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파고 들어서는 안 될 터부(금기)가 지금까지 한군데 있었다.

천황가를 둘러싼 황실의 좋지 않은 얘기들이다. 그것이 요즘 몇 년 사이에 표면화 되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주간지 <주간현대>에서 특집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격론! 황태자가와 천황가의 내실(內室)을 쫓는다>는 부제 속에 <공감. 마사코(雅子)님인가. 미치코(美智子)님인가>라는 타이틀로 표지를 장식했다.

마사코씨는 황태자의 부인이며 미치코씨는 황후로써 두 분 다 민간인 출신이다.

제목만 읽었을 때는 일반 가정에서도 일어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차원을 넘어선 기사들이었다.

주간지라고 해서 흥미 본위로 다룬 기사가 아니라 각계 인사 15명의 기사는 황실 전체의 흐름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었다.

몇 년 전 황태자는 기자회견에서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려는 일도 있었습니다>의 발언은 일본열도를 발칵 뒤집혀 놓았다.

부인에 대한 황실내의 대응에 황태자가 불만을 털어 놓았기 때문에 많은 억측이 나돌았었지만 천황의 오해라는 말에 수습이 되었다.

이러한 소동은 마사코씨의 병이 원인이었다.

<적응장해>라는 심적 요소의 병인데 몇 년 전부터 치료에 전념하고 있지만 오늘까지도 완쾌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공무를 멀리하고 장기 요양 중에 있는 황태자비 일상이 못마땅하여 일어나는 마찰이 황실내의 갈등을 빚고 있다.

결혼 당시 새로운 황실외교를 전개하고 싶다던 마사코씨의 꿈은 무참히 무너졌다.

초등학교때부터 명문학교를 다녀 하버드대학과 도쿄대학 법학부를 거쳐서 외무성 외교관 시험에 합격한 그녀는 일본을 대표하는 수재중의 수재였다. 그리고 외교관의 부친을 따라 외국생활이 많았던 그녀의 어학력과 시야는 말 그대로 황실외교의 최적임자로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황태자비로서의 그녀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일본국가 최고(最古)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해온 황실제례와 황태자비의 개방적인 황실외교는 상대적이었다.

특히 전형적인 귀국자녀였던 그녀에게는 일반적인 일본문화의 적응에도 갈등이 많았을 텐데 황실에서는 더욱 증폭되었을 것이라면서 세계 황실 전문가의 한사람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마사코씨의 학력과 직력을 보고 수퍼커리어우먼이라고 하지만 그는 설득력 있게 부정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에 있는 학생들처럼 치열한 시험 경쟁에서 합격하여 동경대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고 귀국자녀로서 수월한 방법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또 외교관 시험 합격도 외무성 최고 간부였던 부친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자립심이 강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부러울 것 없는 집의 영애로서 성장했다.

그리고 같은 민간인 출신인 황태후라고 하지만 시대와 환경이 달라서 특별히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명망 있는 기업가 자녀로 태어나 지성과 문화적 소양, 스포츠 만능 등 협조성과 리더십을 고루 갖추었던 황태후는 완벽해 보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천황계승권을 갖고 있는 남자 아이가 황태자 부부 사이에 없다는 현실이 황실만이 아니고 일본 정계에서도 많은 의견이 백출했다.

어떤 지식인은 남아 탄생을 위해 제2의 황태자비론까지 나올 정도였는데 인권을 무시한 그야말로 현대판 <씨받이론>이었다.

마침 황태자 남동생 아키시노미야가 아들을 낳아서 이 논쟁은 자연소멸 됐지만 이 틈바구니에서 황태자비의 심적 부담은 막대했을 것이다.

<적응장해>라는 진단 속에 치료와 요양을 계속하고 있지만 완쾌되지 않은 상태 속에서 5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공무와 황실제례에 참석하는 기회가 병으로 인해 한정된 관계로 황태자 가족과 천황의 접촉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재작년 천황은 황태자의 딸 아이코 손녀와 만날 기회도 적어서 안됐다는 발언에 황태자는 그런 기회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런데 금년 2월 황실 운영을 총괄하는 국내청 장관이 작년에 천황가와 황태자 가족과의 만남은 늘어나지 않았다면서 황태자가 기자회견에서 그런 기회를 만들겠다고 발언 했으니 지켜 달라는 요지의 내용을 발표했다.

천황과 황태자라는 신분으로 부자간의 가족들의 만남에도 황실예법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공식적인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얘기들이 나온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놀랐다.

그만큼 천황 가족들 사이의 갈등이 심각했다는 얘기였다.

또 금년에는 황태자비가 천황에게 신년 인사도 드리기 전에 친정 부모들을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모셨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요양 중에 있는 황태자비 입장에서 부담감 없이 만날 수 있는 부모와 먼저 새해인사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두둔하는 의견도 있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빚어지는 갈등의 요인이 가족들에게도 있을런지 모르지만 황실운영을 총괄하는 궁내청 관료들의 대응능력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세계 어느 황실, 어느 가정보다도 화기애애한 가족애와 결속력을 자랑하던 일본 황실의 갈등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제주투데이>


▲ 소설가 김길호
▶1949년12월 제주시 삼양출신,  1973년 병역마치고 도입, 1979년「현대문학」11월호 단편「오염지대」초회추천, 1980년<오사카 문학학교>1년 수로(본과52기), 1987년「문학정신」8월호 단편「영가로 추천 완료,  중편「이쿠노 아리랑」으로 2005년 제7회 해외문학상 수상, 2006년 소설집 <이쿠노 아리랑>발간, 2007년 <이쿠노 아리랑>으로 제16회 해외한국 문학상 수상, 1996년 일본 중앙일간지 <산케이신문>주최 <한국과 어떻게 사귈 것인가> 소논문 1위 입상. 2003년 인터넷 신문「제주투데이」'김길호의일본이야기'컬럼 연재중, 한국문인협회,해외문인협회,제주문인협회 회원. 현재 일본 오사카에 근무하면서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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