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소란스럽다.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른다. 절규한다. 고함을 친다. 웅성거린다. 누군가는 킬킬댄다. 사람들이 겁에 질려 신음한다. 평화를 염원하며 기도하고 있는 주교의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지른다. 앙상한 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이도 있다. 모두 색이 사라진 흑백의 세계다.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증폭된다. 작게 중얼거린다. 그 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외치고, 말한다.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가의 개인전 <붉은 구럼비>展(제주시 예술공간이아 전시실2, 8월 2일~26일)에 전시된 목탄으로 그린 작품들 얘기다. 그는 목탄으로 그 절규와 웅성거림과 킬킬거리는 소리를 평면 위에 찍어눌러 담았다. 전시 작품 ‘욕’(2020, 목탄·아크릴)에서 그 점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가로 112cm 세로 140cm 크기의 화면 가득 한 사람의 얼굴을 확대해 그린 작품이다. 거대한 소리다. 이렇든 고요한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외치고 말하고 있다. 소란할 수밖에.

이 전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및 투쟁 과정을 시기에 따라 캔버스에 기록한 전시다. 하지만 통시적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권력에 의한 폭압과 경악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목탄이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작품들은 오래 전의 국가 폭력 사건을 담은 신문 삽화처럼 보인다.

5.18광민주화운동, 제주4.3항쟁 당시 폭압적인 군인과 경찰 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람들이 목에 쇠사슬을 걸고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 권력과 그 ‘졸개’들은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한다. 사람들은 절규한다. 수십 년 전 군사독재 시절의 풍경이 아니다. 10년이 지나지 않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생생한 장면들이다.

해군기지를 막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겠다던 주민들이 저항하는 목소리가 전시회장에 가득 찬다. 조용한 전시회장이 말과 소란한 함성으로 가득 채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품들은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전시는 이렇듯 그들의 말과 한숨, 토로를 담고 있다. 채색 없이 목탄으로 그려진 작품 속의 인물의 목소리와 작품에 담긴 이야기는 더욱 강하게 울린다.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작가 제공)

색이 드러나는 작품들 역시 의성어의 세계다. 전시회 표제작 ‘붉은 구럼비’는 강정마을의 너럭바위 해변을 담았다. 그가 그린 ‘구럼비’는 아름다웠던 강정마을의 너럭바위 해변이 아니다. 핏빛이다. 혹은 부글부글 끓는 듯하다. 핵폭탄이 막 폭발한 직후 같은 풍경이다. 바위와 바다의 경계가 흐릿하다.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이 작품은 얼마간 묵시록적이다. 마치 조금씩 다가오는, 인류의 마지막 시간에 바라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인 듯이.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고길천 작(사진=김재훈 기자)

만화적인 요소를 곁들인 작품들도 몇 보인다. 엄연한 ‘기록화’들이지만 작가는 패러디와 상징 등 예술적 장치를 곁들였다.  작품 '새벽'(2021, 목탄·아크릴)이 대표적이다. 방패를 들고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만화캐릭터 같은 경찰들에 맞서 시민들이 저항하며 대치하고 있다. 헬멧을 쓴 경찰들은 군사주의와 개발주의의 이데올로그들을 연상케 한다. 그들의 뒤로 토목자본의 상징인 포클레인이 위치하고 있다.

작가는 시민의 뒷모습을 그린다. 시민들의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작가 밖에.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이 전시 작품들이 건네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는 관객 자신이다. 시민들의 배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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