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인 1898년 9월 1일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으로 일컬어지는 '여권통문'이 발표됐다. 정부는 이를 기념해 매년 9월 1일부터 7일까지 양성평등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양성평등주간, 제주도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제주도정은 기념식에서 매년 성평등한 제주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성평등한 제주... 어디까지 왔을까. 얼마나 더 달려가야 할까. 제주 정치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열려 있을까. 어떻게 열 수 있을까. 제주투데이는 '다함께, 기회를' 코너에서 이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여성 임원 ‘0명’

2023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정기 총회(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위 사진은 올해 초 열린 제주도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정기총회의 모습이다. 도내 각 지역의 주민자치위원회장들이 모여서 그들 중의 회장을 다시 선출했다. 주민자치위원회장들의 대표와 임원진을 뽑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먼저 임원진이 기형적으로 비대하다. 43명 중 임원진이 13명이다. 임원진이 구성원의 3분의 1이다. 수석부회장을 포함 부회장만 7명이다. 감사는 3명이다. 구성원에 비해 임원진 수가 굉장히 비대하다. 거기에 더해 대표부터 감사까지 임원 13명 모두가 남성이다.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2023 제주특별자치도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임원진(표=김재훈 기자)
2023 제주특별자치도 주민자치위원회협의회 임원진(표=김재훈 기자)

전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의 남녀 성비를 들여다보면 이런 상황이 일면 이해된다. 현재 43개의 제주 지역 주민자치위원회 중 여성 위원장은 정방동 주민자치위원장 단 1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원장 협의회 총회 사진이나 임원진 명단에서 여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 자연스럽다.

제주도에는 총 43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있다. 읍면동마다 하나씩 설치돼 있다. 전체 1809명 중 여성은 371명이다.(2023년 4월 기준) 34%다. 주민자치위원이 되는 데는 특별한 자격이 없다. 주민 누구나 4시간 교육을 이수하면 주민자치위원으로 신청할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법적 지위와 권한이 약하다. 주요 역할은 각 지역 주민센터 운영에 관해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외 대부분의 활동은 마을 내 봉사활동과 친목활동으로 이뤄진다.

제주 지역 43개 주민자치위원회장 중 여성은 단 1명 뿐

주민센처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주민자치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제주시 연동 주민센터의 예를 보자.  연동 주민센터가 올해 하반기에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수묵캘리그라피 응용한 생활예술품, 팝송을 통한 기초생활영어, 도자공예교실, 라인댄스, 생활체조, 에어로빅, 고전무용, 통기타교실, 색소폰, 팬플룻, 트롯장구, 제주어 트롯교실, 아로마숨명상, 경제 공부의 시작 가계부 쓰기, 업사이클링과 원예아트, 라탄공예, 수채화교실.

대체로 여성 참여도가 높은 프로그램들이라 할 수 있다. 연동 주민센터 뿐만이 아니다. 전 지역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수요자는 여성이 많다. 이에 주민센터는 여성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프로그램들을 상당수 구성한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을 할 때 위원장이 남성이라서 더 유리한 점은 없다. 그럼에도 제주 전체 주민자치위원장 중 남녀 성비가 43:1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 지역 여성 이장은 2명에 불과...여성의 대표성 확보 위한 행정 노력 필요

읍면 지역 이장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제주 지역 172개 리 중 애월읍 애월리, 한경면 금등리 두 곳의 이장만 여성이다. 마을의 여성 대표성이 얼마나 떨어지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마을과 주민자치 조직을 여성이 대표해 나갈 이유 전혀 없지만 현실은 이처럼 암담하다. 뿌리 깊은 ‘남성 대표주의’가 지역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성이 조직을 대표하는 것, 즉 가부장제의 사회정치적 현상이다. 여성이 마을과 주민자치 조직을 대표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행정의 노력이 절실하다. 2018년 원희룡 전 지사는 신설한 뒤 현재에 이른 성평등여성정책관의 성과는 아직 마을까지 가 닿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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