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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 역사 속에 살아있는 제주여성의 유전인자양영수/ 전) 제주대 교수, 소설가
제주투데이 | 승인 2018.12.03 05:04

[제주투데이는 제주사랑의 의미를 담아내는 뜻으로 제주미래담론이라는 칼럼을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다양한 직군의 여러분들의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 제주발전의 작은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양영수/ 제주대학교 교수를 퇴임한 후 전업소설가로 활동 중

제주신화의 스토리에서 뚜렷이 부각되어 있는 똑똑하고 당찬 여성상은 실지로 전개되는 제주 역사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제주신화가 형성된 시대는 외지인과의 교류나 산업화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의 오래된 옛날일 것이다. 그러나 제주신화 속의 강인한 여성상은 제주여성의 유전인자로 작용하여 어떤 식으로든지 역사 속 제주 여성들의 삶의 모습에 재현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화는 역사의 소산이다. 제주여성의 강인한 생활사가 강인한 여신들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고, 역사와 전통이란 갑자기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연면히 전승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살펴볼 일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사에서 유약한 남성상과 강인한 여성상이 자리 잡히게 된 배경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제주 섬에서는 역사적으로 남자들의 용맹이 요구되는 무자비한 전쟁이 거의 없었다. 또한 제주사람들의 주된 생업이었던 밭농사는 부지런함과 자상함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어서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어울린다고 한다. 만약에 제주도에 벼농사가 주업이었다면 논두렁 배수로를 만들고 관리하는 힘든 일로 인하여 남자들 활동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라산에 호랑이나 곰이나 늑대처럼 사나운 맹수들이 살았다면 남정네의 힘과 용기가 쓸모 있는 세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로서는 노루, 수달, 다람쥐 같이 사람을 보면 도망치는 짐승들이 흔했고, 멧돼지 같은 사나운 짐승이 있기는 했지만 마을사람들의 큰 공포를 자아낼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쟁이 없다거나 밭농사가 생업이라거나 무서운 맹수가 없다는 환경조건은 제주 사람들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제주 여성들의 강인한 여성상이 찬탄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이와 같이 운명적인 생활환경에 대해 수동적인 반응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제주 여성들의 능동적인 의지가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제주여성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제주해녀라고 할 수 있다. 10미터 이상이나 깊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해야만 이 땅에 살 수 있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주도 남자들은 위험하고 힘든 잠수질 노동을 즐겨하지 않았고, 세계의 어떤 나라 여자들도 그런 위험한 일을 주업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승에서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잠수질은 목숨을 걸고 하는 중노동이라고 한다.

제주해녀들은 고향 땅 제주 섬에서만 이런 노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19세기 말 제주도 백성들에 대한 출륙금지령이 풀리는 때에 즈음하여 제주도 밖 외지로 진출하는 해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의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일본의 대마도와 시즈오까 등지, 심지어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기까지 제주해녀의 도전정신은 굽힐 줄을 몰랐다는 얘기이다. 바닷물이란 개인재산이 될 수 없는 공동 소유물이므로 작업장 이용을 둘러싸고 현지인들과의 충돌과 분쟁이 불가피했을 터인즉, 그들과의 화합과 협력을 위해서는 단순한 육체노동력 이상의 정신력과 친화력도 필요했을 것 같다. 일제강점기 중에 있었던 제주해녀의 항일투쟁 사건을 보건대, 이들의 정신력 가운데에는 투지와 의협심까지 있었다고 생각된다.

신화와 역사에서 막강한 저력의 소유자였던 제주 여성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떤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을까. 여성의 정치활동을 놓고 말할 때 제주여성들은 타지역에 비하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 같다. 제주도의회 의원들 43인 중에 여성은 7인인데, 이는 타지역에 견주어 막상막하라고 한다. 어쩌면 제주 여성들이 보기에 정치적인 야망 같은 것은 부질없는 허욕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제주 여성들의 문화활동으로 말하면, 타지역에 비하여 더 의욕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성인들을 위한 평생학습의 기회가 제주도내 행정기관이나 문화단체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마련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취미와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은 남자보다 여자가 단연 많다고 한다. 노래나 악기연주에서부터 회화, 문예창작 등 문화활동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제주도 지역사회를 더욱 살맛나게 만들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경제활동의 면에서 볼 때에도 제주여성들의 강인한 특성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하겠다. 제주도에서는 회사를 차리고 기업활동의 최전선에 나서는 여성들도 많은 편이지만, 가사를 겸하는 각종 자영업자들 중에 여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는 바이다. 제주의 가정주부들은 괜찮은 직장을 가진 남편이 있다고 해도 따로 일거리를 찾아 나선다. 옛날부터 제주사회의 이혼율이 전국최고인 것은 제주도 여성들의 자활-자립하는 뚝심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여성시대를 맞게 될 터인즉, 가정 밖에서도 더 다양한 방면으로 제주 여성들의 억척스러운 유전인자가 빛을 보게 될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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