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수업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초등학교 수업 자료사진.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투데이는 지난 17일 제주지역 초·중·고 교사들을 만나 9월4일 이전과 이후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3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지난 편에선 대한민국 교사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배경(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었다)에 대해 다뤘다. 이번 편에선 오늘날 교실 현장의 모습과 기형적인 공교육 구조에 대해 다룬다. 

*인터뷰이 실명 사용 시 개인정보 노출에 따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별칭을 사용했다.(종이호랑이: 고등학교 교사, 여우: 초등학교 교사, 루피: 중학교 교사)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어떤 의미였나. 

종이호랑이_나 역시 학부모 악성 민원이나 학교폭력 사건 때문에 힘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는 교사가 있을 거란 상상은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중등교사 보다 초등학교 교사가 더 힘들 거다. 이건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_그런 점 때문에 ‘내가 너였다’는 구호가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이전엔 서로 분절되어 있던 존재였다면 이젠 ‘나’로 느껴지는 거다. 심리적으로 되게 힘들었다. 뉴스를 보는데 서울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 내가 아는 친구가 죽은 것 같고 그랬다. 정서적으로 과몰입한 상태였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우리 학교는 평화롭고 따듯한 공간인데도 우울감이 생기더라. 집단우울증, 모든 선생님들이 경험했을 거다. 자꾸 내 주변에서 친구가 죽고 직장 동료가 죽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거다. 

나의 일처럼 느껴지니 행동하게 되더라. 예전엔 국민청원 동의에 참여해달라는 메시지가 오면 귀찮아서 안 했었는데 이젠 꼭 참여한다. 공교육 멈춤의 날에도 연가 쓰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 같은 경우 육아 때문에 서울 집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부채감이 쌓이더라. 교육청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하나, 행동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우울감과 함께 생겼다. 그 근원엔 ‘그가 나다’라는 의식이 있다. 

종이호랑이_죄책감도 들었다. 내가 목소리를 냈으면 이 죽음 막았을 텐데. 

여우_과거에 내가 눈 감고 무시하고 목소리를 안 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랬을 거다. 불합리한 상황을 맞닥뜨린 선생님들의 일을 내 일로 여기지 않았던 죄책감도 있고 내가 공교육 시스템의 불합리에 맞섰다면 젊은 선생님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고. 

종이호랑이_그런데 특히 제주사회에서는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선생님들이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 제주 교육계에선 관리자가 우리 아버지의 동창이고 사촌의 선배고 그런 관계인 경우가 많다. 괜히 불편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거다. 이분을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1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경우를 못봤다. 나라도 목소리를 냈으면 막내 선생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는 상황이 안 오지 않았을까. 

이들은 모두 선배로서 ‘서이초 교사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같이 싸워주지 못했던 죄책감, 초임 교사 시절 경험한 일들이 겹쳐지면서 ‘내가 곧 서이초 교사’라는 동질감 등을 느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시는 부조리한 공교육의 시스템에서 동료 교사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이어졌다. 곧 나 자신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서이초 추모 공간에 붙은 포스트잇. 7월22일 촬영. (사진=종이호랑이)
서이초 추모 공간에 붙은 포스트잇. 7월22일 촬영. (사진=종이호랑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사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한국 사회가 바라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여우_사실 이번 문제의 뿌리가 무엇일까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 시위 현장에서 외치는 것처럼 ‘아동학대법’이 뿌리일까?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언제부턴가 학교가 미용실이나 마트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학부모 민원이 들어올 때 그렇다. 학부모 입장에선 ‘내가 돈을 냈고 그 비용만큼 서비스를 받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안 그런 학부모가 더 많다. 그런데 점점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교사들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늘고 있다. 

종이호랑이_SNS의 영향이 있다고 본다. 아까 SNS가 발달하면서 우리가 학습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악성민원 학부모 역시 ‘학습’을 한다고 들었다. ‘맘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내가 이렇게 하니까 담임선생이 우리 애를 더 신경 써주더라’하는 글이 공유되면 다른 학부모들도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하는 걸 배우는 거다. 

여우_사실 그분(악성민원 학부모)들이 ‘교사를 괴롭혀야지’라는 의식을 하진 않을 거다. 자기가 부모로서 열심히 나의 아이를 잘 케어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미용실에 가서 마음에 드는 머리 모양이 안 됐을 때 디자이너에게 불만을 얘기하고, 마트에서 산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항의하는 것처럼, 교사에게 ‘소비자’로서 ‘정당하게’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는 거다. 문제는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행동할까?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는 일은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의 교사들이 시도를 하면서도 용기를 잃고 있어 응원해줘도 될까 말까다. 이런 부분을 (학부모들이)너무 쉽게 생각한다. 부모들이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면 교육 방식에 대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민원을 넣으시는 분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우 굉장히 호의적인 학부모였는데도 학습 지도 방식에 대해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고 ‘선’ 넘는 조언을 하시더라. 의사에게도 ‘이렇게 진료하라, 저렇게 진료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종이호랑이_부모들이 가정에서의 역할과 학교에서의 역할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분명 아이가 성장하는 데 가정교육도 필요하고 학교교육도 필요하다. 아이를 학교로 보냈다면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한 학생이 수업방해를 여러 번 하길래 훈육을 하고 학부모와 상담도 했는데 부모 측에선 ‘우리 아이가 절대 그럴 애가 아니다, 선생님이 우리 애를 예뻐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 교사를 신뢰하지 않고 교육 방식에 의심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지난 7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홍보게시판에 붙은 포스트잇. (사진=종이호랑이)
지난 7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홍보게시판에 붙은 포스트잇. (사진=종이호랑이)

여우_학교 책임도 있는 것 같다. 교육청부터도 학교를 서비스 제공하는 업체로 여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쓸 때 불문율이 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쓰면 안 된다는 거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려오는 지침 같은 게 있다. 

