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요행)

그는 부자다. 무려, 오름을 가졌다! 제주 360여 개의 오름 가운데 그것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오름을 말이다. 용눈이, 거문, 사라, 백약이, 새별까지!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오름을 가질 계획은 없었다. 그가 걸어온 삶이 그를 그렇게 이끌었다. 

그는 부자다. 섬을 가졌다! 그런데 이 섬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란 이름으로 불려서 책이면 책, 사람이면 사람, 물건이면 물건 그 모든 것이 ‘취향의 섬’의 범주 안에 든다. 그러므로 그는 엄청난 부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절대적 부자의 이름은 이명옥. 그는 2016년 봄, 혈혈단신 제주로 들어왔다. 직장생활을 하며 번아웃(Burnout)이 왔고, 그쯤 믿었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도 맞았다. 몸도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다. 제주에 내려와 가장 먼저 지낸 곳은 북서쪽 바닷가 마을 금능리. 이 무렵 중고 자전거를 샀다. 매일 해가 질 때면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를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가슴 저리게 생각하고, 머금고, 털어버리던 나날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 진입로에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 진입로에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요행)

그는 당시 금능리의 한 게스트하우스의 스탭이었다. 숙식을 제공받고 게스트하우스 업무를 돕는 것이 일이었다. 직장생활보다는 퍽 여유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니, 가슴 저리게 생각하고, 머금고, 털어버릴 수 있었다. 

처음엔 한 달간 체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잘 알려졌다시피 제주는 정말이지 너무나 매력적인 마을을 많이 품고 있다. ‘북서쪽 바다를 한동안 봤으니 이번엔 북동쪽 바다를 보러 가야지, 따뜻한 남쪽 마을도 좋지 않을까?’ 하며 한 달에서 두 달 정도의 간격으로 도내 곳곳을 옮기며 머물렀다. 그런 생활 속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남편도 그와 마찬가지로 당시까지 주된 삶의 터전이던 곳을 떠나 제주로 여행 온 참이었다. 

제주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서 게스트하우스 스텝 생활로만은 용돈이 부족해졌다. 프리랜서로 예전에 하던 일을 조금씩 의뢰받기 시작했다. 그의 본업은 북디자이너. 제주에서도 노트북 하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웬걸, 일을 시작하니 일감이 점점 늘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하기엔 피로감이 커졌다. 작업실겸 살 곳이 필요해졌고 그렇게 제주에 자연스레 이주하게 됐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귀여운 안내판.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귀여운 안내판.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귀여운 안내판.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귀여운 안내판. (사진=요행)

제주에서의 삶은 그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달랐다.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자꾸만 생각지 못한 선물이 주어졌다. 제주로 오기 전까지 그는 남들이 선호하는 것 그래서 남들이 사는 것을 따라 샀다. 남들의 삶이 자신의 기준이 된 줄도 몰랐다. 그냥 휩쓸려 살아왔던 것이다. 

제주에서는 혼자의 시간이 많았다. 자칭 ‘파티피플’인 그였지만 혼자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그제야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어느 날 ‘아. 사람은 모두 정말이지 다르구나.’라는 걸 불현듯 통감했다.  

“우리는 모두 지극히 사적인 취향으로 이루어진 고독하고 아름다운 섬이다” 

이 생각은 그가 제주에서 일을 벌이는(?)데 모토가 됐다. 이것을 모토로 취향의 섬 북앤띵즈는 2021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서귀포시 호근동의 고즈넉한 감귤농원 한 켠에 말이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이명옥 책방지기가 직접 디자인한 책들.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이명옥 책방지기가 직접 디자인한 책들. (사진=요행)

책방과 이웃한 건물은 그의 부모가 운영하는 숙박업소다. 그곳 이름에도 ‘취향의 섬’이 붙는다. ‘취향의 섬’은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의 이름이다. 가장 먼저 문을 연 것은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음식점이, 그 다음은 호근동의 숙박업소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 프로젝트가 숙소 옆 책방이다. 

음식점의 경우 남편과 함께 시작했으나 결국 그가 나가 떨어진 셈이다. 서로의 극명한 성향 차이를 확인하면서다. 숙박업소의 경우 그의 부모가 제주로 이주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명옥 책방지기가 본인의 생각과 감각으로 디자인한 곳이 책방이다. 

‘북앤띵즈’라고 한 것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는 그림, 그가 촬영해 제작한 사진 엽서, 제주 소상공인의 수제품과 세계 공정무역 상품 등도 함께 판다. 이곳은 책을 보러 왔다가 소품이 반하고, 소품을 보러 갔다가 책을 가슴에 안고 가는 곳이다. 

귤밭의 귤은 소중한 농산물이므로 농사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산책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감귤 수확철에 감귤을 따는 행위는 절대 금물!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지기의 정성스런 책 소개글을 볼 수 있다.(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지기의 정성스런 책 소개글을 볼 수 있다.(사진=요행)

책방지기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읽는 것도 좋아했고 무엇보다 사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책을 잔뜩 사도 눈치를 보지 않는 곳은 책방이라서 책방지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막연하게 품고 있었다. 그러다 3년 전 부모님이 제주로 이주하시고 이 농원의 건물을 임대하면서 그의 작업실이 생겼다. 작업실로만 쓰기엔 공간이 남아서 어릴 적 꿈을 소환한 것이다.

사람의 취향이 저마다 다양하므로 갖춰놓은 책의 주제도 무척 다양하다. 다시 말해 편중되어 있지 않고 골고루 갖춰져 있다. 그것을 책방지기는 다시금 ‘취향’, ‘동행’, ‘제주’ 등등의 카테고리로 친절히 나눠서 소개한다. 책방지기가 특히 재밌게 읽은 책들엔 손으로 쓴 소개글도 붙어있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취향 섹션.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취향 섹션. (사진=요행)

취향의 섬 북앤띵즈의 탄생은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책을 눈치 보지 않고 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으나 이곳을 꾸리고 운영하는 책방지기의 마음은 진지하다. 

“우주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나’와 나를 이루는 조각 조각의 좋고 싫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고요한 내면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시간으로 여행의 한 페이지를 채워보세요”

“책방은 느릿느릿, 하지만 가고자하는 방향을 찾아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오실 때마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눈치채주신다면 기쁠 것 같아요”

고독하지만 참 아름답고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 그곳이 취향의 섬 북앤띵즈다. 다음 편에서는 이명옥 책방지기가 어떻게 오름을 소유하게 됐는지에 관한 사연을 소개한다. <2부에서 이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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