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오영훈 제주지사(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불도저가 될 상인가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장을 도지사가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 개정안을 2일 입법예고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재단법인 제주4·3평화재단 설립 및 출연 등에 관한 조례' 개정안.

오영훈 도정은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이 같은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공론화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도민 설명회나 공청회 한 번 없었다. 개정안 입법예고에 앞서 추진한 제주4·3평화재단 컨설팅 용역 결과에 대한 논의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영훈 도지사가 제주행정의 고질적인 '용역 만능주의적'인 태도를 제주4·3평화재단 운영에 끌고 들어온 셈이다. 급하게 밀어붙이면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4·3평화재단 의사결정은 공무원의 것?...최상위 의사결정 구조, '도지사 손아귀'에 들어가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무보수 비상근 명예직인 재단 이사장을 상근 이사장을 두도록 하고, 도지사가 이사장을 임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재단의 최상위 의사결정 구조체인 이사회에 제주도 공무원(실·국장 급)을 두도록 명시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재단 관련 업무 담당 실·국장’이 이사를 맡도록 했다. 이 공무원들이 '제주4·3실무위원회'의 부위원장과 함께 당연직 이사가 된다. 이 셋을 제외한 이사는 이사장과 마찬 가지로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했다. 사실상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하고 재단 운영을 도지사 손아귀에 넣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이사진 구성 및 도지사가 이사와 대표이사 임명토록 하는 체제 구축은 행정의 재단 장악력을 높이게 된다. 의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직이 도지사의 선거공신을 위한 낙하산 인사로 채워질 수 있고, 재단 이사장 임용이 정치화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도지사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지에 따라 제주4·3평화재단 운영 및 이사장 임명과 관련해 갈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 중 하나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도지사의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때로 제주도가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하지 못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는 비상근 명예직 이사장 체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도지사가 이사장 임명해야 '책임경영'?...도지사 임명 출자·출연기관 보니 '글쎄'

오영훈 도정은 재단 이사장이 상임 이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경영이 어렵다는 취지로 조례 개정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4·3평화재단이 지난해 감사에서 기관경고를 받았던 일을 특별히 강조해 거론하고 있다. 마치 4·3평화재단이 도지사가 대표를 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 마냥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지사가 상근 대표를 임명한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쉽게 확인된다.

먼저, 제주연구원은 올해 1월 부실용역 등 문제로 감사위로부터 기관경고 처분을 받았다. 3월에는 제주테크노파크가, 7월에는 제주에너지공사가 기관경고 처분을 받았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은 2019년에도, 2022년에도 기관경고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은 도지사가 임명한 원장에게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도지사가 임명한 기관장이 경고를 받은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즉, 도지사가 상근 대표를 임명하는 체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오히려 든든한 도지사를 등 뒤에 세운 낙하산 인사가 기관 운영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원희룡 전 도지사가 임명한 이승택 이사장 당시 제주문화예술재단은 어땠나. 원희룡 전 도지사의 정책보좌관 출신인 이승택 이사장 체제에서 제주문예재단의 노사 갈등은 극히 첨예해졌다.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제주문예재단 경영기획실장 자리에 공무원을 파견토록 하며 논란이 일었다. '고위직 도 공무원 자리 만들기' 및 재단 운영 간섭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오영훈 도지사가 입법예고한 조례안이 통과되면 제주4·3평화재단에서도 이와 같은 사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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