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 소재 '평화를 품은 집'.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소재 '평화를 품은 집'. (사진=박지희 기자)

"전쟁은 개인을 가장 먼저 덮치고, 가족을, 마을을, 국가를 덮치죠. 하지만 전쟁에 대한 기억은 거꾸로죠. 국가의 공식 기록인 역사교과서에서 배운 뒤 더 작은 것들을 이야기하죠. 마을 단위에서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건 평화의 실천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17일 오후 경기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 일대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남북 분단의 상징인 DMZ, 임진강과 가깝고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숨이 차오를 때즈음 나무들 사이로 작은 집이 보였다. 명현파 집장과 황수경 평화도서관 관장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평화를 품은 집'이다.

제주4.3 75주년 4.3세대전승 교육사업 '4·3평화통일 아카데미'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주최, 제주통일평화교육센터 주관으로 16일과 17일 이틀간 강원 철원과 경기 파주 일대에서 진행됐다. 주제는 '4·3, 그리고 분단'이다.

경기 파주 소재 '평화를 품은 집'. 이곳에서는 평화도서관도 운영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소재 '평화를 품은 집'. 이곳에서는 평화도서관도 운영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평화도서관의 '4.3'서가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평화도서관의 '4.3'서가 ((사진=박지희 기자)

집 안에 들어서자 펼쳐진 서가에는 책이 빼곡했다. 전쟁과 평화, 자연, 환경, 인권, 전쟁 등 평화라는 큰 주제 아래 나뉘어진 키워드들로 구분돼 있었다. 다락에서는 닥종이 인형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가 여성들의 모습들을 구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역사자료관이다. 최근 100년간 대량 학살이 일어났던 지역인 아르메니아와 난징, 폴란드, 캄보디아, 킬링필드, 르완다 등 학살에 관련된 자료를 각 나라별로 구분해 전시하고 있다. 생존자의 증언은 물론 관련 도서, 영상 및 문서자료, 사진도 볼 수 있다.

물론 제주4.3을 포함한 한국의 학살 사례도 소개하고 있다. 한켠에는 진실화해위원회 진상규명결정서 등 관련 자료가 마련돼 있었다.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사진=박지희 기자)

이곳은 개인이 제노사이드와 관련해서 기념관을 만든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방문하는 전세계 평화활동가들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4.3과 비슷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일본 오키나와 등 각국 활동가들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이곳에 들르고 있다고 황 관장은 전했다. 지난 7월 내한한 제인 구달 박사도 이곳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 부부는 자그만치 10년 동안 직접 대량학살이 일어난 나라에 방문, 사진과 문헌을 구매해 이곳을 꾸렸다. 그러나 아직 모으지 못한 자료도 많다. 개인이 운영하는 만큼 재정적인 한계에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10년간 집장 부부가 직접 수집한 도서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10년간 집장 부부가 직접 수집한 도서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만날 수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한국의 학살 사레에서 제주4.3도 소개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경기 파주 '평화를 품은 집' 내 제노사이드 역사자료관. 한국의 학살 사레에서 제주4.3도 소개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날 만난 황 관장은 이와 관련, 국가 및 지자체가 나서서 제노사이드 기념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황 관장은 "제주에 방문했을 때 제주의 4.3역사자료관을 보고 적잖이 충격받았다. 제노사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된 순간이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50세가 넘은 나이었는데, 그간 교육과정 등에서는 제노사이드를 다루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카틴 숲 학살이 일어난 폴란드나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아우슈비츠는 국가 차원에서 만든 전시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4.3 백비를 제외하고는 전무한 상황"이라며 "국가가 주도하면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평화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발언하고 있는 명현파 '평화를 품은 집' 집장 (사진=박지희 기자)
발언하고 있는 명현파 '평화를 품은 집' 집장 (사진=박지희 기자)

명 집장은 "전쟁의 상흔이 많은 곳인 만큼 평화를 말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미군기지가 있던 이곳은 미군 철수 후 인구 수가 많이 줄었는데, 이 공간을 기반으로 주변에 마을 역사박물관이 생기는 등 확장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답사의 해설을 맡은 김진환 국립통일교육원 교수는 "여러 평화이론가들은 평화를 '폭력을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존중과 이해"라며 "한반도 차원의 폭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직시하는 것이 폭력을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폭력과 평화의 양상은 모두 다르다. 한반도식 평화 실현의 핵심에는 제주가 있다"며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례 4.3을 기억하고 있는, 한국전쟁 및 태평양전쟁을 품고 있는, 제국주의 폭력인 러일전쟁의 유족들도 다수인 공간이다. 한반도식 평화의 출발점이 제주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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