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축제’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주지역에서 진보의 깃발을 내건 후보들은 단 한 명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 득표율은 지난 선거에 비해 오히려 퇴보했습니다. 공고한 거대양당체제에 기반한 여러 요인이 먼저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 외적 요인들은 이미 드러난 지 오래인 상수입니다. 시선을 진보정치와 진보정당 내부로 돌려 치열한 성찰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제주투데이는 지역 시민들이 직함과 대표성을 내려놓고 자신의 이름으로 얘기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제주지역 진보정치 및 진보정당의 한계를 점검하고, 진보진영의 현실정치 참여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세워나가야 할지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선거에 참여했던 진보정당 관계자들의 목소리도 담고자 합니다. 그렇게 ‘축제’를 이어가고자 합니다.<편집자 주>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①"진보정치, 지역 연대의 날을 벼리자"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② 반드시 나와야 했던 공약들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③후보의 진정성과 공약보다 ‘내 편의 승리’가 더 중요?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④현실적 전략과 해법 가지고 있었던들

[2022지선 엔딩, 아무말로 확장하라]⑤어떤 정당이 변화하는지 도민은 지켜볼 것이다

(편집=김재훈 기자)
(편집=김재훈 기자)

필자에게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바로 '글루미 지방선거'이지 않을까 싶다.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그리고 선거 당일을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우울함의 극단을 보고 있는 듯 일상의 회복이 쉽지 않다.

이러한 증상은 비단 지방선거만이 아니라 지난 대선의 연장선에서 오는 후유증일 것이다. 대선부터 이어져 오는 ‘여성혐오’와 차별에 대한 피로감이 올 상반기를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성평등 성적표는 일단 도지사 후보들의 성평등 정책이나 공약이 거의 전무했다는 것만으로도 처참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4명의 도지사 후보들의 선거공보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평등 정책은 전무했고, 그나마 있는 ‘여성’정책은 결과적으로 ‘가족’과 ‘돌봄’의 패러다임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제시되었다. 오영훈 도지사 당선인의 경우 ‘복지’ 영역에서 ‘여성의 일·생활 지원강화’, 허향진 도지사 후보는 ‘해녀의 전당 건립’ 으로 ‘여성’정책이라는 명맥을 유지하고자 흔적이라도 남겨놓은 듯 하다.

더욱 아쉬운 것은 진보진영의 후보들 조차도 ‘여성’ 정책이든 ‘성평등 정책’이든 어떤 접근으로도 선거 공보물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물론 선관위에서 보내주는 공보물만을 보고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공보물은 각 후보가 가장 중요하게 제시하고자 하는 쟁점과 정책을 공약으로서 보여주는 기본 단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성평등 정책이 후순위로 밀려나며 주요 정책으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에는 다소 실망감이 깃든다.

이러한 관점은 각 정당의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불어 민주당의 선거 공보물에는 ‘여성’ 정책이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국민의 힘은 ‘문화’ 영역에서 ‘제주해녀전당 및 해녀마을 조성’으로 도지사 후보인 허향진 후보의 공약과 같은 결을 갖는다. 진보정당 혹은 소수정당의 공보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보당은 ‘한부모 가정 자립중심의 지원’으로 역시 ‘여성’의 영역을 ‘가족과 돌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기본소득당에서는 ‘복지’ 정책으로 ‘공공산후조리원 확대’, ‘모든 여성 월경용품 바우처 지급’ 그리고 ‘인권행정’에서 ‘다양한 가족 결합을 지원하는 생활동반자지원조례제정’, ‘아빠 육아휴직 필수보장제’, ‘여성 고용·임금·승진 격차 해소’ 등으로 복지와 인권 영역에서 여성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더욱더 아쉬운 것은 ‘정의당’과 ‘녹색당’은 이마저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주지역의 여성단체들과 제주도 여성가족연구원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제안하는 정책 및 공약들이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공식적 공보물에서는 이런 내용들이 한 줄 언급조차 되지 않거나 형식적 혹은 구색 맞추기 정도의 공약으로 머물렀다. 제주 여성으로서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저버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더구나 대선 이후 지속되고 있는 ‘성평등’에 대한 백래쉬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냈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시기상조’라는 프레임을 만들면서 ‘여성’이라는 객체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거리끼는 듯한 공약들, ‘가족’ 혹은 ‘돌봄’이라는 언어 안에 ‘여성’을 숨겨두는 방식으로 여성 관련 공약을 내놓았노라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제주에서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오면서 제주지역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무엇보다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의 성차별로 점철된, 제주지역 사회에 용인된 ‘가부장제 카르텔’에 균열을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개발과 환경의 문제도 바로 이 카르텔의 철옹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철옹성의 균열이 발생하지 않는 한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기존의 ‘남성’ 중심의 결정구조가 바꾸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지방선거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면, 답을 내기가 참 암담하다. 이는 오영훈 도지사 당선인만의 몫이 아니다. 12대 제주도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이들의 면면과 정당 득표율로 보여지는 결과가 제주도민의 정치적 의식의 현주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육의원 포함 45명의 도의원 중 9명(20.0%)의 ‘여성’ 도의원이 배출되었다. 11대(43명 8명, 18.6%) 대비 1명 더 선출되었다. 다만 이는 비례대표를 포함하는 것으로, 전체 지역구 선출직으로만 본다면 교육의원 포함 37명의 선출직 의원 수 대비 여성의원은 5명(지역구 4명, 교육의원 1명)으로 13.5%에 불과하다.

전체 입후보 현황에서 보더라도 교육의원 포함 선출직에 출마한 전체 후보자 수는 74명(서귀포 20명, 제주시 45명, 교육의원 9명)이었는데, 이중 여성 후보는 10명(서귀포 2명, 제주시 7명, 교육의원 1명)으로 전체 입후보자 대비 10.4%에 불과했다. 특히 서귀포지역의 경우는 입후보자들의 성비에서 이미 각 정당의 여성후보 진출이 저조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지방선거 결과가 더욱 더 우려스러운 것은 무엇보다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정당 투표에서 소수정당이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선거가 거대 정당 중심으로 치러지는 한계가 있고, 물론 이번 지방선거는 극단적 선택이 강요되는 선거였다고 일면 인정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후보나 진보정당 혹은 소수정당 혹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진영에서 기존의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지 못해 선거기간 내내 주변인으로서 겉돌기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거대정당 중심의 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재정비를 통한 또 다른 대안을 만들어내고 상생의 숨통을 트이기 위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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