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재훈 기자)
(사진=김재훈 기자)

이른바 '전문가'들이 '개발권력의 시녀'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시민들이 직접 사회 문제를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시민과학'이 대두되고 있다. '시민과학'은 '관변 전문가'를 앞세운 개발 논리와 기술만능주의에 맞서 직접 과학적 방법론으로 대안을 탐색한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은 올해 시민들이 직접 과학적으로 생태를 탐사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제주 바닷속 생태계를 기록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2023 산호탐사대'는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30명이 참여했다. 해녀와 스쿠버다이빙 강사부터, 일반 직장인과 학생들까지 수중 촬영이 가능한 이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서귀포 문섬과 범섬 일대의 산호 서식 현황을 조사하고 산호 서식을 위협하는 요인을 조사했다.

이들은 문섬과 범섬 주변 바닷속을 각 9회씩 총 18회의 조사를 진행했다. 총 68종의 산호종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수온 상승 등으로 인한 산호 서식지 양상의 변화와 기생생물로 인한 피해, 낚시 피해 등 129건의 위협 요인을 파악했다. 추후 '시민이 만드는 산호 도감'을 제작할 계획이다.

산호탐사대는 올해 조사를 통해 연산호류 40종, 해송류 4종, 돌산호류 15종, 말미잘류 9종 등 총 68종의 산호종을 기록했다. 이번 조사에서 법정보호종 산호 21종 중 8종이 발견됐다. 육안으로 종 판별이 어려운 경우도 있어 조사 지역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산호탐사대는 곤봉바다맨드라미과로 추정되는 미기록종 산호 2종을 발견했다. 추후, 미기록종 등록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면 관련 연구자들이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호탐사대는 기존 제주 바다에 서식하는 연산호 서식지를 침범한 열대성 돌산호류의 확산 사례를 25건 파악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수온 상승은 열대성 돌산호류의 폭발적인 증가를 야기했다. 열대성 돌산호류는 연산호의 서식 환경을 저해하며 서식지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다. 이외에 탐사대가 조사한 위협 요건을 보면 담홍말미잘·태형동물·석회관갯지렁이 등 기생생물 68건, 낚싯줄 및 어구로 인한 피해 20건, 백화 현상 11건, 기타 4건 등 총 129건이다.

산호탐사대는 이번 조사를 통해 자체 역량 강화와 전문가와의 협력을 과제로 들었다. 문화재청, 해양수산부, 환경부, 지자체 등 행정 기관이 해양보호구역이나 멸종위기 법정보호종 산호 서식지를 조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시민과학'을 통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봤다. 전국에 지역 거점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행정기관이 처리할 수 없는, 모니터링 과정을 '시민과학'의 영역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제주 지역 해양보호구역의 산호 모니터링을 산호탐사대가 맡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섬과 범섬 일대의 산호가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지만, 대책 마련과 보호구역 관리는 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과학적으로 수행한 산호탐사대의 산호 모니터링 자료들을 바탕으로 관련 연구자들이 연구를 추진하고, 제주도정이 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방식의 협력은 '시민과학'의 방향성과 부합한다.

지자체가 산호 관리 정책을 세우려면 기초 조사가 필요하다. 모니터링부터 해나가야 한다. 그와 같은 작업을 위해 별도의 연구 용역을 맡기는 게 관례다. 하지만 용역진의 모니터링은 일회성으로 끝난다. 기후위기로 인해 나날이 급변하는 생태 환경과 그 변화 양상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시민과학'이 대안이다. 산호탐사대는  2024년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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