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윤일선 여사"

샹송을 너무 좋아해서 동호인 클럽을 만들고 일반 홀에서 공연까지 갖었었다니 필자는 깜짝 놀랐다.

프로 샹송 가수도 아니고 가정 주부로서 현재 70세인 재일동포 윤일선(尹一仙)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시다.

연대로 봐서 할머니라고 불러도 자타만이 아니고 제삼자도 납득할 인생 여로이다.

그러나 윤일선 여사께는 할머니라는 분위기가 전혀 없다.

할머니로서의 애정과 품위가 없어서가 아니다.

샹송이 갖고 있는 독특한 리듬과 감미로움이 어우러진 윤여사는 할머니 개념과는 다른 멋쟁이시다.

지난 4일 샹송을 즐기는 윤여사와 동호인들의 콘서트가 신오사카에서 있었다.

이 날은 오전 열한시경에 오사카 이쿠노 나카가와 초등학교에서 <민족학급 발표회>가 있었다.

이에 대한 기사는 지난번에 이 난에서 썼기 때문에 생략한다.

동포 어린이들이 펼치는 나카가와 초등학교의 풍물시, 민족문화 공연을 보고 나서 이번에는 프랑스 샹송을 듣기 위해 잽싸게 지하철로 이동했다.

아담한 작은 홀에 백여명의 청중들이 원탁 테이블을 칠팔명씩 둘러앉아 샹송에 귀를 기울였다.

필자는 작년부터 들어서 두번째였다.

가장 연장자인 윤여사를 비롯해서 세분이 출연했다.

약 한시간 반동안의 공연 속에 도중 커피 타임도 있었다.

모두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곡들이 감미롭게 조그마한 홀에 너울거렸다.

작년에 윤여사가 독창으로 <눈이 내리네>를 일본어로 불렀었다.

무척 잘 부르셔서 필자는 제주도에 계신 고두승선배님께<눈이 내리네>의 우리말 악보를 부탁해서 윤여사께 드렸었다.

금년에는 우리말로 부르시겠지하고 기대했었는데, 유명한 남성 도예가 코야마(小山) 씨가 게스트로 참가해서 이 노래를 일본말로 불렀기 때문에 듣지 못했다.

<내년에는 꼭 부르겠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헤어질 때 윤여사의 작별 인사였다.

샹송만이 아니고 마라톤과 등산을 즐기고 막걸리를 좋아하신다는 또 다른 일면을 들었을 때 필자는 깜짝 놀랐다.

<제주국제 마라톤>도 몇번 참가했으며, 하와이 마우이도의 마라톤 때는 풀코스 42.195㎞ 시니어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한 실력자이시다.

<제주도에서는 마라톤 응원도 성숙하고 주최측의 배려와 서비스도 아주 좋다고 그러지만 아직도 모자란 점 많습니다>

윤여사 주인이신 김예곤 회장님의 고언이었다.

가령 지난 해 대회때 입상자가 다음 해 참가했다면 경기 전에 소개하는 것도 하나의 배려이며 주최측의 봉사자만이 아니고 일반 도민의 자발적인 응원도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김예곤 회장님은 필자의 졸저 (이쿠노 아리랑) 소설집에 <다카라스카 우미야마>라는 작품 속의 주인공이시기도 했다.

<2년전에는 故 이수현 군의 추도 한라산 등산대회때도 마누라가 참가했습니다. 젊은 대학생들보다 먼저 등정을 하고 하산 때는 좋아하는 막걸리를 단숨에 마셔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2001년 1월 토쿄 JR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해서 목숨을 잃은 한국 유학생 이수현 씨는 당시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감동으로 들끓게 했다.

그 기념 등산이 한라산에서 있었다는 것을 필자는 전혀 몰랐었다.

이렇게 정력적으로 과격한 스포츠에도 도전하는 윤여사가 대조적이며 감미로운 샹송을 누구보다도 좋아 하시다니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약 16년전 다카라스카 가극단 출신인 후카미도리 나쓰요(86)라는 분의 문하생으로 많은 것을 배우셨다.

다카라스카 가극단이라면 여성들만의 가극단으로서 일본에서 유명한 일류 가극단이며 서울에서의 공연도 화제를 모았었다.

약 십여년 간 배운 약 16명의 문하생들은 재작년까지 매년 600명을 수용하는 홀에서 공연을 갖었었다.

그후 연령과 제반 사정으로 동호인들이 줄어들었지만 클럽의 리더로서 계속 활동하고 계시다.

일본인들의 존경의 대상 속에 샹송만이 아니고 각종 모임에서 교류를 나누는 윤여사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활동할 수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겸허한 자세 속에 막걸리도 좋아하는 윤여사님의 활동에 동포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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