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제주동물친구들 이사
김유진 제주동물친구들 이사

제주에서 4.3 관련 행사가 열리는 날, 비가 내리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느낌이다. 4.3평화공원에서 4.3 예술축제가 열린 지난 5월 13일 역시 그랬다. 야외에서 열리는 행사라 아침부터 쏟아진 세찬 장대비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개막 시간이 되자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이내 물안개가 자욱한 풍경은 일부러 꾸밀래도 꾸밀 수 없는 무대 장치가 되었다. 행사의 분위기를 돋우어 주었다. 

사실 우리 단체에서 4.3 예술축제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현재진행형이자 비극적 제노사이드로 기억되는 4.3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행사에 과연 동물권 단체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4.3을 소홀히 대하는 태도를 보이는 현 정부 집권층의 친 동물적(?) 행보를 보면서, 괜한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지 하는 우려도 이어졌다. 무언가 전혀 무관하지도 않을 것 같은 느낌에, 그렇다고 선명한 연결 고리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던 중, 한 회원님의 도움으로, 제주 출신 재일 소설가 김석범의 소설 “바다밑에서”에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소설 속, 한라산을 누비던 바람의 혁명가 남승지는 4.3 이후 한라산 토벌대에 잡혀 핍박당하고, 모진 고문을 받고 죽어가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돼지우리에 숨어 생명을 부지한다. 그는 긴 도망 끝에 결국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해 살아나간다.

이런 남승지의 모습이 인간에 의해 본성과 터전을 빼앗긴 채 사육당하고, 이용당하다가 버려지고, 심지어 인간의 재미를 위해 학대 당하거나 목숨을 빼앗기는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억울하게 고통받고 희생당했던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정신의 핵심은 이념, 인종, 성별, 빈부 등 무엇에도 상관없이 인간의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생명 존중의 가치 아래, 불필요한 차별과 억압을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과거 흑인에게, 여성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인간 동물에 대한 존중도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4.3 의 정신도 인간과 비 인간 동물을 가릴 것 없이, 종에 관계 없이 생명은 모두 하나하나 소중하다라는 포용력을 품고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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