종이호랑이_맞다.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쓰라고 한다. 

여우_어떤 학생이 정말 예의가 없고 다른 아이들을 때려서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라는 판단이 들어도 생기부를 쓸 때나 상담을 할 때나 어떻게 하든 긍정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서비스 업체에서 고객이 불만을 느끼지 않게 영업행위를 하는 것처럼 학교에서도 학부모들이 불만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학생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한다. 그런 아이들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애가 예전엔 안 그랬는데’ 하는 말이 나오는 거다.   

루피_실제로 주변 선생님들은 생기부를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 우리는 중학교니까 생기부가 대학입시와도 상관이 없고 고등학교도 특목고 갈 거 아니면 크게 상관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학교만큼은 ‘솔직하게 쓰자’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못했다. 바로 학부모 민원이 들어오더라. 우리 아들 장래를 망치려고 한다고…. 

여우_민원에 대해서 최대한 친절하고 민원인이 기분 상하지 않게 대응하도록 학교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건 이미 교육기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이호랑이_학교가 쩔쩔 맨다는 느낌이 있다. 어떤 학부모는 뭐 하나 기분이 나쁘다 싶으면 바로 교장한테 전화를 하더라. 

루피_차라리 그게 낫다. 담임한테 전화해서 ‘교장실에 전화할 거예요’라며 ‘협박’하는 분도 많다. 이런 전화를 많은 교사들이 직접 받고 싶진 않을 거다. 개인적으론 이런 민원을 교장이나 교감이 처리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분들은 학부모들에게 ‘죄송하다. 담임 교사에게도 조치하겠다’ 이런 식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교사들의 사정이나 입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우_레스토랑이랑 같은 거다. 음식에 불만을 가진 손님이 ‘사장 불러와’ 그러면 사장은 손님 앞에서 ‘죄송하다. 직원 교육 잘 시키겠다’ 이러지 않나. 만약 학교가 교육기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공간이었다면 어땠을까. 교장이 그 학교 대표 교사로서 권위를 가지고 학부모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며 다른 교사들을 보호했을 거다. 대부분의 학교 관리자가 그랬다면 악성민원 학부모가 지금만큼 양성되지 않았을 거다. 학교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교사의 잘못으로 몰아간다. 해당 교사를 민원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고 좀 더 서비스 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면 학부모에겐 너무 친절하다. 

학생과 학부모는 소비자로서, 학교와 교사에게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마치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처럼. 자신의 기준에 못미친다고 판단하는 교육 방식에 대해선 하자 있는 제품을 대하듯 당당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때에 따라선 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마트가 되어버린 학교에서 우리 사회는 제대로된 공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전교조 제주지부와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등 도내 6개 교원단체가 주최한 '9·4 추모문화제'가 4일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열렸다.  (사진=박지희 기자)

 

학교 관리자들은 왜 교사를 보호하지 않나

여우_평가 때문이다. 

루피_학부모들한테도 평가를 받는 게 있다. 그게 점수로 계산이 된다. 

종이호랑이_교감의 경우 승진을 하려면 그 점수가 필요하고 교장은 명예롭게 퇴임하고 싶은 거다. 

여우_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가. 지금은 학부모에게 우리 학교의 교육 방침을 설득하는 방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문제를 안 일으킬까 하는 생각으로만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아동학대처벌법’이나 ‘학폭법’이 이런 문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법 자체가 엄청나게 기울어져 있다. 학부모들이 기세등등해질 수밖에 없다. 학부모 측은 악성민원을 제기하면서 져야할 책임은 하나도 없다. 

비상식적인 상황인 거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다른 학부모나 교사들이 학습을 한다. 학부모는 갑질을 해도 책임을 묻지 않고 교사는 뭐 하나 실수하면, 때론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책임을 과하게 묻는 구조를. 이 구조를 법에서 뒷받침해주고 있다. 맘카페 같은 커뮤니티에서 이런 정보가 알려지면 ‘노하우’를 익힌 일부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악용한다. 대다수의 학부모는 그렇지 않지만. 

종이호랑이_갑질 행위는 레스토랑에서도 있을 수 있고 카페에도 있을 수 있고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교육현장에서만큼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학교는 학생들의 배움의 장소 아닌가. 이런 데서 갑질이 통용되는 걸 본 학생들이 나중에 커서 사회로 나갈 때 어떤 구성원이 되겠나

여우_한 명의 악성 학부모와 한 명의 악성 아이 때문에 교실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침해를 받는 상황이 됐다. 이 아이에 대해 단호한 조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한다. 물론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신은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걸 교사한테 모든 책임을 미루고 아무런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문제인 거다.  

종이호랑이_그렇다. 학생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학교의 자율성으로 떠넘기고 학교는 다시 교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특히 담임교사의 책임은 너무 과중한 게 현실이다. 

법도, 학부모도, 학교 관리자도, 정부도, 기형적인 공교육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교사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를 걸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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