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길현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고 제주미래담론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책혐시대’라는 말이 있다. <책혐시대의 책읽기>(개마고원)의 저자 김욱의 말이다.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도록 도와 독자를 창의적으로 각성시켜 주는 책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못 알아보거나 심지어 읽기는 하되 안 읽은 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책읽기를 하는 세태”를 지칭한다고 한다.

어이없는 얘기이다. 어쩌다 독서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여기에는 언제부터인가 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이유도 한 몫 하고 있다. 삼성이 돈 많이 벌수록 책혐시대는 오래 갈 듯하다. 그리고 ‘즉각적인 실용성’에서 책이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도 그 하나의 이유이다. 물신주의와 즉흥주의 그리고 쾌락주의가 판을 치는 한, 책혐시대는 예외가 아니라 상수가 될 전망이다. 그 이유가 어떻든 세상이 그렇게 변했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무망해 보이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독서율 회복과 출판·독서 생태계 강화’를 목표로 2018년 올 해를 ‘책의 해’로 설정했다. 필자가 올해를 책의 해로 알게 된 게 채 1달도 안 된지라,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면서 올 책의 해를 거치면서 무언가 대중적인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우현 대표의 헌책 모으기 얘기를 오경애 전 YWCA 이사장으로부터 들으면서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이 글은 크게 3가지이다. 하나는, 책의 해를 맞아 다시 한 번 ‘왜 독서인가’라는 조금은 진부한 생각을 점검해 보고, 그러고 나서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강우현 대표가 이끄는 탐나라공화국의 헌책 모으기 사업 얘기이다. 세 번째는, 강우현 대표의 헌책 모으기를 제주에서 책문화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는 건 어떤지의 제언이다.

왜 독서인가에 대한 가장 간명하면서도 유용한 답변으로 후지하라 가즈히로가 쓴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비즈니스북스)을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독서의 힘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열거되고 있다. 1)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상위 10퍼센트의 인재가 될 수 있다. 2)책을 읽느냐 안 읽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진다. 3)독서를 통해 상상하는 힘이 길러진다. 4)독서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배운다. 5)독서를 하면 인생의 단계가 올라간다. 6)독서는 관점을 늘리고 자기편까지 늘린다. 7)독서를 통해 저자의 뇌를 연결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너무 많아서일까, 딱 눈에 들어오는 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왜 독서인가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합당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도 쉽지 않다. 다만, 위의 가즈히로의 책을 보면, 직장인을 위한 필독서 14권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11권이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다. 11권 중 가까스로 필자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 때 한국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독한 바 있다. 그래서 올 여름 방학에는 가즈히로가 추천한 10권 중 최소 두 권은 꼭 읽어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남이섬 신화로 유명한 강우현 대표를 아직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다. 다만 독보적인 존재라는 생각이다. 남이섬 관광객이 300만이 넘어서자 ‘본인 할 일이 다 끝났다’면서, 제주로 온 그이다. 독특하고 기발하다. 제주로서는 정말 고마워해야 할 분이다. 그래서 필자는 탐나라공화국에 연락하여 올 8월 4일 제주국제협의회 주최로 강우현 대표 초청특강을 갖기로 약속해 두었다. 그 때에 강우현 대표의 이모저모를 더 자세히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강우현 대표의 헌책 모으기에 집중하기로 하자.

제주도 한림읍 정물오름 앞의 황량한 돌밭을 가꾸고 풀과 나무를 입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강우현 대표. 여기에 덧붙여 언제부터인가 이 탐나라공화국으로 헌책을 모으고 있다. 거의가 폐기처분되는 책들이다. 현재 16만권이 모아졌고, 연말까지 50만권의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지금도 6월 25일까지 ‘제주헌책페어’를 개최하고 있다. 끝나기 전에 가 보아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강우현 대표의 헌책 모으기 소식을 접했던 1달 전쯤의 어느 날.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탐나라공화국에 모아진 책들을 거기 공화국에만 두지 말고, 제주도 전역 여기저기에 비치하는 건 어떤지? 우선 제주도 곳곳의 공용 화장실 주변 내외 벽면이 떠올랐다. 책장만 마련하여 벽에 붙이면 ‘길거리 서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제주에 가면 책으로 둘러싸인 공공화장실이 있고, 거기에 있는 책은 마음대로 가져가도 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책이 순환한다면 그건 대박일 것이다.

굳이 공공화장실에만 국한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누구든 자신의 가게나 건물 안팎에 여유가 있으면 거기에 서가를 붙여 책을 갖다 놓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책의 해를 맞아 제주도정이 탐나라공화국과 손을 잡고 헌책페어축제를 범도민 차원에서 벌렸으면 좋겠다. 여기에 제주국제협의회, YWCA, 덕산문화재단 등 제주도내 각종 단체와 기관들이 동참하면, 그만큼 곳곳이 책으로 둘러싸인 제주도가 보다 가까운 시일에 형상화되리라 본다. 새로운 볼거리를 하나 더 갖춘 제주의 모습으로.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