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제주인권포럼 '농어업의 위기, 자유무역을 극복하는 농민 권리의 시대로' 세션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이 '농업차별과 농민의 위기를 불러온 자유무역'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7일 오전 제주인권포럼 '농어업의 위기, 자유무역을 극복하는 농민 권리의 시대로' 세션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이 '농업차별과 농민의 위기를 불러온 자유무역'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행복한 세계화’라는 맹신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믿지 않는 추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소수에겐 더 큰 부를, 다수에겐 빈곤을 가져다주는 불평등은 더욱 심해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고요.”

세계화란 여러 개의 국가가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정치·경제·문화의 장벽이 사라지는 과정을 뜻한다. 환경이나 인권 등의 분야에선 진보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볼 땐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가 간 무역 장벽이 사라지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자본 권력이다. 더 싼 외국인 노동력으로 만든 상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면서 부를 축적한다. 마땅히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지불하지 않아 더욱 더 많은 부를 가져간다. 

반대로 자본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높아지는 물가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으로 인해 더욱 가난해진다. 심화하는 부의 불평등 문제는 여러 통계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27일 오전 제주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제주인권포럼에서 ‘농어업의 위기, 자유무역을 극복하는 농민 권리의 시대로’ 주제로 세션이 진행됐다. 

이날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은 ‘농업차별과 농민의 위기를 불어온 자유무역’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이수미 팀장은 세계화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강행되다시피 한 자유무역 기조 아래 대한민국 농업이 직면한 위기를 강조했다. 

#끝없는 개방물결..자동차 팔아서 농산물 무역 적자 메운다? “허상”

우리나라는 지난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2004년 칠레와의 FTA(자유무역협정)를 시작으로 모두 58건의 협약을 체결, 이중 18개의 FTA가 발효됐다. 더 이상 개방될 게 없을 만큼의 상황이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의사를 밝히며 끝없이 개방을 시도하고 있다. 

▷한-미 FTA

시장개방률과 수입액이 가장 컸던 협정은 한-미 FTA이다. 지난 2012년 발효, 10년 가까이 지난 2021년 기준 농축수산물 수입액은 103억1700만달러(한화 약 14조8667억원)로 538% 증가했다. 수출액은 12억6200만달러(한화 약 1조8185억원)로 약 8%에 불과하다. 주요 수입품은 쇠고기, 옥수수, 밀, 대두 등이며 수출품은 라면이나 음료 등 가공품이다. 

▷한-EU FTA

미국 다음으로 규모가 큰 FTA는 지난 2011년 타결된 EU 27개국과의 협정이다. 지난해 기준 농축수산물 수입액은 57억5500만달러(한화 약 8조2929억원)이며 2008~2012년 평년 수입액 4억6700만달러와 비교해 11배가 넘는 1132%가 증가했다. 주요 수입품목은 돼지고기와 포도주, 치즈, 밀, 맥주 등이다. 

27일 오전 제주인권포럼 '농어업의 위기, 자유무역을 극복하는 농민 권리의 시대로' 세션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이 '농업차별과 농민의 위기를 불러온 자유무역'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7일 오전 제주인권포럼 '농어업의 위기, 자유무역을 극복하는 농민 권리의 시대로' 세션에서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이 '농업차별과 농민의 위기를 불러온 자유무역'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한-아세안 FTA

아세안(ASEAN) 10개국과의 FTA는 지난 2007년 6월 타결, 지난해 농축수산물 수입액은 57억3800만달러(한화 약 8조2684억원)이다. 2008~2012년 평년 수입액 7억2500만달러 대비 7배에 가까운 691%가 증가했다. 주요 수입품목은 팜유와 바나나, 기타 과실, 닭고기 등이다. 

▷한-중 FTA

중국과의 FTA는 2015년 12월 타결, 지난해 농축수산물 수입액은 51억9500만달러(한화 약 7조4859억원)이다. 2008~2012년 평년 수입액 7억8600만달러 대비 5배가 넘는 561% 증가했다. 

