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노력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는 의미이다.

최근 자치단체들이 대부분 사회단체보조금 신청접수를 마감하고 심사를 진행중이거나 지원을 확정한 가운데 보조금 예산을 주인없는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신청이나 해놓고 보자는 식의 접수가 이어지면서 봇물을 이뤘다.

건수와 금액에서 다소의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자치단체에 접수된 신청건수는 책정된 예산금액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제주시만도 84개 단체에서 118건, 금액으로는 12억4800여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치단체들은 이를 걸러내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를 담당하는 주무부서의 직원은 짧은 기간동안에 심사위원회에 넘길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야근을 해야 할 정도여서 행정력 낭비의 요인도 되고 있다.

신청내용도 가지가지다. 자치단체에서 하는 것을 사업내용으로 꾸며 지원금을 신청한 사례에서부터 소모성 행사를 비롯해 단체의 연수경비, 심지어 단체의 성격에 맞지도 않는 사업에 대한 지원을 신청한 단체도 있었다.

사정이 이쯤되다보니 단체의 경상적 경비를 지원해 달라는 신청은 그래도 조금은 솔직하고 나은 편에 속한다.

여기에다 심의과정에서 미리 어느정도 삭감될 것을 감안, 지원금액을 '뻥튀기식'으로 부풀려 신청한 내용들이 상당수였다.

실제 제주시에 사업보조금 신청을 한 모단체는 700만원 가까이 신청했으나 1차 검토결과 80% 정도가 거품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 등 대부분의 신청사업 예산이 과다하게 계상됐다.

게다가 일부 단체는 지원금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다양하게 구성해 관련실과마다 신청하는 기지와 순발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올해부터 정액보조단체를 폐지하고 상한제로 전환된 사회단체보조금 예산에 대해 '주인없는 돈, 먼저 먹는게 임자'라는 말이 나올법도 하다.

원래 사회단체보조금의 실링제로 전환한 취지는 방만한 지출되는 예산사용을 억제하고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지원방지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정액지원단체를 폐지함으로써 그동안 소위 관변단체로 불리는 정액보조지원단체에 매년 수천만원씩의 예산을 지원해온데 따른 형평성 시비를 불식시키려는 요인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 보조금 지원신청 내용을 보다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올해 처음 도입된 제도이니 만큼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나 잘못된 점에 대해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의견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돼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의 문제이다. '주인없는 돈','먼저 먹는게 임자인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이러한 병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路不像路不要走) 는 말이 있다. 정도에 벗어나는 일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이번 사회단체보조금 신청내용을 보면서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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