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Village Swaraj).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 비전이자 그의 책 이름이기도 하다. 간명한 말 속에 간디의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 있어,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오늘날에도 많이 읽히고 있는 책이다. 조금은 철 지난 것 같아 보이는 이 책이 계속 재조명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는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가 지배적 담론이자 정책 목표로 설정되어 왔다. 여기에서는 인간 존엄성보다는 기계문명과 산업화를 통해 부를 축적하고 삶의 편리함이 일차적 가치로 설정된다. 노동보다 자본이, 마을보다는 도시가, 지방보다는 제국이, 그리고 정신보다는 물질이 우선되고 강조된다.

대중보다 엘리트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자치보다 대의가 효율적이라고 보았다. 보통 사람들의 작은 지혜를 모아나가는 자발성보다는 비범한 영도자의 비전과 추진력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에 더 효과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1명의 천재가 100만 명의 삶을 책임지어 줄 수 있다고까지 주창되었다.

2017년-2018년 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더욱 더 세상살이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근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어느 것 하나 보통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사안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일상화가 우리의 삶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데,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인지? 과학기술 문명의 획기적인 변화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냥 순응하여 지내면 되는 그런 또 하나의 시대적 흐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난 5개월여간 차근차근 준비해 온 마을미디어협동조합(이하 마미협)이 2018년 1월 25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살짝 그 모습을 선 보였다. 아직도 준비 중에 있다고 하지만,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비전 아래 마을미디어를 통해 마을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풀뿌리 제주도민들의 뜻과 마음을 모아 나가자는 준비의 하나였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준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마을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자존과 긍지 그리고 행복을 높여나가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기에, 필자도 끝까지 지켜보았다. 참여자들의 열정과 순수에 공감하면서,

제주에는 43개의 읍면동이 있다. 마미협은 이 43개 읍면동 단위로 각각 마을 거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기자단들이 활약을 하게 되는 마을미디어 만들기의 서포터로서 역할하면서 동시에 이들 43개 마을미디어간의 협력과 공유를 이끌어내는 네트워크로서 기능하자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삶의 최일선인 마을에서 미디어가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도시-중앙-제국 중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로 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데 일조하겠다는, 소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

중앙정부와 광역지방정부 주도로 진행되어 온 저간의 관행적 관치의 탓도 그 하나의 이유로, 그동안 마을의 활력과 힘은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마을의 중요성을 무시한 적도 없다. 바로 여기서 마을의 힘 결집이 요청된다.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신용인 교수가 토론회에서 강조한 바, 어느 마을 하나로는 역부족이다. 마을 주민의 힘이 홀로는 안 되고,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미디어’가 있어서 이를 통해 마을의 목소리가 합쳐질 때, 비로소 마을이 제대로 대접받게 될 것으로 본다. 마미협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 ‘마을을 살려,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5만이 조금 넘는 인구의 옥천군에서 구독자가 4,000명이 넘는 옥천신문의 오한흥 발행인의 목소리는 가끔씩 격하기도 했다. 지난 2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으리라. 새로이 시작하려는 마미협에 대해 격려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미리 걱정을 표해야 할지도 순간순간 왔다 갔다 했으리라 본다. 옥천신문 운영자로서 겪었던 애환 몇 가지를 듣는 것만으로도 경의를 표하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하루하루 살얼음 걷는 것 같은 긴장과 헌신이 없으면 마을신문은 어렵다고 했다. 자본과 권력 모두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독립적인 미디어를 존속시켜 나가려면 단순히 아마츄어의 열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떻든 새로이 준비하고 있는 마미협 동참자들이 100명이나 넘는다고 하니, 제주 마을주민들의 열정에는 부러움이 크다고도 했다.

필자가 가장 감동 받은 것은 성산 마을신문인 <성산 소도리>의 김지현 편집국장의 감회였다. 대학 졸업 무렵 고향인 제주도 성산포에 내려와 <성산 소도리>의 일을 맡은 소회를 피력하면서, 마을미디어의 가능성과 어려움을 생생히 들려주는 그의 열정과 문제의식에 새삼 공감하게 되었다. 최근 성산 제2공항 추진과 관련하여 ‘주민도 모르는 주민간담회’가 열리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애기할 때는, 꽤나 상기된 모습이었다. 제주처럼 괸당문화가 지배적인 마을 공동체에서 마을의 주민이면서 동시에 마을신문의 기자 역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토로할 때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마을이 세상을 구하기 전에, 먼저 마을이 살아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마미협은 그 하나의 시도이다. 마미협은 마을 살리기의 한 서포터로서 시작한다. 궁극으로 마을은 그 마을에 사는 주민에 의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마을자치일 것이다. 그래서 엊그제 마미협의 토론회 주제도 ‘마을자치와 마을미디어’였다. 당연히 마을주민들의 협동조합이나 마을 기반의 사회적경제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년 2018년 마미협의 출발에 미리 건승을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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