주요 수입품목은 기타 채소와 쌀, 김치, 고추, 당면 등이다. 특히 채소의 경우 신선 채소류뿐만 아니라 건조식품이나 냉동식품, 다대기류 등 국내 농산품을 대체할 수 있는 채소류가 상당 부분 수입되고 있다. 이는 곧 국내 농산물 가격 경쟁력을 떨어트려 농가소득 감소를 가져오는 결과를 야기한다. 

▷한-호주 FTA

호주와의 FTA는 2014년 12월 타결, 지난해 기준 농산물 수입액은 31억4200만달러(한화 약 4조5276억원)이다. 2008~2012년 평년 수입액 4억6700만달러와 비교해 573% 증가했다. 주요 수입품은 쇠고기, 사탕수수당, 밀, 면양고기, 보리 등이다. 

한국의 FTA 농수산물 무역 실적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적자인데다 그 폭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 정부는 왜 손해 보는 협정을 맺은 걸까? 

애초 시장개방을 할 때 한국 정부의 기조는 “자동차를 팔고 휴대폰을 팔겠다”였다. 과연 농축수산물 적자가 점점 커지는 만큼 자동차와 휴대폰 수출에서 흑자를 냈을까? 

FTA는 비교우위론에 따라 자동차를 잘 만드는 한국과 오렌지가 많이 생산되는 미국이 무역을 통해 교환을 하면 양국 모두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거대 식량 수출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농림축산식품 무역수지 적자 폭은 333억46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는 더 커지는 추세다. 자동차와 휴대폰에서 흑자를 내고 있지만 농수산품 적자를 메우기엔 부족하다. 

지난 4월8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농어민으로 구성된 ‘CPTPP 가입 저지 제주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가 투쟁선포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4월8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농어민으로 구성된 ‘CPTPP 가입 저지 제주농어민 비상대책위원회’가 투쟁선포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개방물결이 덮친 한국 농업의 실상

▷식량자급 최하위권 한국

재난이나 전쟁 또는 최근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등으로 인해 국경을 폐쇄하는 위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이다. 국가 내에서 국민이 먹을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수치인 식량자급률이 100%가 넘어야 비로소 식량주권이 실현될 수 있다.

식량주권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국민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우리나라와 FTA를 체결한 미국(116%)과 캐나다(185%), 프랑스(187%), 호주(181%) 등은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는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지난 2020년 기준 20.2%(사료용 포함)로 열 명 중 두 명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OECD회원국 중 한국보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국가는 일본과 네덜란드뿐이다. 2007년과 2008년에 발생한 세계식량위기가 또다시 찾아올 경우 한국은 매우 취약한 상황에 놓인다. 

한국 식량자급률. (자료=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제작)
한국 식량자급률. (자료=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제작)

▷한국 식탁을 장악한 수입 농산물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정부가 가장 먼저 하는 게 뭘까요? 값싼 수입이죠.”

지난 2004년 한-칠레 FTA발효 이후 농림업 생산액 중에서 재배업의 비중은 64.3%에서 57.1%로 줄었다. 주요 채소류를 재배하는 농가 수는 계속해서 줄고 있다. 각종 수입 농산물이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품목을 재배하는 농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해 배추 가격이 좋다고 하면 곧바로 배추 재배 농가가 늘어난다. 이는 다음번 가격폭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악순환은 매년 반복된다. 게다가 국내 농산물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언제든지 이를 대체할 수입 농산물이 매대에 오른다.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작물 종류가 줄어들면 ‘돈 안 되는 농사’를 때려치우는 농가도 점차 늘어난다. 

▷여의도 면적 581배 농지 감소

농업의 기본은 바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다. 지난해 국내 농지면적은 154만6000ha로 10년 전과 비교해 16만9000ha가 줄어든 규모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약 581배에 이른다. 

