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에 대한 오영훈 제주지사의 입장은 현안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오영훈 지사는 취임 전후 제2공항 건설사업 관련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이에 그 실현 방안이 주목됐다. 가장 강력한 자기결정권 확보 수단인 주민투표도 관심을 모았다.

제주시민사회는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해 힘을 모았다.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주민투표로 결정토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오 지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토부장관에게 건의한다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다.

제2공항 건설 강행을 고수하는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수 십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을 터. 추후 정권이 바뀌고 제2공항 건설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존중하겠는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 지사는 제2공항 주민투표를 요구하지 않았고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는 물거품이 됐다.

그러면서 행정체제 개편은 주민투표를 통해 처리하겠다고 한다. 주민투표를 하는 이유는 정부나 국회에서 제주 지역 행정체제 개편을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제의 일관성 등이 이유가 된다. 가령, 특별자치도제를 실시하면서 없앤 '군' 체제를 다시 부활시키는 방안은 중앙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오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에 제주 지역 행정체제 개편(시군 부활) 시 주민투표를 건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특별법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서 통과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오 지사는 행정체제 개편 공약을 위해 연구용역과 공론화 과정 등을 어렵게 밟아나가고 있다. ‘시군 부활’ 혹은 ‘행정시장 직선제’ 중 하나로 가닥을 잡게 된다. 오 지사는 공론화를 거쳐 수립된 두 안 중 하나에 대한 주민투표를 정부에 요구할 예정이다. 하지만 오 지사가 발의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다 해도 주민투표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제주도가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 요구를 하더라도 행안부 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그 외의 권한이 없다. 주민투표를 요구해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시할 수 없다. 제2공항과 마찬가지다. 제2공항 주민투표도 실시 권한이 없고,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도 실시 권한이 없다. 제2공항과 달리 행정체제 개편 때는 주민투표를 요구하면 정부가 마냥 받아들여 줄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이유는 없다.

이에 대해 오 도정은 21일 발표한 행정체제 법률 관련 설명자료에서 “행안부장관은 여기(제주도의 주민투표 요구)에 구속되지 않지만, 제주도로서는 실질적 의사표시가 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투표 요구를 하는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오영훈 도정은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것이 강력한 정치적 의사 표현 방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제2공항의 경우 역시 오 지사는 국토부장관에게 도민의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실질적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 지사는 그 ‘실질적 의사표시’를 내팽개쳤다. 권한이 없다고 말하면서. 행정체제 개편 때는 그 실질적 의사표시로 주민투표를 관철 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락가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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