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일본을 여행하려면 영어보다는 한자를 알면 아무래도 편하다. 좀더 욕심을 부려 히라가나 몇개라도 외운다면 일본여행이 편해질테지만 고집스런 한국 아줌마는 이를 포기하고 초등학생 딸과 일본 땅을 밟는다.

여류 수필가이자 시인인 오명주씨가 초등학생 딸과 함께 배낭 하나만 달랑 매고 일본 전역을 누볐다. 누구나 가봤음직한 코스를 돌아보기도 했고, 한국인이라면 꼭 가봐야할 곳에도 다녀왔다. 때론 남들이 쉽게 넘길만한 곳에서 색다른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이 책의 재미는 일본어 한 자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와 딸의 '산전수전' 여행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이다. 세차례에 걸쳐 오끼나와를 제외한 일본 전역을 누빈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담백하다. 꾸밈도 없고, 화려한 문장도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여행지의 감동을 최대한 절제하고 딸과 엄마가 서로 느낄 수 있는 사랑과 관심,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여행이 주는 잔잔한 느낌을 구성의 중심으로 택했다. 딸의 인생에 깊은 향기를 선사하고자 하는 엄마로서의 따스한 사랑이 문장에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다.

넘쳐나는 여행문들 속에 독자들이 자못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여행기간 내내 모녀간의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것이 이책의 특징이다.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곳을 누비고 다니는 배낭여행의 특징은 이 여행에서도 고스란히 따랐다. 주로 유스호스텔이나 민박집을 이용하면서 일본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거나 일본속 한국문화를 현장에서 느끼고, 일본사람들의 특성과 문화의 차이를 실감한다. 우리가 대충매체와 한국 안에서 접하는 일본 대중문화와 전통문화를 직접 접하면서 편견의 시각 차이도 누그러뜨린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혼의 숨결을 불어넣어 제작한 보물들이 일본의 전역에 산재해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 등 관찰자로서의 냉정한 시선도 잃지 않았다.

<진실을 묻어버린 평화기념비>라는 글에서는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대가로 벌을 받은 원폭 투하를, 마치 일방적으로 순수하게 피해만 입은 나라인 듯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다"에서 처럼,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면서 주변 피해국을 슬프게 하고 있는 일본의 이중성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드러내기도 한다.

저자가 그려낸 일본 묘사는 감상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그 풍경이나 이미지에 신화나 역사를 끌어들여 읽을거리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가령 마루노우찌에서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제주도 신화 차사본풀이'를 인용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까마귀 울음소리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게 된 그 연유를 세세히 밝히고 있는 부분이나, 호류지의 석등과 영주 부석사의 석등을 비교해 보는 부분 등은 신선하고 인상적이다.

딸 보라의 여행 뒷얘기는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어떤 성격인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히라가나도 모른 채 떠난 일본배낭여행』은 단순한 여행기 차원을 넘어 문화적 관점에서, 그리고 엄마와 딸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즐거운 추억과 배움이 되었던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문학의 전당/ 값 12,000원 <CBS노컷뉴스/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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