농지 감소의 주요 원인은 무분별한 농지 전용(다른 용도로 전환해 쓰는 것)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기반인 농지를 다른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고 있지만 그 장치는 매우 허술하다. 도로를 뚫고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세우기 위해 지금 이순간에도 농지는 줄어들고 있다. 

이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수입농산물의 증가를 부추긴다. 게다가 농민이 아닌 자가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농민이 농지를 갖기 어렵게 하고 있다. 

농지 면적 변화 추이. (사진=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제작)
농지 면적 변화 추이. (사진=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제작)

▷먹고 살기 힘든 농사 접고 도시로..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 수 없는 게 많은 농민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소농들은 일용직으로 일을 한다거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농외소득을 벌 수밖에 없는 게 한국 농업의 상황이죠.”

기업농이나 대농이 아닌 소농 등 영세농업인은 ‘투잡’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농산물 가격이 불안정하면 농가 경영이 불안해지고 결국 농민이 농사를 접게 한다. 버티지 못한 농민은 농촌을 벗어나 일자리가 많은 도시로 떠난다. 

이 팀장은 “젊은 농민을 키워야 한다고 다들 얘기하지만 지금 같은 암울한 현실을 두고 미래를 장담할 수 있겠느냐”며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농촌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15년 간 도시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 농촌 인구는 소멸을 말할 정도로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도시와 농촌 간 사회적·경제적 격차를 심화하고 농촌 소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지속한다. 

소득 격차 역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농가소득은 1980년 도시노동자 가구소득의 95.7% 수준이었으나 1992년 80.2%, 2019년 60%대까지 떨어졌다. 

▷국가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농업 정책

식량자급률이 100%를 넘는 식량 수출국가들은 식량위기가 왔을 때 수출을 안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식량수입국은 식량이 넘쳐나 수입할 필요가 없어도 일정량 수입해야 한다. 자유무역  규범 때문이다. 이는 국내 농산물 가격을 더욱 폭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쌀 문제가 큰 현안이다. 국내산 쌀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는 요인에 대해 정부는 ‘국민들이 쌀을 덜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팀장은 이 같은 설명에 반박했다. 정부의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쌀 수요 대비 국내 생산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수입물량이 ‘0’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쌀 수요량의 10%를 수입하고 있다. 국내 자급률은 90% 초반에 머무른다. 

쌀이 남아도는데 왜 수입을 할까? WTO 제약 때문이다. 과거 ‘수입의무율’이라고도 불렀던 TRQ(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할당량). 한국은 국내 수요량의 10%를 차지하는 WTO TRQ 쌀을 매년 40만8700t씩 수입하고 있다. 국내산 쌀 가격이 하락해도 변함이 없다. 

이 팀장은 “WTO TRQ 품목 63개 중 평균 이행률은 58.8%”라며 “이는 이 할당량을 꼭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협정 상대 국가의 눈치를 보며 국내 쌀 농가들에게 피해를 주는 ‘의무’를 다하고 있다. 이 팀장은 “정부가 국내 상황에 맞게 가격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농민을 위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세계화 이끌던 미국도 이젠 탈세계화하는데…

미국 트럼프 정부 전략 'MAKE AMERICA FIRST AGAIN' 관련 도서. (사진=amazon.com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트럼프 정부 전략 'MAKE AMERICA FIRST AGAIN' 관련 도서. (사진=amazon.com 홈페이지 갈무리)

“WTO는 이제 거의 해체된 상황과 같습니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WTO 입지는 좁아졌고 수출의 시대는 저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WTO 규범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자유무역에 앞장섰던 미국이 이젠 탈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은 30년 가까이 무분별하게 FTA를 추진해왔다. ‘세계화’라는 허상의 희생양은 농업이었다. 

이 팀장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식량주권’을 말하고 있다”며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을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농업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식량주권 원칙에 기초한 무역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해외에 식량기지를 설치해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한 식량을 자국에 들여와서 국민이 먹으면 된다는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팀장은 “자국의 농지에서 자국 농민이 생산한 식량으로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보급하는 게 정부의 몫”이라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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