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흘2리 주민총회.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주민총회.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사진=김재훈 기자)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에 이주할 경우, 입주와 동시에 '주민'으로 인정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결이 주민의 기준이 제각각인 마을향약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류호중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27일 강정해군기지반대운동 활동가 등 7명이 강정마을회에 제기한 '마을총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4일 제주투데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1996년 10월 제정된 강정마을 마을운영규약(향약)은 마을회의 정기총회를 통해 몇 차례 개정됐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지난 2019년 1월 개정된 제5조 '주민의 정의 및 자격'이다. 주민자격 제한이 엄격해진 것.

해당 조항에 따르면 강정마을 내 최초 본적 및 주소를 두고 거주한 기간이 10년 이상인 자가 주민으로 인정된다. 혹은 2007년 1월 전부터 현재까지 마을 내 주소를 두고 살아야 한다. 

이는 2007년 1월 전부터 마을에 주소를 두고 있던 사람이 아니면, 그 후에 이주한 사람들은 100년이 지나도 주민자격을 취득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 된다.

향약 제정 당시에는 강정마을에 사는 사람이면 주민이 될 수 있었다. 2008년 개정안에서도 마을로 전입을 했다면 그날부터 주민으로 인정됐다. 

2015년 1월 개정안에는 마을로 전입, 실제 거주한 기간이 5년을 경과해야 주민으로 인정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마을 내 전입한 군인과 군무원 등은 해당되지 않았다.

원고 측은 2012년부터 2021년 사이에 모두 서귀포시 강정동으로 전입신고를 마친 이들이다. 이 중 3명은 주민 자격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총회 결의 후 개정향약에 의해 자격이 박탈됐다.

제주지방법원.
제주지방법원.

원고 측은 "향약 개정의 목적과 수단이 다르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강정마을은 마을주민으로 구성된 '자연부락(자연적으로 발생, 형성된 촌락)'으로, 마을 입주 동시에 구성원으로 인정된다는 취지다. 

반면, 피고 측은 이같은 결의가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마을회는 자연부락이 아닌, 주민 대표기관인 비법인사단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총회에서 회원의 자격을 자유롭게 정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는 것.

피고 측은 "일부 몇 사람의 주장으로 총회에서 의결된 향약의 효력이 좌우된다면 향악의 신뢰성과 마을의 정체성도 흔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자격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이 있다고도 봤다. '주민 자격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 마을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다만, 재석 운영위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는 마을향약 5조 4항 등이다.

피고 측은 또 "해당 결의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공사 완료 후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라면서 "공동체회복사업으로 인한 혜택이나 수익이 있을 경우, 원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마을회가 해당 안건을 의결한 것은 '마을회'라는 단체의 본질과 어긋나 무효라고 봤다.

마을회는 특정 주민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독자적 단체가 아닌, 마을에 거주하는 불특정 다수의 주민들 전체로 구성된 영속적 단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마을 내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을 둘러싼 주민 갈등으로 향약이 개정된 2015년 전에는 전입일부터 주민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면서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해소 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피고와 그 구성원이 마을 전체를 대표하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를 특정 주민만을 회원으로 하는 단체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선고 사유를 밝혔다.

한편, 법원의 판결이 있고 나서 지난달 말 강정마을회는 정기총회를 열어 해당 조항을 개정했다. 

마을 주민인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 도내 모든 마을 향악에 명시된 주민 기준의 표준 가이드라인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