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씨를 뜻하는 삼한사온을 빗댄 '삼한사미(三寒四微)'

일상으로 들어와 버린 미세먼지는 눈과 코는 물론 마음까지도 울적하게 만든다.

뿌연 하늘과 에머랄드빛 사계 바닷가는 회색빛으로 공기마저 쾌쾌하다.

일상화가 되어버린 미세먼지를 뒤로 하고

사계, 봄바다를 걸어본다.

용머리해안 일대와 사계포구에 이르는 '설쿰바당'

눈이 쌓여도 바람 때문에 구멍이 생겨 붙은 이름이라 한다.

갈색모래와 검은색 모래가 뒤섞인 독특한 색감의 모래길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리는 듯 설쿰바당은

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암반지대

이끼 낀 바위가 연출하는 바다정원과 투영된 산방산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물이 들어오는 시간 때라 아쉬움을 남긴다.

 

종모양의 거대한 용암돔인 구름을 품어 안은 '산방산'

세월의 흔적, 해안가를 둘러싼 겹겹이 쌓인 지층 '용머리해안'

용암 공급에 의해 중간 부분이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언덕 모양의 지형 '튜물러스'

화산섬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설쿰바당의 숨어있는 비경이다.

사계포구에 다다르자 빨간 등대와

바다에 떠 있는 형제섬이 그림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상모리를 연결하는 '형제해안로'

사계포구에서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까지는

제주 최고 해안 드라이브코스로 손꼽히는 형제해안로가 3km 쯤 이어진다.

수면 위로 반쯤 올라온 악어 모습을 빼닮은 송악산과

형제섬이 그림처럼 떠 있는 사계바다

무인도인 형제섬은

길고 큰 섬을 본섬, 작은 섬을 옷섬이라 부르고

본섬에는 작은 모래사장, 옷섬에는 주상절리층이 일품이다.

작품 '섬기행' 나무 아래로 보이는 형제섬

세찬 바람과 맞서 살아가는 한 그루의 나무가 외롭지만 강인해 보임은

섬사람들을 닮아서라는 작가의 해석이 와 닿는다.

해안사구(바람에 의해 날린 모래가 쌓여서 이루어진 언덕)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긴 사구지킴이 '순비기나무'

녹색잎이 뚜렷한 모래덮쟁이 '갯금불초'

대낮인데도 꽃잎을 활짝 열어준 '애기달맞이꽃'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 '번행초'

겨울꽃이 되어버린 '갯쑥부쟁이'

자람터를 넓혀가는 지피식물 '밀사초'

사계절 변화된 모습으로 사계 해안의 지킴이가 되어준다.

형제해안로 중간쯤에 형성된 갯바위지대

제주도에서 가장 젊은 지층인 '하모리층'은

안덕면 사계 해안부터 대정읍 상모리와 하모리 해안에 걸쳐 분포한다.

송악산에서 분출한 화산재가 바람과 파도에 깍여 나가 해안가 주변으로 쌓인 것으로

시간의 흔적을 남긴 독특한 색감을 가지고 있는 적갈색의 퇴적암층은

제주의 색다른 바다풍경이 되어준다.

어둡고 탁한 하늘은 푸른 바다조차 회색빛으로 물들인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거칠어지는 파도의 움직임

성난 파도는 밀물에 실려와 파도를 잡았다가 놓치길 여러 번

어두운 물색은 하얀 포말을 만들어낸다.

오랜 세월 동안 침식작용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

시간과 바람, 파도가 머물다간 적갈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모래와 자갈이 오랫동안 다져지면서 쉽게 부서지지 않고

거친 모래를 단단히 다져 놓은 형태의 퇴적암층 '하모리층'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에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선사시대 사람발자국화석이 발견된 하모리층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화석 산지의 지층은

해안가에 쌓인 응회암질 쇄설성 퇴적층으로 약 1만 5천 년 전에 형성된 것이다.

사람발자국 화석 500여 개와 함께 노루, 코끼리, 새, 사슴 등

동물발자국 화석이 확인되어 출입을 금하고 있다.

시야를 가리는 뿌연 미세먼지

차 창 밖으로 보았던 모습은 걷는 내내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봄을 기억하게 하고 걷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세월과 파도가 만들어낸 작품

바람이 머물다 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엔

겨울의 시작을 알렸던 바닷가의 황금빛 갯국은 시들어 갈빛 세상을 만든다.

무더기 갈빛 속에서 피어난 갯국의 아름다움에 한참을 멈춰 서고

일찍 봄을 연 홍자색이 아름다운 '살갈퀴'

진분홍 토끼 모습으로 공연을 시작하는 '광대나물'

하늘빛 미소가 아름다운 '큰개불알풀(봄까치꽃)'

제대로운 모습으로 다가와 준 대롱꽃 '개쑥갓'

사계 바닷가의 봄을 노래한다.

일제강점기 말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향해 소형 선박을 이용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 시설이다.

강제 동원된 주민들이 해안 절벽을 뚫어 만든 가슴 아픈 역사 유적들

전쟁의 참혹함은 깍아지른 절벽에 사납게 울부짖는 파도소리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의 울림이 유독 크게 들리는 듯 하다.

동알오름은

산이수동 마을과 인접해 있는 나지막한 동산처럼 보인다.

산방산, 송악산, 사계해안 등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서쪽으로 이어진 등성이는 섯알오름과 맞닿아 있다.

전쟁, 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 '다크투어리즘'

걷기만 해도 장면마다 영화가 되는 절경

최고의 전망과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서 있지만

지난 세월의 아픈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멈췄지만

섯알오름을 향해 걸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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