 좋아하다보니 평소 나만의 비법을 개발하려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현대생활의 우리는 현직이건 퇴직자이건 사회생활에서 홀로 외톨이 되는 걸 싫어하죠. 이 모임 저 모임, 그리고 이 친구 저 친구들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늘 정을 나누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가끔은 울분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일상의 마음 속 스트레스들이 씻겨나가곤 하죠.

우리 머리와 마음 속 스트레스들이야 그렇게 술로 씻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몸속 신경과 근육세포에는 술로 인한 독소와 찌꺼기들이 비례해서 쌓여간다는 건 우리들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잘 알면서도 쉽사리 술자리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필자를 포함한 대한민국 주당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유해한 줄 알면서 대책 없이 계속 무리를 하는 건 그것 또한 우매한 처사이겠죠. 술 해독 능력이 뛰어난 무슨 방법을 찾거나 숙취 해소에 도움 되는 어떤 나름의 비법들을 강구하여 술자리 또는 술자리 끝난 후에 적용하는 것이 음주생활의 지혜입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내 고향 제주에 갈 때면, 매연 가득한 서울의 밤공기 속에서 술 마실 때보다 훨씬 덜 취한다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도 모르게 술을 마시는 양이 서울에서의 두 배 이상은 되어버리니 취하는 정도는 결국은 서울에서나 매한가지더군요.

그래서 필자는 언제부턴가 제 나름대로의 ‘비기주’를 개발해서 일상의 음주 생활에 자주 적용하고 있습니다. ‘비기주’라는 용어가 생소하겠지마는 저에게는 아주 유용한 방법입니다. 고향 제주의 하늘 아래 서울에서의 두 배 이상을 마셔도 취한 정도와 숙취는 똑 같게 해주는 효과를 늘 보여주는 방법이죠.

필자가 즐기는 이 비기주의 창시자는 사실 따로 있습니다. 서울에 함께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필자가 존경해온 고향 어른입니다. 그 분은 자타가 인정해 주는 재경 어른인데, 그 분이 좌장으로 하는 부드러운 저녁 술자리에서는 건강주(그 분이 애용하는 이름)를 만들라고 필자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필자는 얼른 큰 소리로 주인장을 불러 이러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합니다. 모두들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그 선배님이 건강주에 대해 자랑 겸 소개를 합니다. 그러면 일단은 모두들 회피하는 모습이 역력하죠. 처음에는 마지못해 한잔하지만 두 번째 잔부터는 자유롭게 마십니다. 그 분은 얇게 자른 매운 청량고추와 양파를 주전자에 넣고 소주 2병을 부어 흔든 다음 주위 분들에게 권하면서 함께 마시길 좋아합니다.

매운 청양고추와 양파에는 비타민C와 캡사이신 성분이 있어 간을 보호하기 때문에 평소 주량보다 2배 더 마실 수 있으며, 아침에 머리도 아프지 않아 숙취해소에 유효하게 술 마시는 방법입니다. 게다가 소주에 타서 마시는 청양고추는 매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 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조한 주전자 술을 따르다보면 청량고추 씨앗이 같이 주전자 입구에서 소주와 같이 흘러나와 씨앗도 같이 마시게 되는 당황스런 경우를 자주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은 고춧가루가 왕창 실수로 나오는 건강주를 마신 초보자가 바로 왝하기 위해 화장실로 직행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씨앗을 안 나오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오랫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랬더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분명히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한층 발전된 청출어람 ‘비기주’의 제조비법은 이렇습니다.

㉠청양고추(오이고추가 아님) 약 20개를 물에 씻은 다음 믹서기에 소주 반병과 함께 넣고 갈아 액을 만든다.

㉡불순물이 없도록 면 보자기에 넣어 액만 잘 거른다.

㉢주전자에 완성된 액 1잔(소주잔)과 소주 2병을 넣어 '비기주'를 만든다.

특이한 점은 청양고추로 만들었지만 매운맛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평소의 소주처럼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혹시 매운맛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얼음을 조금 넣어 중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필자가 카오다시(顔出し: 우리말 속에 은근히 뿌리를 내린 일본어) 잡는 저녁자리에서 요즘 종종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비기주와 맥주로 만든 폭탄주를 만들어 마셔도 좋습니다. 또 다른 맛의 새로운 폭탄주가 됩니다.

행복한 마음, 넉넉한 마음이 가득 담은 정겨운 술자리를 통해 지인들과의 인향만리가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우리 주당들 모두의 작은 희망이 아닐른지요.

연말이 다가옵니다. 송년 술자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계절이 온 거죠.

주위 분들과 우애도 더욱 많이 나누면서 우리의 건강도 지키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이번 기회에 청출어람(靑出於藍) ‘비기주(秘器酒)’를 활용해 봄은 어떤지요?

마지막으로 <동의보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합니다. <추위를 물리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신진대사를 돕고 약 기운을 끌어주는 데는 술처럼 좋은 것이 없다>라고 한 대목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무턱대고 음주를 배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술이 혈액을 소통시켜 주는 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또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면 위장이 나빠지고 내장에 독이 쌓여서 수명이 짧아진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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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에 대한 상식)

 

1. 막걸리나 약주, 맥주, 청주, 와인과 같은 발효주의 경우에는 기간이 오래되면 술이 변질되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따로 정하고 있지만, 소주나 위스키 브랜디의 경우는 증류주로서 도수도 높고 변질될 소재가 술 안에 없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세청 기술연구소 연구에 의하면 알코올 도수가 20도를 초과하는 제품은 변질되지 않습니다.

2. 소주가 감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소량의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감기에 걸릴 확률이 낮다는 연구가 있으며, 실제로 얼마전 모 방송국에서는 감기환자가 고춧가루를 탄 소주를 마셨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실험결과 한 두잔을 마셨을 때 분명 효과가 있었답니다.

3.사이다나 콜라 같은 탄산수를 소주 등에 섞어 마시면 입의 감촉이 좋아지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마시기 쉽습니다. 또한 탄산수는 위 속의 염산과 작용, 탄산가스가 발생하면서 위의 점막을 자극해 알코올을 빨리 흡수시킵니다. 따라서 빨리 취하기 때문에 과음을 피하는 측면에서는 좋을 수도 있습니다.

4. 물이나 우유를 술잔 옆에 놓고 희석시키거나 또는 그냥 자주 마시는 것은 권할 만합니다. 물과 우유는 탈수를 막아줄 뿐 아니라 알코올 농도를 희석시켜 덜 취하게 합니다. 특히 우유는 칼슘과 비타민B2가 들어 있는 양질의 단백질원으로 술을 우유로 희석해 마시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5. 술 마시고 얼굴이 빨개지면 간이 튼튼하다? 술을 몇 잔만 마셔도 얼굴이 금세 빨개지는 것을 보고, “건강하다는 신호”라느니 “간 기능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의학 전문가에 따르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되어 있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그 같은 안면 홍조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따라서 술 몇 잔만 마셔도 곧바로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은 특히 과음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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