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민회 고용평등상담실 안김현정 활동가.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제주여민회 고용평등상담실 안김현정 활동가. (사진=양유리 인턴기자)

“고용평등상담실을 없애는 일은 20년 된 나무를 베는 일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걸 베어버리면 밑동만 남고 더는 자라지 않잖아요. 20년 넘게 꿋꿋하게 이어오고 성장하는 무언가를 걷어내는 일은 미래를 없애는 일과 다름이 없다고 봐요.”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을 때, 고용상 성차별을 겪었을 때, 이외의 일터에서 여러가지 부당 행위를 당했을 때 심리 상담과 법률 지원, 이후의 대처까지 사건의 전 과정을 동행하는 곳이 있다. 전국 19개의 민간단체에서 운영 중인 고용평등상담실이 바로 그곳이다. 제주에서는 제주여민회가 운영하고 있다. 

존폐 위기에 놓인 고용평등상담실 

고용노동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 및 사업계획에 따르면 2000년부터 24년째 운영되고 있는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폐지되고,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에 배정된 예산은 12억원에서 5억원으로 축소되며 사실상 고용평등상담실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제주투데이는 지난 17일 제주여민회 고용평등상담실 안김현정 활동가를 만나 민간 위탁 고용평등상담실의 역할과 상담실 폐지에 따른 우려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현재 전국 19개의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걸 전국 8개로 나누어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상담실이 줄어든다고 해서 내담자 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2024년 고용평등상담실 운영비에 관련한 예산은 전체 삭감될 예정이다. 현재 운영 중인 19개의 상담실은 각 지청 소속 8개의 상담창구로 대체되고, 38명의 상담사가 16명으로 반 이상 감축된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고용노동부 지방고용노동지청(이하 지청) 산하 상담실로 대체가 가능할까. 

민간과 공공 상담실은 무엇이 다른가

제주여민회 고용평등상담실 활동가가 내담자와 법률 절차에 동행했다. (사진=안김현정 제공)
제주여민회 고용평등상담실 활동가가 내담자와 법률 절차에 동행했다. (사진=안김현정 제공)

안김현정 활동가는 “여성근로자들 중에는 특히나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기본적인 근무시간 외에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 주말까지 피해자와 소통하고 동행하며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민단체의 활동가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걸 지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지적하는 민간 상담실의 전문성에 관해서는 “각 상담소마다 업무의 결이 다르다. 여성 통합상담소인 1366에 문의를 해도 사건의 성격에 따라서 가정폭력상담소, 성폭력상담소, 고용평등상담실로 연결을 해준다. 원스톱으로 통합하여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개별 상담소들이 가지는 전문성이 있기에 원스톱이 운영 가능한 것”이라며 각 상담소의 특수성에 따른 전문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민간 위탁 고용평등상담실이 사라진다면

고용평등상담실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혼란스러워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도움을 요청한다. 상담을 통한 세밀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안김현정 활동가는 고용평등상담실이 지청에 소속될 경우 자칫 상담이 ‘상담’이 아닌 ‘민원’으로 처리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상담소를 찾는 목적에는 각자 다양한 층위가 있다. 행정적, 사법적 절차를 통해 권리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회사에서 계속 근무하길 원해서 협상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2차 가해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내담자들이 있기에 단순 행정처리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민간 위탁 상담소가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여민회 기관지에 실린 고용평등상담실 내담자의 후기. (사진=안김현정 제공)
제주여민회 기관지에 실린 고용평등상담실 내담자의 후기. (사진=안김현정 제공)

더불어 “민간 상담실이 아닌 노동청에서 바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상담의 성격보다는 민원 처리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관에서는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고 같이 걸어가는 길”이라며 피해자 심리 상담 기능 축소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내담자가 이름 등의 개인 정보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안 활동가는 “지역 사회가 워낙 좁기 때문에 알려지는 게 무서워서 자기 이름을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는 분도 있다”며 “이런 경우 관에서 처리하게 되면 신청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고평 상담사가 중간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피해자는 심리적으로도 안심을 할 수 있다”며 “근로감독관이나 가해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중간에서 이야기 해주는 역할을 상담사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4년간 존속해 온 상담창구를 왜 없애려는가

한편, 2000년부터 2022년까지 고용평등상담실을 거쳐 간 상담 건수는 16만 8070건이다. 연평균 7640건의 상담을 소화한 것이다. 2020년부터 집계된 상담 건수는 2020년 1만 1328건, 2021년 1만 1892건, 2022년 1만 3198건으로 고용평등상담실을 찾는 노동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은 고용상 성차별 및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된 상담 창구이다. 이때문에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성단체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고용평등상담실을 찾는 이들은 여성만이 아니다. 안김현정에 따르면 남성 노동자들도 성희롱, 성차별 등 다양한 불평등 문제를 호소하며 상담실을 찾기도 한다. 

고용노동부는 국가보조금 연장평가서를 근거로 들며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추진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보고서에서는 고용평등상담실이 ‘신속한 정보제공’, ‘분쟁 사전 예방’, ‘해결이 용이하지 않은 사안은 신속한 권리구제 등 실효성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됐다. 더하여 대면상담보다 전화상담과 인터넷상담 비중이 높은 것을 짚고 이를 고려해 ‘접근 가능성을 높이라’고 기능의 확장이 제언되기도 했다. 

고용평등상담실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당 앞에서 안김현정 활동가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당 앞에서 안김현정 활동가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양유리 인턴기자)

정부의 고용평등상담실 없애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정부 산하 기관으로서 공공성의 가치가 강화될지, 노동자 권리구제 방식의 획일화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사각지대 여성노동자 문제에 대한 감시와 지원이 축소된 공적시스템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전국고용평등네트워크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각 지역 민주당 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갔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 ‘고용평등상담실 폐지’를 막기 위한 1만인 연서명(https://url.kr/fj7kdc)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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