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린 4·3 70주년 전야제에서 4·3유족들로 구성된 4·3평화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은 매해 4월 제주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잠들지 않는 남도'와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불렀다.(사진=제주투데이)

2일 저녁 6시부터 제주문예회관 야외무대에서 제주4·3 70주년 전야제가 개최됐다. 4·3 전야제는 공식 추념식과는 달리 국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주도하고 진행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도민들은 자주적 단독정부를 꿈꿨던 70년 전과 마찬가지로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국가보다 한 발 앞서 상상한다. 이날 발표된 '평화인권선언문'과 '동아시아 평화메시지'가 이를 방증한다. 선언문과 메시지에는 제주4·3을 자주적 단독국가를 꿈꿨던 도민들의 항쟁으로 기록해 도민이 주체가 되는 역사를 세우고, 국가폭력으로 인한 학살을 제대로 교육하여 다시는 4·3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염원이 담겼다. 70주년을 맞아 여느 해보다 무겁게 다가오는 이번 4·3 전야제의 의미를 살펴본다.

 

평화인권선언문

“4·3의 원혼은 애도나 기념식만으로 진혼되지 않습니다. 그때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제대로 진혼하려면, 분단 반대,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항쟁했던 그분들의 뜻이 대한민국 역사에 제대로 명시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2일 저녁 제주문예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제주4·3항쟁 70주년 전야제에서 낭독된 평화인권선언문의 한 부분이다.

이날 평화인권선언문은 처음으로 제주4·3을 다룬 문제적 소설 <순이삼촌>을 발간하며 군부에 의해 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은 현기영 작가가 직접 낭독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4·3 당시 희생된 이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그들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4·3을 민중 즉, 도민들이 주체가 되는 역사로 기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까지 4·3에 대한 공식적 논의가 한국사회에 미만한 극우반공주의 때문에 ‘항쟁’ 부분을 외면한 채 학살 부분에 국한되다시피 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방 후) 새 국가를 건설하려면 남북을 하나로 통일정부를 세우는 것이 옳지, 남북 각각의 단독정부를 세워서야 되겠는가, 하고 전국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죠. 그러니까 제주도민에게 죄가 있다면, 온 국민이 반대한 단독 정부 수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죄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것이 죽을죄란 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모순과 문제가 남북분단에서 야기된 것이 아닙니까. 4·3항쟁의 대의명분은 옳았습니다. 4·3의 조상님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4·3항쟁이 역사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했을 때야 비로소 4·3 원혼들이 편안히 진혼되어질 것입니다.”

2일 저녁 제주문예회관에서 열린 제주4·3 70주년 전야제 '기억투쟁 70년을 고함' 무대에서 현기영 작가가 평화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가장 적극적으로 자주적 단독정부를 꿈꾸며 투쟁했던 제주도민들이 '죄인'으로 낙인찍혀 초토화작전으로 몰살당했던 야만의 시대를 이제는 마감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신구범 전 제주지사를 필두로 한 일부 극우반공주의자들이 4·3을 폄훼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이에 현기영 작가는 자주적 단독정부를 꿈꿨던 당시 민중들의 맨 앞에 서서 4·3항쟁을 일으킨 제주도민들이 옳았다고 지적한다.

“잠깐 생각해 봅시다. 해방 당시 전 민족적 선결과제는 해방과 동시에 그어진 3․8선의 철폐와 일제 잔재의 일소였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해방이 아니라, 새로운 점령이었죠. 새 국가를 건설하려면 남북을 하나로 통일정부를 세우는 것이 옳지, 남북 각각의 단독정부를 세워서야 되겠는가, 하고 전국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죠. 그러니까 제주도민에게 죄가 있다면, 온 국민이 반대한 단독 정부 수립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죄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것이 죽을죄란 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모순과 문제가 남북분단에서 야기된 것이 아닙니까. 4·3항쟁의 대의명분은 옳았습니다.”

2일 제주문예회관 야외무대에서 개최한 4·3 70주년 전야제에서 평화메시지를 발표하는 양윤경 4·3희생자유족회 회장. '역사에 정의를 4·3에 정명을'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4·3사건이라 뭉뚱그려진 채 불려온 역사의 주체를 도민으로 인식하기 위한 '바른 이름' 즉, '4·3항쟁'을 의미한다.(사진=제주투데이)

동아시아 평화메시지

이날 4·3 70주년 전야제에서는 일본과 대만의 민간인들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평화메시지 발표됐다.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동아시아의 평화메시지는 참석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날 행사는 이 메시지를 통해 국가폭력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몰살당한 제주에서 제주,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기원하는 자리가 됐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과 일본 오키나와에서 활동하는 한라산회의 우치세토 유타카 대표, 대만 228사건기념기금회의 쉐화위안 이사장은 차례로 동아시아 평화메시지를 낭독했다.

양윤경 회장은 가해자는 용서하지만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진상조사는 끝까지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긴 시간 ‘폭도’라는 낙인에 찍힌 희생자들의 제사조차 숨죽여 지내야 했던 슬픔을 상기하며 70년 전 제주에서 자행된 국가폭력을 잊지 말고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주4·3은 지난 반세기 이상 입에 올리는 것조차 철저히 통제되어 왔습니다. 사건의 진실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박해를 하였습니다. 심지어 희생자의 제사조차도 숨죽여 지내야했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님 기일에 목 놓아 울 수도 없었습니다. 국가의 폭력은 3만의 목숨을 가져간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후로도 50년 이상 지속된 것입니다. 우리 유족들은 가해자를 용서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진상조사는 끝까지 요구할 것입니다.‘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는 이어 “제주4·3은 대한민국의 변방 제주섬 만의 일이 아닙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 인해 해방전후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제주4·3입니다. 제주4·3의 해결은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을 해결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라고 국민들을 향해 말했다.

그는 정치이념이 아닌 인권의 측면에서 4·3을 봐달라고 당부하며 국가의 역할을 상기시켰다. “제주4·3은 정치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권의 잣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제주4·3으로 얘기하고자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타인을 죽일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국민을 보호해하는 국가로부터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 늦기 전에 국가는 희생자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을 위한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진국가의 모습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4·3전야제 가설 무대가 세워진 제주문예회관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사진=제주투데이)

그는 끝으로 제주4·3이 화해와 상생을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양윤경 회장의 메시지에 담겨 있듯 이념공세의 중단과 이 역사의 바른 이름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양윤경 회장의 메시지에 이어 동아시아 국가에서 온 이들의 메시지가 발표됐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온 우치세토 유타카 한라산회 대표는 “올해는 그 죄(전범국가)의 원흉인 명치국가 탄생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따라서 오키나와로서는 그 150년을 미화하지 않고, 과거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며, 일본에 병합되기 전의 나라 류큐의 정신으로 돌아가 절대 평화주의와 헌법 9조를 지킴으로서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더불어 4·3 희생자 여러분에게 약속하며 제주에서 올리는 위령의 말씀을 대신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만에서 온 쉐화위안 대만228사건기념가금회 이사장은 “불행하게도 1947년 대만에서는 228사건이 일어났고 1948년 한국에서는 제주4·3이 발생했습니다. 두 비극은 모두 국가 공권력에 의한 참혹한 인권피해의 사례입니다.”라 국가 폭력으로 인해 민중이 고통을 받은 역상를 공유하는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이러한 비참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서로의 역사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며 양국 간 인권의 가치를 심화시켜 널리 알려 나가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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